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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1월15일은 정월에 큰 명절 대보름이다. 이를 上元이라고도 하는데, 상원은 삼원(三元)의 하나로, 삼원이란 상원(1월 15일), 중원(7월 15일), 하원(10월 15일)을 말한다. 도교적인 전통에서 비롯된 말이다. 보름 전날인 14일부터 다음날 보름까지 여러 가지 행사나 놀이가 벌어진다. 그래서 14일을 ‘작은 보름’이라고도 한다.
"고려사"에서도 정월대보름에 연등놀이를 했다는 기록과 이후 4월 초파일로 옮겨 시행했다는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예전에는 정월대보름에 연등놀이를 즐겼음을 알 수 있다. 대보름은 상징적인 측면에서 달ㆍ여성ㆍ대지의 음성원리(陰性原理)에 의한 명절이다. 달은 곧 물의 여신이므로 대보름과 농경문화는 밀접하다. 땅과 달을 여성으로 여긴 것은 오랫동안 전해온 지모신(地母神)의 생산력 관념에서 나온 것이다. "태종실록"에 전하는 경기도 연안부의 용갈이, 용경(龍耕)풍속이나 "동국세시기"에 전하는 홍주의 용경과 용알뜨기 민속, 영동지방의 용물달기 등은 용신(龍神) 신앙이 농경의례와 밀접함을 보여준다. 줄다리기 역시 용사(龍蛇) 신앙의 한 표현이다. 따라서 대보름 달빛은 어둠과 질병, 재액을 밀어내는 밝음 상징이므로 동제(洞祭)를 지내고 개인과 집단적 행사를 한다.
정월대보름에는 오곡밥, 나물 등을 먹고 쥐불놀이, 부럼 깨기 등 한 해의 소원과 풍년을 비는 다양한 풍속들이 있다. 오곡밥은 찹쌀, 조, 수수, 팥, 콩 등 다섯 가지 곡식을 섞어 지은 밥으로, 한 해 모든 곡식 농사가 잘되기를 바란다는 뜻이 담겨있다. 우리나라 전통 색인 오방색 ‘황·청·백·적·흑’을 나타내는 곡물을 먹음으로써 오행 기운을 골고루 받아 건강하라는 의미도 있다. 그외 기복 행사로는 더위팔기, 귀밝이술 마시기, 시절음식인 복쌈이나 묵은 나물먹기와 달떡을 먹는 것이 있다. 줄다리기, 다리밟기, 고싸움, 돌싸움, 쥐불놀이, 탈놀이, 별신굿 등은 집단의 이익을 위한 정월대보름 행사다. 특히 부럼의 어원은 2가지인데 굳은 껍질의 과종(果種)을 총칭하는 뜻과, 부스럼의 준말인 종기, 즉 부럼이라는 해석이 있다. 같은 정월대보름 민속인 다리밟기(踏橋)가 다리(橋)를 밟으면 다리(脚)가 튼튼해진다는 것처럼, 부럼을 깨물면 부스럼이 없어진다는 식의 언어질병적(言語疾病的) 속신이 작용하였으리라는 것이다. 부럼깨물기는 정월 대보름날 아침 일찍 일어나 잣·호두·밤·땅콩 등과 같은 견과(堅果)를 자기 나이 수대로 깨물기도 하나 노인들은 이가 단단하지 못하여 몇 개만 깨문다. 여러 번 깨물지 않고 단번에 깨무는 것이 좋다고 하며 깨문 부럼은 껍질을 벗겨 먹는데 첫 번째 것은 마당이나 지붕에 던지기도 한다. 깨물 때 “1년 동안 무사태평하고 만사가 뜻대로 되며 부스럼이 나지 말라”고 기원한다.
또한 보름날 중요한 행사는 달맞이다. ‘망월(望月)한다’거나 ‘망월을 논다’고도 한다. 마을의 높은 산에 짚을 쌓거나 세워 ‘달집’을 만든 다음 달이 뜨는 시간에 맞추어 태운다. 달집이 잘 탈수록 그 해 운수가 좋다고 믿는다. 또 논둑과 밭둑에도 불을 놓는데 이를 쥐불 놀이라고 한다. 한 해 액을 쫓고 무병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있다.
"동악집"에서 '이안눌'은 어디에서나 정월 보름은 즐거운 명절이지만 우리나라 풍속이 가장 번화하다고 하였다. 민간 의술의 하나로서 귀 어두운 것을 치료할 수 있다는 덥히지 않은 술인 의롱주(醫聾酒) 마시기, 아이들이 서로 “내 더위 사가라(買我暑”고 하는 것, 병자가 이 날 20여 집(三七家)의 찰밥을 얻어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나반걸래(糯飯乞來), 연날리기 등을 이속(俚俗)으로 소개하였다. 대보름에는 새벽에 밤·호도·잣 같은 부럼을 깨고 귀밝이술을 마시며 오곡밥과 묵은 나물을 먹는다. 부럼을 깨면 일년 내내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두 말이 유사한 데서 비롯된 풍속이다.
