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오늘은 3.15 부정선거가 있던 날.

nyd만물유심조 2021. 3. 15. 20:18

3·15 부정선거 또는 3·15 개표조작은 1960년 3월 15일 국민들의 직접선거에 의해 실시된 제4대 대통령 선거 및 제5대 부통령 선거였다. 이 선거에서 이기붕 후보가 79.2%의 득표율로 제5대 부통령에 당선되었고 이승만 후보를 제4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그러나 이후 이기붕의 부통령 선거가 부정선거임이 드러났다.
당시 선거를 관장하는 주무부처인 내무장관 최인규는 이기붕이 이끄는 자유당과 함께 1959년부터 투표계획을 세운다. 여기에는 4할사전투표, 공개투표전략, 투표함 바꿔치기 등의 수법이 모두 있었다.
3.15 부정선거는 당과 내각 그리고 경무대 비서실의 합작이었다. 당시 연로한 이승만이 무슨 일을 당하면 부통령이 권한을 이어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이기붕의 당선을 위해서 부정선거를 했던 것이다.

3.15 선거는 정부통령 선거였지만 투표 한달 전 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이 신병치료차 미국에서 서거하며 대통령은 이승만이 단독 출마한 상황이라 사실상 부통령에 대한 부정선거였다. 
즉 1960년 1월 29일 민주당 대통령후보 조병옥은 신병이 악화되어 치료차 미국으로 떠나면서 조기선거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으나, 정부는 농번기를 피해야 한다는 이유로 3월 15일을 선거일로 공고하였다. 그러나 2월 15일조병옥이 급서함에 따라 선거를 통하여 정권교체를 염원하던 국민들은 1956년의 신익희(申翼熙) 야당 대통령후보의 죽음에 이어 또다시 실망과 좌절을 겪어야만 하였다.
당시 개표가 시작되자 이승만과 이기붕의 득표가 95%∼99%까지 조작되어 나온 지역이 속출하였고, 이런 터무니없는 집계에 놀란 자유당은 최인규에게 득표수를 하향 조정하라고 지시하였다. 그 결과 최종집계는 총투표자 1,000여만 명 중 이승만 960여만 명으로 88.7% 득표, 이기붕 830여만 명으로 79.2%를 득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투표와 개표상의 공공연한 부정행위에 대한 전국민의 저항은 3월 15일 저녁마산에서의 부정선거규탄 시위로부터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결국은 4·19혁명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