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석주(羅錫疇) 의사는 일제치하인 1926년 12월28일 일본의 경제 착취 기업인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지사와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 사옥에 폭탄을 투척하고 일본 경찰에게 10발 가량의 총상을 입자 가슴에 총을 쏴서 자살을 시도했으나 체포되어 심문을 받다가 조선총독부 병원 수술대에서 치료를 거부하고 순국했다.
나석주는 1892년 황해도 재령군 북률면 남지리에서 나병헌(羅秉憲)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 지역은 125년간 나석주의 가문이 소유한 토지로 땅이 기름져 농작물이 잘 자랐다. 그런데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고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세워지면서 나석주의 집안은 땅을 일제에게 빼앗기고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일제의 지독한 수탈에 한 가족이 1년을 먹기도 힘들 정도로 사정이 나빠지자 격분한 나석주는 재령군사무소로 따지러 갔지만 일제는 콧방귀를 끼며 땅을 강제로 빼앗아 일본인에게 양도했다. 이 사건으로 나석주는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으며 농부를 때려 치운 뒤 명신학교를 수학하고 북간도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에서 훈련후 항일 공작원으로 활동했다.
1919년 3.1 운동 때는 군자금을 마련하여 중국 상하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송금했으며 황해도 평산군에서 주재소 일본 경찰과 면장을 사살하고 북쪽 지방 일대를 돌아다니며 요인 암살과 군자금을 모으고 다녀서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에 일제는 나석주를 잡기 위해 군대 병력을 증강시켰는데 이런 움직임을 감지한 나석주는 중국으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경비 담당으로 일하였다. 이후 국내에 돌아와 의거할 기회만 노리던 나석주는 김구와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던 김창숙의 요청으로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파 임무를 부여받고 중국인 '리중거'로 위장하여 입국하게 된다.
한동안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중국인 거주지에서 중국인 행세를 하며 기회를 엿보던 나석주는 거사일인 1926년 12월 28일 권총을 신문지로 감싼채 겨드랑이에 끼고 폭탄을 지닌 채로 명동으로 향했고 을지로 일대를 휘저은 거사를 일으켰다. 먼저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지사 로비에 들려 중국인 행세를 하며 경비 태세를 탐문했다. 이후 맞은편에 있는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에 들러 연말이라 사람이 바글바글한 틈을 타 정신없이 은행 업무를 보던 은행원들 뒤로 폭탄을 투척했다. 하지만 폭탄은 불발되었고 놀란 직원들과 사람들이 소동을 일으키자 거리의 사람들이 조선식산은행 앞으로 몰렸다. 하지만 나석주는 태연하게 "아. 쓰미마셍 "하고 조선식산은행 밖으로 자리를 떴고 후에 은행 직원이 폭탄임을 깨닫고 종로경찰서에 신고했다.
거리의 사람들이 조선식산은행으로 몰리자 상대적으로 경비가 한산해진 건너편의 동양척식주식회사에 가서 신문지로 숨겼던 권총으로 1층 수위실의 일본 기자부터 사살했다. 직후 2층 사무실을 돌아다니면서 동양척식주식회사 직원들을 권총으로 사살했는데 먼저 총소리를 듣고 계단을 올라오는 직원 1명을 사살했고 토지개량부 기술과장실로 가서 오모리 차장과 아야다 과장을 사살했으며 옆 기술과로 들어가 권총을 마구 난사하고 폭탄 1개를 던진 다음 아래층 현관에 있던 일본인 2명에게 권총을 쐈다. 살육전을 벌이다보니 시간이 생각보다 지체되었고 탈출할 때가 됐다고 느낀 나석주는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나와 거리를 내달렸지만 출동한 일본 경찰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나석주는 먼저 만난 경기도 경찰 경부 다하타 유이지를 사살하고 일본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면서 일본인들을 사살하며 도주했다. 그러다 체력이 다했다고 느꼈는지 전봇대에 기대어 가슴에 총을 쏴서 자살을 시도하였으나 미수에 그치며 일본 경찰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고등계 형사로 악명이 높았던 '미와'의 심문을 받던 중 자신이 나석주임을 밝히고 병원에서 수술을 거부하며 순국했다.
사망 후 나석주의 유해는 가족들이 서울로 와서 인수해 고향인 황해도 재령군의 묘지에 매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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