마을의 두레패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신농유업(神農遺業)’ 등의 문구를 쓴 농기와 풍물을 앞세워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매귀(埋鬼), 또는 지신밟기를 한다. 1749년에 간행된 "울산읍지(蔚山邑誌)" 풍속조를 보면 이를 매귀유(埋鬼遊)라고 하면서 매년 정월 보름에 마을마다 기를 세우고 북을 치면서 돌아다니는데, 이는 나례를 모방한 것이라고 하였다.
귀신을 묻는다(埋鬼)는 뜻이든 지신을 밟는 것이든 이 행사의 초점은 터가 세다는 곳을 찾아가 잡귀가 발동하지 못하도록 눌러 놓음으로써 동네나 각 가정에 무사평안을 기원한다는 데 있다. 지신을 밟는 곳은 동네의 당산나무, 공동 우물, 마을 입구, 다리, 그리고 터가 센 곳이며, 개인 집에 들어가서는 대청의 성주, 부엌의 조왕, 광, 곳간, 우물, 대문, 그리고 뒤안의 장독대, 터주 등이다.
‘어부심’은 한자로 어부시(魚鳧施)라고 쓰며 의미는 강에서 사는 물고기나 오리(鳧)에게 베푼다는 것으로 물고기에 보시(普施)한다고 하여 ‘어보시’라고도 한다. 강에서 고기도 잡고 멱감는 일도 많았던 시절에 강 주인인 물짐승들에게 일년 내내 사고 없이 잘 지내게 해달라고 비는 신앙 행위다.
월이월희(月異月戲)라고도 하는 정월 보름밤의 망월은 일종의 점 풍속이다. 이것은 전국 각지에서 행해져 온 것으로 정월 보름에 뜨는 달의 형태, 색깔 등으로 그 해 농사를 점친다. 정월에 점풍(占豊) 행사가 많은 것은 이때가 본격적인 농사일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농우초식(農牛初食), 즉 정월 보름에 농우에게 각색 밥을 먹여 제일 먼저 먹는 것이 그해에 풍년이 된다는 식의 것들이다. 색전(索戰), 즉 줄다리기와 석전(石戰), 척사(擲柶), 즉 윷놀이도 마찬가지다. 풍년을 바라는 기풍(祈豊) 풍속의 하나로 호서 지방에서는 ‘용알뜨 기’라는 것이 오래전부터 내려오고 있는데, 예컨대 서산 지방에서 정월 초진일(初辰日)에 용이 우물에 와서 알을 낳는다고 믿어 부녀가 남보다 먼저 우물에 가서 물을 떠다가 밥을 지으면 그 해 농사가 잘 된다는 기풍(祈豊) 신앙이다.
한편, 정월 대보름날을 오기일(烏忌日 까마귀 제삿날)이라고도 하며, 또는 원소절(元宵節) 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 권1 기이편(紀異扁)에 언급된 정월 대보름을 보면 488년 신라 21대 소지왕이 정월 보름을 맞아 경주 남산 천천정(天泉亭)에서 산책을 하는데, 쥐와 까마귀가 다가와 쥐가 까마귀를 쫓아가보라 했다. 병사를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니 한 노인이 글을 바쳤다. "봉투를 열면 두 사람이 죽고 안 열면 한 사람이 죽는다 (開見二人死 不一人死)" 해서 소지왕은 열지 않으려 하는데, 길일(吉日)을 예언하는 일관하는 신하가 "두 사람은 서민이요 한 사람은 왕을 뜻하니 열어보라" 권했다 한다.
열어보니 '사금갑(射琴匣:거문고 통을 쏘라)'이라 적혀 있어 대궐로 돌아와 거문고 통을 활로 쏘니, 그 안에 숨어 있던 왕비와 승려가 간음을 하고 반역을 꾀했음을 알게 되었다 한다. 이에 소지왕은 모반을 알린 까마귀에 보답하기 위해 정월 대보름을 오기일(烏忌日)이라 명하고 해마다 약식(약밥)을 지어 제사를 드리게 했다 한다.
까마귀는 명나라 때 박물학자(博物學者) 이시진이 저술한 ‘본초강목’에 따르면 “까마귀는 부화한 후 어미가 60일 동안 먹이를 물어다주며 정성을 다해 새끼를 기른다. 새끼는 자라서 이 은혜를 잊지 않고 늙어 힘에 부친 어미에게 60일 동안 먹이를 갖다 바치며 먹여 살린다.”고 했다. 즉 어버이의 은혜에 대한 자식의 지극한 효도를 뜻하는 ‘반포지효(反哺之孝)’의 유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