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세계최초 라면 생산과 우리나라의 라면 생산

nyd만물유심조 2022. 8. 25. 09:40


최초의 즉석 라면은 1958년 8월 25일에 현재 닛신식품의 전신인 일본 산시쇼쿠산에서 생산한 치킨라면이었다.

일본에서 대만계 일본인인 안도 모모후쿠가 1년간 자택 실험실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연구를 거듭한 결과 발명하였는데 당시 미군 구호품으로 밀가루가 많이 있었기에 이를 이용한 새로운 식품을 고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초기 라면은 양념이 면에 더해진 형태였으나 이후 1962년에 스프를 분말로 만들고 따로 첨부한 형태의 봉지면이 인기를 끌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1963년 9월 15일에 삼양라면을 원조로 하여 인스턴트 라면이 처음으로 출시되었다. 1950년대 말 제일생명 보험 회사 사장 전중윤씨가 퇴사하여 식품회사를 인수했다. 그후 삼양식품으로 사명을 변경한 전중윤 삼양식품 회장은 63년 9월15일 정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우여곡절끝에 일본의 묘조(明星)식품에서 기계2대와 기술을 도입, 제조법을 그대로 가져와 주황색 포장지에 중량 100g인 삼양 치킨라면을 생산하였다. 초기엔 닭고기 국물을 재현한 수프라서 느끼한 맛이 나 인기가 없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삼양라면은 100g에 가격은 10원이었다. 한동안 유지되던 가격은 7년만인 1970년에 소맥분과 우지가격 인상으로 20원으로 인상되었다. 그러나 내용량이 120g으로 증가되었다. 이어 1978년에는 50원으로, 1981년에는 100원으로 인상되었다.
라면이 처음 도입되었을 당시 사람들은 거부감을 가져 라면을 먹으려 하지 않았지만 국가에서 시행한 분식 장려 정책과 맞물려 많이 팔리게 되었다.

당시 삼양라면은 라면 시장을 선점하면서 ‘국민 라면’으로 점차 자리 잡았다. 라면이 식사 대용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경쟁업체에서도 라면시장에 뛰어들었다. 롯데공업은 65년 롯데라면을 출시한 데 이어 75년 농심라면을 선보였다. 당시 코미디언 구봉서와 곽규석이 등장해 “형님 먼저 드시오” “아우 먼저 들게나” 하며 서로 라면을 양보하다가 막판에 본심을 내보이는 TV CF의 인기만큼 농심라면은 큰 히트를 쳤다. 이를 계기로 롯데공업이 사명을 아예 농심으로 교체했다.

1970년대가 라면의 도약기였다면 1980년대는 한국 라면산업의 최고 전성기이자 격변기였다. 한국야쿠르트, 빙그레, 오뚜기 등이 라면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공업용 우지(牛脂·쇠고기 기름)’ 파동으로 한바탕 시끄러웠고 이후 삼양식품은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큰 피해를 봤다. 1990년에는 컵라면 전성시대가 펼쳐지면서 해외수출이 본격화 되었다.

2000년 이후 라면 종류는 더욱 다양해졌다. 각 유통사는 자체브랜드(PB) 제품을 선보였고, 라면업체들은 짬뽕라면뿐 아니라 미역국라면, 북엇국라면 등 다른 메뉴와 접목한 제품을 선보였다.

2011년에는  '꼬꼬면'이 나왔고 이후 하얀국물 라면이 유행하기도 했으며 매운맛을 즐기는 소비자들의 '맵부심'(매운 음식을 잘 먹는 자부심)에 맞춰 매운라면 제품 출시도 잇따르고 있다.

-2022년 한국인이 선호하는 라면 브랜드 TOP 10
1.신라면: 42.36%
2.진라면: 41.0%
3.짜파게티: 34.1%
4.너구리: 24.2%
5.육개장 사발면: 20.0%
6.안성탕면: 16.1%
7.팔도비빔면: 15.1%
8.삼양라면: 11.4%
9.불닭볶음면: 9.5%
10.진짬뽕: 7.2%

-세계 라면 시장과 소비.
세계라면협회(WINA)가 발표한 '2021년 세계라면 시장 자료'를 보면 베트남의 연간 1인당 라면 소비량은 87개로 1위를 차지했다고 2022년 6월30일 밝혔다. 한국은 73개로 2위였고, 네팔이 55개로 3위였다.
한국은 2013∼2020년 8년 동안 연간 1인당 라면 소비량이 1위였으나 2021년에는 2위로 떨어졌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강(霜降)  (0) 2022.10.19
추분  (1) 2022.09.19
처서  (0) 2022.08.17
300년 만에 가장 큰 ‘170캐럿 핑크 다이아몬드 발굴  (0) 2022.07.29
立秋  (0) 2022.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