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9월 9일은 양수(陽數) 중에서 가장 큰 양수인 달과 날짜 숫자가 같은 중일(重日) 즉 9가 겹치는, 9의 결합이 중양(重陽)을 뜻하는 중양절(重陽節)이다.
또한 9월 9일을 가리켜 중구(重九)라고도 한다. 또 ‘귈’이라고 부르는 지방도 있다. 음력 삼월 삼짇날 강남에서 온 제비가 이때 다시 돌아간다고 한다. 가을 하늘 높이 떠나가는 철새를 보며 한해의 수확을 마무리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중양절은 중국에서 유래한 명절이지만 우리나라도 매년 음력 9월 9일 신라 이래로 군신들의 연례 모임이 이날 행해졌으며, 특히 고려 때는 국가적인 향연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조선 세종 때에는 중삼 곧 3월 3일과 중구를 명절로 공인하고 중구를 무척 중요하게 여겨 늙은 대신들을 위한 잔치인 기로연(耆老宴)을 추석에서 중구로 옮겼으며, 또 중양절에 특별히 과거시험을 실시하여 이날을 기리기도 하였다.
중양절에는 여러 가지 행사가 벌어졌는데, 국가에서는 고려 이래로 정조(正朝), 단오(端午), 추석(秋夕)과 함께 임금이 참석하는 제사를 올렸고, 사가(私家)에서도 제사를 지내거나 성묘(省墓)를 하였다. 또 양(陽)이 가득한 날이라고 하여 수유 주머니를 차고 국화주를 마시며 높은 산에 올라가 모자를 떨어뜨리는 등고(登高)의 풍속이 있었고 국화를 감상하는 상국(賞菊), 장수에 좋다는 국화주를 마시거나 혹은 술잔에 국화를 띄우는 범국(泛菊) 또는 황화범주(黃花泛酒), 시를 짓고 술을 나누는 시주(詩酒)의 행사를 가졌다.
서울 사람들은 이날 남산과 북악에 올라가 음식을 먹으면서 재미있게 놀았다고 하는데, 이것도 등고하는 풍습을 따른 것이다. 중양절에는 이와 같이 제사, 성묘, 등고 또는 각종 모임이 있었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관리들에게 하루의 휴가를 허락하였고 그래서 관리들이 자리에 없기도 하였지만 또한 명절이었으므로 이날은 형 집행을 금하는 금형(禁刑)의 날이기도 하였다.
예전에는 특히 달력으로 홀수가 겹친 중수일(重數日)을 중요한 시절로 지켜졌다.
정월 1일은 원정(元正) 혹은 원단(元旦) 정조(正朝),
3월 3일은 삼짇날,
5월 5일은 단오(端午),
7월 7일은 칠석(七夕),
9월 9일은 중양절(重陽節)이다. 11월 11일은 별도의 절일로 기념하지 않았다. 아마도 10旬 중심의 날짜[시간] 관념을 위시한 동양의 시간 질서에서 11일은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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