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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과 성별논란

nyd만물유심조 2016. 8. 18. 22:19

 

 

 

 

 

 

-리우올림픽에서의 경우

 

리우올림픽 여자 육상에서 가장 이목을 끈 스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캐스터 세메냐(25)다. 세메냐는 근육질의 체형과 중저음 목소리, 남자 선수들과 유사한 주법 등을 이유로 꾸준히 성별 논란을 겪어 왔다.

2009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주도하는 성별검사를 마쳤다.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까지 거쳐 여자 선수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800m 예선을 조 1위로 통과한 것도 오히려 논란을 키우고 있다.

 

리우에서 성별 논란으로 곤욕을 치른 여자선수는 또 있다. 인도의 육상선수 두티 찬드(20)다. 찬드는 IAAF가 여자 선수로 인정하지 않아 지난 2년간 국제대회를 뛰지 못했다.

IAAF는 지난 2014년 7월 찬드의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 검출치가 기준보다 높다는 이유로 그의 국제대회 출전을 무기한 금지했다. 찬드는 IAAF의 결정을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했고 지난해 여자 선수로 뛸 수 있다는 판결을 받았다.

 

당시 CAS는 “인간의 성을 결정하는 확정적인 기준은 없다. 테스토스테론이 운동 능력에 도움을 준다는 IAAF의 주장은 신빙성이 낮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 사례

 

*성별 논란이 늘면서 그 양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올림픽 메달을 딴 뒤 자격을 박탈당한 첫 사례는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나왔다. 여자 육상 400m 릴레이에서 우승한 에바 클로부코브스카(폴란드)가 올림픽 3년 뒤인 1967년 성별 검사에서 뒤늦게 양성 반응을 보였다. 그는 메달자격을 박탈 당했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선 산티 순다라얀(인도)이 메달을 박탈 당했다. 여자 육상 800m에서 은메달을 딴 그는 여자 염색체 XX가 아닌 남자 염색체 XY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이로 인해 자살 기도까지 했다.

 

*2004년 짐바브웨의 국내육상선수권에서 7개의 금메달을 딴 사무켈리소 시소레(짐바브웨)는 양성자로 판명됐다. 성별을 속여 출전했다는 이유로 4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브라질의 유도 선수인 에디낸시 실바는 여성과 남성 생식기를 모두 갖고 태어난 양성인자로 90년대 중반 고환 제거 수술을 받아 완전한 여성이 됐다. 그는 1996ㆍ2000ㆍ2004ㆍ2008년 올림픽을 비롯한 세계대회에 여자 선수로 출전했다.

 

*장대 높이뛰기 선수였던 이보네 부쉬바움(독일)은 2002년 유럽챔피언십에서 동메달,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6위를 기록한 실력파 선수였지만 이후 종적을 감췄다. 2007년 은퇴를 선언한 그는 결국 남성으로 판명됐다.

 

*미제로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1960년대 올림픽 무대에서 금메달 5개를 따낸 육상 스타였던 타마라-이리나 프레스(구 소련) 자매는 성별 검사가 도입된 1968년 이후 올림픽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1980년 미국 클리블랜드의 한 쇼핑센터에서 총격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1932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여자육상 100m 금메달리스트인 스탈리슬라바 발라시비치(폴란드).

그런데, 이 사건은 난데없는 방향으로 튀었다. 그녀를 부검하는 과정에서 발라시비치가 남자 생식기를 가진 양성자로 드러난 것이다. 50년 가까이 되서야 여자 육상 금메달리스트가 남성성을 지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체육계는 발칵 뒤집혔다. 여성보다 강인한 남성이 불공정한 경쟁을 했다는 비난이 일었다.

 

- 1968년 올림픽부터 성별검사 시작

 

올림픽에선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때부터 성별 검사가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이 검사는 이후 신뢰성과 여성 비하 위험 등이 꾸준히 논란이 되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앞두고 이 검사를 폐지했다. 하지만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는 이 제도를 계속 시행하고 있다.

성별 검사에서는 500명의 여성 선수 가운데 허용치 이상의 남자 염색체를 가진 선수가 1명 정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