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제3대 국왕. 묘호는 태종(太宗), 휘는 방원(芳遠), 자는 유덕(遺德).
1367년 6월 13일, 아버지 이성계와 어머니 신의왕후 사이에서 6남 2녀 중 5남으로 태어났다. 16살이던 1382년, 진사시에 2등으로 합격해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이로 인해 이방원은 개경 귀족 사회에서 큰 주목을 받게 되었고 같은 해, 고려 후기 최고의 명문 권문세족 가문 중 하나인 여흥 민씨이자 이방원의 스승인 민제의 2살 위 삼녀와 혼인하게 되었다.
혼인 1년 뒤 17세의 나이로 첫 아이를 가졌고 더불어 과거에 응시하여 병과 7등의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하였다. '이것이 얼마나 우수한 성적이냐?'면 전국의 과거 응시자들 중 전국 10위의 성적이다. 이후 고려 충신들을 제거하여 신진사대부와 함께 조선 건국의 일등 공신으로 활약하였다.
즉, 이즈음 온건파 신진사대부들은 이성계가 낙마로 중상을 입어 잠시 무력화된 틈을 타 고려 왕실의 위협이던 이성계 일파들을 한 명씩 잡아들이고 종국에는 이성계도 최종적으로 암살하려 하였다. 정몽주는 공양왕의 암묵적인 지원하에 조준, 남은, 정도전 등 이성계 세력의 핵심 인물들을 귀양 보냈다.
이렇게 이성계 일파가 잠시 어느 정도 위협을 받고 있을 때, 태조실록에서는 이제(李濟)를 통해서 이 위기 소식을 들은 이방원이 곧장 어머니 3년상을 접고 벽란도로 달려가 큰 부상을 입은 이성계를 개경에 직접 데려오고 군사를 일으켜 전세를 다시 이성계 쪽으로 역전시킴으로써 이성계파를 몰락 위기에서 구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성계가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있을 때 형제들 중 홀로 나서서 아버지를 지켜낸 셈이다.
이후 1398년 막내 동생 이방석이 세자 책봉 된 것에 불만을 품고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고 둘째 형 이방과를 정종으로 즉위시켰다. 이후 넷째 형 이방간이 일으킨 제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며 이방원은 정종의 양위 후 조선의 제3대 국왕으로 즉위한다.
즉위 이후로는 철저한 현실주의적 시각으로 유교 중심의 국가 시스템 확립을 목표로 하였다. 불교 탄압 정책을 실행했으며, 대마도 정벌로 외환을 제거하는 한편 명에 대한 사대로 실리주의적인 외교를 펼쳤다. 이후 아들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면서 외척 세력을 척결한 후 상왕으로 물러나 말년을 보내다 병사하였다.
태종이 만든 정책들과 환경은 이후 세종 시기에 꽃을 피우며 조선을 크게 번영시켜 조선사에선 손에 꼽히는 명군으로 평가받지만, 즉위 전 일으킨 여러 도덕적 과오로 인해 도의적인 부분에선 비판을 많이 받기도 한다.
조선의 3대 왕 태종과 왕비 원경왕후를 모신 쌍릉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헌인릉길 36-10이다.
'역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안중근 의사, 일본 이토 히로부미를 포살하다 (0) | 2022.10.19 |
|---|---|
| 알래스카가 미국 땅으로 주권이양 된 날 [알래스카의 날’(Alaska Day)] (0) | 2022.10.18 |
| 경술국치 (0) | 2022.08.29 |
| 김대중 납치사건 (0) | 2022.08.07 |
| 한국은행 발족및 업무개시일 (0) | 2022.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