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봄은 왔으나 아직 마음의 봄은 오지 않았다는 뜻-
중국 전한(前漢)의 11대 황제는 "원제(元帝 BC74 ~ BC33)"이다. 원제는 환관들의 득세를 막지 못해 나라의 부패와 몰락을 가속시켰고, 결국 외척 집안의 인물 왕망(王莽)에게 나라를 빼앗겨 전한(前漢)시대의 마침표를 찍은 황제이다.
더군다나 나라의 외교 상황도 좋지 않아 국초에 흉노와의 전쟁에서 참패한 후 흉노의 호한야(呼韓邪) 선우(單于:황제)에게 한나라는 오랫동안 비단과 쌀을 공물로 바치고 황실의 공주를 흉노 군주의 처로 보냈던 것이다.
원제는 공주 대신 궁녀를 공주로 속여서 보내기로 하고, 초상화에서 가장 보기 흉한 궁녀를 보내기로 했는데 그가 바로 왕소군(王昭君)이라는 궁녀이다.
후대에 왕소군은 서시(西施), 양귀비(楊貴妃), 초선(貂蟬)등과 함께 중국 고대의 4대 미인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後漢 時代(후한 시대) 원제는 많은 궁녀를 거느리고 있어 궁정화가 모연수(毛延壽)에게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였다. 궁녀들은 원제의 은총을 받기 위해서 화가 모연수에게 여러가지로 청탁을 해서 실물보다 예쁘게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허나 王昭君(왕소군)은 형편이 어려워서 청탁을 하지 않았다. 이에 모연수는 왕소군을 더 못생기게 그리니 그녀는 원제를 만날 기회조차 없었다.
어느 날 북방의 흉노족 족장이 원제를 만나 공주를 처로 삼게 보내라고 요구했다. 이에 원제는 자신의 후궁 중 가장 추한 여인을 공주로 속여 보내기 위해 초상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흉노족을 잘 보듬어야 했던 원제는 초상화를 보고 가장 이쁘지 않은 궁녀를 그에게 보내기로 했다. 그가 바로 왕소군이다.
그런데 원제는 작별 인사 차 온 왕소군을 보고 깜짝 놀랐다. 초상화와는 달리 절세 미인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화공 모연수의 비리 행각을 파악하게 된 원제는 그 자리에서 그의 목을 잘랐다. 그러나 그럼에도 흉노와의 약속은 지켜야 했기에 궁녀를 보냈고 그 왕소군은 눈물로 떠나게 된다.
흉노 땅으로 가는 길에 왕소군은 비통한 마음을 비파로 연주했는데, 이 연주를 듣던 한무리의 기러기들이 그녀의 미모에 반하여 날갯짓을 멈추고 떨어졌다고 해서 후세 사람들은 그녀를 두고 ‘낙안(落雁)’이라 했다.
훗날 많은 화가들이 왕소군을 그렸고, 시인들은 그의 애달픈 삶을 노래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잘 알려진 게 바로 당(唐)나라 측천무후의 좌사(左史)였던 동방규(東方叫)가 쓴 '소군원삼수(昭軍怨三首)'란 시다.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자연히 옷의 혁대가 느슨해지니,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야윈 몸 때문만 아니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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