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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속인 수 급증과 무속정권

nyd만물유심조 2025. 1. 17. 16:57

문화심리학자 한민의 책 <숭배하는 자들, 호모 피델리스>


한국성결신문 보도(관련기사 : 개신교 인구 15%까지 감소 … 무종교인 급증, 2023년 3월)에 따르면, 한국의 종교 인구는 지난 2012년을 기점으로 급락하고 있으나 무속인 수는 급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4년 57%였던 종교인구는 2023년에는 36.6%로 줄었다. 개신교는 2012년에 22.1%로 최고점을 찍은 뒤 계속 감소하여 2023년에는 15%로 떨어졌다. 천주교는 2012년 10.1%에서 5.1%, 불교는 2004년 26.7%였던 것이 2023년에는 16.3%로 줄었다. 이 같은 전통 종교의 쇠락 현상을 보면서 한국은 이제 "'탈종교 국가'가 되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과연 그럴까?

한민 교수(문화심리학)는 이 책 <숭배하는 자들, 호모 피델리스>에서 전통 주류 종교가 줄어드는 사이 한국 무속인 수가 급증했다고 밝혔다. 2000년대 초반 20만 명이던 무속인이 2023년에는 무려 네 배 가까이 늘어 80만 명 이상에 이르렀다. 그중 신당을 열고 무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40만~6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그 수치는 개신교 목사 수를 훌쩍 넘는다. 2019년 한국 개신교 종사자는 374개 교단에 10만 7천 명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왜 무당은 이렇게 급증한 것일까? 저자에 따르면, 무속은 1980년대 이후 전통문화의 하나로 인식되어 보존되기 시작했고, 1990년대부터는 문화적 다양성의 하나로 인정받아 케이블 TV와 종편 등에서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했다. 작년 무속을 다룬 영화 <파묘>가 천만 관객을 동원한 게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이 같은 흐름에 힘입어 무속은 어느덧 사람들 곁에 가깝게 자리 잡았고 널리 퍼져 나갔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의 불확실성과 불안 요소들이 자꾸 무속인을 찾게 만든다. 이는 전통 주류 종교가 그사이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속의 급증을 단순히 문화적 다양성의 수용이나 미디어의 영향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부족하다.

전통 종교들이 현대 사회의 변화에 맞춰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도 한 원인이다. 예를 들어 기성 종교가 현대 사회에서 직면한 문제들인 개인의 영적 요구, 불확실성, 사회적 불안 등에 대한 충분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다른 대안을 찾고 무속이 그 역할을 부분적으로 대체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저자는 '모태 신앙'인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고교 시절까지 성장하였다. 그러다가 대학에 다니면서 수많은 의문에 봉착하여 전국의 굿판을 쫓아다녔고, 성당, 사원, 사찰 등을 쏘다니며 여러 종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이 책은 이러한 그동안 구도 행각의 중간 보고서이기도 하다.

저자는 종교가 어떻게 생겨났고, 그 유형과 특징은 무엇이며, 인간에게 무엇을 주는지 등 종교에 대한 기초적 질문들에 대해 간결하고 쉽게 설명한다. 또한 한국의 고유한 종교 문화나 번창하는 사이비 종교와 종교적 광신 현상에 대한 궁금증도 명쾌하게 풀어준다. 종교의 미래 전망에 대한 소견도 밝힌다.

그는 "분리되었던 '모든 것과의 합일(Oneness with the All)'이야말로 미래의 종교가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본다. 이 책은 한국 사회와 종교 문화를 이해하는 데 유익한 정보들을 담고 있으며, 한국의 종교 문화를 소개하는 대중 교양서로도 추천할 만하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찾은 이유는 단지 한국의 종교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현재의 윤석열 정부를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박근혜 정권 시절,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면서 박근혜 씨에게 깊이 영향을 끼친 사이비 교주 출신 최태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게 일었고, 탄핵 뒤에는 그 관심이 금세 시들해졌다.

다시는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을 거라고 다들 너무 일찍 안심했던 게 아닌가 싶다. 윤석열-김건희 정권은 '무속 정권'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각종 국가 정책에 무속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손바닥에 왕(王)자를 그리고 나타났고, 당선 뒤 뜬금없이 수백 억을 들여 대통령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겼다. 이는 무속인 조언에 따른 결정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더욱이 윤 정권은 무속인을 대통령실 행정관으로 채용하였고, 총리의 부인도 오래 전부터 무속에 심취해 있다는 폭로가 잇따랐다. 21세기에도 무속이 부흥해 활개를 치며 국정을 좌우하는데, 전통 종교는 왜 맥을 못 추는지 궁금했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 개신교나 불교 안에도 무속의 영향이 곳곳에 나타난다. 예를 들어, 개신교 목회자들을 위해 신도들이 쌀을 드리던 '성미(聖米)'는 본디 무당의 생계유지 방식이었다. 부흥사들의 신유, 축귀, 축복 부흥회도 무당의 굿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무당의 신당을 찾던 이들이 교회당으로 발길을 옮겼을 뿐, 그들의 신앙 체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저자가 기독교 신자로 오래 생활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 같은 분석은 설득력이 부족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기독교에 대한 잘 아는 사람이었고, 무속 연구도 오랫동안 심도 있게 한 터라 그 주장에 신뢰가 갔다. 특히 한국 기독교에 끼친 무속의 영향에 대한 내용은 개인적으로 가장 신선한 통찰을 제공하였다.

또한 한국 개신교의 배타성을 "개신교 자체의 특성이 한국 문화와 한국인의 심성과 잘 맞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부분도 흥미로웠다. 즉, 한국인의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마음 습관, 권위주의적 행위방식, 자기현시적 태도 등이 유일신 종교의 절대성과 미국 근본주의 영향과 결합되어 개신교의 배타적 특성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세계 주요 종교와 무속 같은 민속 종교(또는 원시 종교)를 구분하는 핵심 기준 중 하나는 보편적 윤리 규범을 갖추고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강조하느냐이다. 단지 개인적인 기복과 영적 문제 해결만을 위한 것이라면, 주류 종교가 무속보다 더 나을 게 없다.

무속 정권이 사회적 지탄을 받는 이유도 불합리한 의사 결정과 공공성을 상실한 정책 추진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개인적으로 무슨 종교를 믿든 문제 삼을 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