감악산의 설마리 전투, 글로스터 고지 전투(Gloster Valley Battle)라고 하며 이 전투는 한국 전쟁 중, 1951년 4월 22일부터 4월 25일 사이에 임진강과 감악산 설마리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전투가 벌어진 지역은 주로 영국군으로 구성된 제29보병여단에 의해 방어되었다. 29 보병 여단은 영국의 3개 보병 대대, 벨기에의 1개 보병 대대및 지원 전차와 포병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투 중 영국군은 미군과 필리핀군의 지원을 받기도 했으나 수적으로 우세한 중공군에 맞서 29 보병 여단은 맹렬히 싸웠다. 이 전투로 중공군의 기세는 무뎌졌고, 유엔군은 후퇴하여 서울 북부에서 방어를 준비할 수 있었다. 당시 글로스터 대대가 주둔하고 있던 235고지 (영국군은 ‘글로스터 힐’이라고 부른다)는 워낙 험악해 방어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지만 동시에 후방 지원, 특히 탱크 부대의 지원이 불가능한 양날의 칼이었다. 결국 글로스터 대대는 견딜 수 있는 한 고지에서 결사항전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았다. 한곳을 끝까지 지키는 공성전(攻城戰)에 특히 강한 글로스터 대대답게 총열이 열에 터지고 탄약이 다 떨어져 마시던 맥주병을 중공군 머리에 던지는 상황이 올 때까지 치열하게 버티면서 고지를 내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유엔군에 5일이라는 황금 같은 시간을 벌어 주었다. 만일 하루이틀이라도 먼저 글로스터 대대가 무너졌다면 향후 한국전의 양상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는 게 전사가들의 분석이다.
자세한 상황을 보면 영국군 제29여단 소속 글로스터 연대 5700여명의 병사들이 싸운 곳은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설마리 일대였으며 이곳에서 3만여명의 중공군을 맞아 벌였던 전투다. 설마리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글로스터 연대 제1대대 (글로스터 대대라고도 불린다) 756명은 불운하게도 중공군에 포위된 상태에서 닷새간 밤낮으로 싸워 대대원 중 59명이 전사했다. 또 98명이 행방불명됐고 530명이 포로가 되는 괴멸적 상황을 맞았다. 포로 중 180여명이 부상병이었는데 이 중 34명이 포로 생활 중 사망했고 탈출한 인원은 69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중공군 역시 전체 병력의 거의 3분의1이 사망하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만큼 글로스터 대대는 뛰어난 적 살상력을 보이면서 영웅적인 방어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참패했지만 작전으로만 보면 대단한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렇게 최후까지 적에게 고지를 내주지 않던 글로스터 대대는 충분한 시간을 유엔군에 주었다는 판단이 들자 대대장이 각자도생으로 탈출하든지 저항하지 말고 포로로 잡히든지 알아서 하라는 마지막 명령을 했다. 글로스터 힐 전투는 영국군이 2차대전 이후 지금까지 벌인 가장 치열한 전투라고 평가받는다. 중공군도 춘계공세 와중에 전체 병력 30만명 중 7만여명이 사망했다.
이후 대대가 괴멸하면서까지 영웅적으로 임무를 수행했으면서도 부대기를 중공군에 뺏겨버린 글로스터 대대는 한국전이 끝나고도 한국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현재도 글로스터 대대기는 북한 ‘조국해방전쟁 승리관’에 보관, 전시되어 있다. 영국군 전통에 따르면 전투 중 여하한 이유로든 부대 깃발을 잃어 버리면 귀향을 못 하고 영원히 현지에 남아 있어야 한다. 결국 본대는 모두 철수해도 소수는 명목상으로나마 한국에 남아 있는 불명예의 수모를 겪었다. 그러다가 1994년 여왕의 특별 사면으로 한국에서 최종 철수했다. 그럼에도 300년 전통의 글로스터 대대는 현재 바로 다른 연대에 흡수되어 ‘글로스터 버크셔 윌셔 왕립 연대’로 바뀌었다. 지금은 글로스터 시내에 위치한 글로스터 군인 박물관에서만 역사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현재 생존한 글로스터 대대 참전용사 4명 중 한 명인 토미 클로프(94) 옹은 아직도 각종 행사에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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