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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탐사 보도 전문기자 겸 작가인 애니 제이콥슨이 최근 '24분'이라는 핵전쟁에 대한 책을 발간했다. 저자는 70년 만에 해제된 미국의 기밀 문서와 핵전쟁을 계획한 핵심 인물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핵전쟁 시나리오를 초 단위로 썼다. 24분은 북한이 핵탄두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미국을 향해 쏘아 올렸을 때 미국이 핵 반격에 나서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결과는 예상대로다. 모두의 패배, 공멸이다.
오전 4시 3분, 북한 평양에서 32㎞ 떨어진 황량한 들판에서 ICBM 화성-17호가 미국 본토를 향해 발사됐다. 미국의 반응은 30초 안에 이뤄진다. 위성과 항공우주 데이터시설, 우주군 기지 등의 검증을 통해 화성-17호기의 경로와 본토 도달 시점이 정확히 예측된다. 화성-17호기의 미국 동부 연안 워싱턴까지 소요 시간은 단 33분. ICBM은 발사된 후 4분 30초가 지나면 로켓 모터가 꺼지면서 중간 궤도에 진입해 미국의 추적이 불가능해진다.
초강대국 미국이지만 요격도 말처럼 쉽지 않다. 미 본토에는 44개의 요격 미사일로 이뤄진 방어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저자는 "미국인들 사이에는 미국이 ICBM을 쉽게 격추할 수 있다는 신화가 있지만, 이건 그야말로 거짓"이라고 폭로한다. 미국은 2010~2013년 초기 요격 시험에서 단 한 건도 성공하지 못했다. 5년 후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은 후에도 격추 확률은 절반(55%)에 불과했다. ICBM 요격은 "총알로 총알을 맞히는 것과 비슷"(미국 미사일 방어국 대변인)하다.
"누가 우리에게 핵무기를 발사하면 우리도 마주 발사한다." 미국 핵 작전을 책임지는 존 하이튼 전략사령부(일명 STRATCOM) 사령관은 2018년 미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어떤 위협에도 대응할 준비가 돼 있으며, 김정은을 포함한 세계의 적들은 그 사실을 알아야 한다"며 이렇게 공언한 바 있다.
미국 와이오밍주 등의 ICBM 발사 시설에는 핵미사일 82기가 설치돼 있다. 북한의 ICBM 발사를 감지한 지 24분 만에 북한의 82개 표적지를 향해 핵미사일이 발사된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확전 사다리"에 올라탄 격이다. 미국의 반격을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오인한 러시아와 중국이 가세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끌려들어 가면, 제3차 세계대전 발발이다.
30년 만에 일부 공개된 미국의 핵전쟁 모의기동훈련 결과, 핵전쟁은 어떻게 시작되든 미국과 러시아, 유럽이 완전히 파괴되고, 북반구 전체는 낙진으로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 된다. 첫 공격으로만 최소 5억 명이 사망한다.
"서울 시민 최소 4분의 1은 사상"
한반도 역시 전장이다. 서울과 경기 오산 공군기지, 평택 주한 미군기지에는 북한이 쏜 1만 기 이상의 포탄과 240㎜ 구경 로켓의 폭격이 가해진다. 특히 소형 로켓에는 핵무기가 아닌 사린가스 같은 생화학 무기가 탑재된다. 1기에 단 몇 기의 미사일만 처리할 수 있는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도 쏟아지는 소형 로켓에는 맥을 못 춘다. 저자는 "사린가스 공격으로 서울에서만 최대 250만 명이 죽고, 100만~400만 명이 부상을 입는데 이 중 상당수는 산소 결핍으로 식물인간 상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 중 핵전쟁을 자초한 이는 아무도 없다.
그저 "핵무기를 가진 광인 한 명"만 있으면 승자 없는 핵전쟁이 언제든 시작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우려다. 핵 공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핵 반격을 결정하기까지 미국 대통령에게 주어지는 시간도 단 6분뿐. 미국 대통령은 유사시 핵무기를 발사할 유일한 권한을 갖고 있으며, 누구의 허락도 구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면도날 위에 앉아 있는 셈'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경고했다. "인류는 단 한 번의 오해, 단 한 번의 오산으로 핵 멸종을 맞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