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8월18일 오전 10시 45분쯤 미군 장교 2명과 사병 4명, 한국군 장교 1명과 사병 4명 등 11명이 '돌아오지 않는 다리' 남쪽 UN군측 제3초소 부근에서 시야를 가리고 있는 미루나무의 가지를 치는 한국인 노무자 5명의 작업을 지휘·경호하던 중, 북한군 장교 2명과 20여 명의 사병이 나타나 "나뭇가지를 치지 말라"고 요구했으나 우리측 경비병이 작업을 계속하자, 북한군 장교와 북한초소에서 2대의 트럭에 분승한 50~60명의 북한병사들이 달려와 도끼·쇠꼬챙이·몽둥이 등을 휘두르며 폭행하여 미군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하고 나머지 9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뒤 UN군 트럭 3대와 초소를 파괴하고 물러갔다.
사건 직후 주한미군사령부는 주한미군 장병들의 휴가취소와 부대복귀명령을 내리는 한편, 주한미군과 한국군은 데프콘 3호(경계상태돌입)를 발령하고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미국은 백악관·국무부·중앙정보국(CIA) 등 행정부 고위관리들로 특별대책위원회를 구성, 대책을 논의하는 한편 F-4전폭기, F-111전폭기 각 1개 대대를 한국기지에 배치하고, 핵항공모함 레인저호를 한국해역으로 이동시키는가 하면, B-52폭격기를 급거 출동시키고 오키나와[沖繩] 주둔 해병대 1,800명을 한국에 증파하는 등 강경한 대응을 취했다.
이와 동시에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은 내셔널방송회사(NBC) 텔레비전 회견을 통해 북한의 해명과 배상을 요구했다. 동시에 8월 21일 새벽 7시 데프콘 2호(전쟁돌입상태)하에서 문제의 미루나무 절단작업에 나섰다. 포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한미 양국간 협의결정으로 실시된 이 작전에는 건십헬리콥터 26대, B-52 중폭격기 3대, F-4 및 F-111 폭격기 수십 대가 판문점 상공을 엄호하는 가운데 3백여 명의 한미 양군 기동타격대가 투입되었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21일 유감의 뜻을 표명하는 사과문을 UN군측에 전달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었고, 9월 1일부터는 판문점공동경비지구를 남과 북으로 분할경비하기로 합의해 사건은 19일 만에 마무리되었다. 이 합의는 9월 16일부터 효력을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