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성(사적 제12호)은 백제의 수도가 공주였을 때 공주를 지키던 백제의 산성으로 북쪽에 흐르는 금강과 급경사를 이루는 공산(公山)의 산세를 활용하여 축조된 천연의 요새로 표고 110m의 구릉 위에 석축과 토축으로 계곡을 둘러 쌓은 산성이다.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 공산성으로, 조선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렀다. 성의 구조는 석축 약 1,810m, 토축 약 390m이다. 동서로 약800m, 남북으로 400m, 전체 둘레는 2,660m로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백제가 멸망한 직후에는 의자왕이 잠시 거처하였고, 이곳을 거점으로 나당연합군에 대항하는 백제부흥운동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 뒤 822년(헌덕왕 14)에 김헌창(金憲昌)이 일으켰던 반란은 이곳에서 진압되었고, 1623년에 이괄(李适)의 난 때 인조가 잠시 피난하기도 하였다.
성내에는 영은사, 공북루, 쌍수정과 비석 주초석, 창고터, 연못터 등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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