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新羅 王 系譜

nyd만물유심조 2017. 3. 16. 23:03

 

 

 

신라 왕 계보

 

제1대 박혁거세(BC57-AD4)

신라의 시조이며 왕호는 거서간이였다.

국호를 서라벌이라고 명하고 수도를 금성으로 정하였으며 국가의 기초를 세우게 된다. 신라의 56명의 왕중 61년 재위를 하였다.가장 오랫동안 재위하면서 농사와 양장을 장려하였다고 전해진다.

 

제2대 남해왕(4-24)

박혁거세의 맏아들이며 석탈해(탈해 이사금)을 사위로 맡아 대보로 삼은뒤 정사를 맡겼다고 한다.

 

제3대 유리왕(24-57)

남해 차차웅의 아들이며 신라 가악의 기원인 도솔가를 지었다. 노례 이사금이라고도 불린다.

 

제4대 탈해왕(57-80)

국호를 계림으로 하였으며 일본과 화친하고 가야,백제와 잦은 다툼을 벌였다.

 

제5대 파사왕(80-112)

유리왕의 아들이며 성은 박입니다.월성을 쌓아 백성을 옮겨살게 하고 음집벌국을 정벌, 여러나라를 병합하는등 국위를 떨쳤다고 전해진다.

 

제6대 지마왕(112-134)

파사왕의 아들이며 성은 박 ,'지마'로도 불리였다. 왜국과 수교를 맺었으며 백제와 협조하여 말갈의 공격을 물리쳤다.

 

제7대 일성왕(134-154)

유리왕의 아들이며 농본국 정책을 펼쳐 농지를 개간하고 제방을 고쳐 쌓았으며 백성들의 검소한 생활장려와 사치를 금하였다고 전해진다.

 

제8대 아달라왕(154-184)

성은 박이며 현의 설치와 도로의 개통등 내치에 힘썼다.

 

제9대 벌휴왕(184-196)

성은 석이며 탈휴왕의 손자라고 한다. 좌군주와 우군주로 군직을 만든뒤 소문국을 정벌하였다고 한다. 벌휘 이사금,벌휴 이사금으로 칭하기도 한다.

 

제10대 나해(내해)왕(195-230)

성은 석이며 벌휴왕의 손자입니다. 포상 팔국 침입을 받은 가락국의 요청에 구원병을 파견하여 물리쳤다고 한다.

 

제11대 조분왕(230-247)

벌휴왕의 손자이며 성은 석입니다. 감문국을 정벌한뒤 군으로 만들고 왜병 침입을 물리쳤다. 골벌국의 항복을 받기도 하였다.

 

제12대 첨해왕(247-261)

벌휴 이사금의 손자이며 조분 이사금의 동생입니다.사량벌굴을 공격하여 통합하고 고구려와 화친을 맺었다고 한다. 달벌성을 지어 백제를 견제하였다고 한다.

 

제13대 미추왕(262-284)

김알지의 7대손 이며 (알지,세한,아도,수류,욱보,구도,미추)김씨 왕가의 시조로 전해진다. 조분이사금의 사위자격으로 왕위에 오릅니다. 농사를 장려하였으며 수차례의 백제 침입을 물리쳤다.

 

제14대 유례왕(284-298)

조분 이사금의 맏아들이며 성은 석이다. 백제와의 수교 (286년) , 삼한 소국중 하나인 이서국 침입을 격퇴하였다.

 

제15대 기림왕(298-310)

이찬걸숙의 아들이며 조분왕의 손자였습니다.사신 교환과 빈민구제를 하는등 선정을 베풀었다고 전해진다.

 

제16대 홀해왕(9310-356)

나해왕의 손자이며 성은 석이다. 기림왕 대를 이을 자식이 없게되자 대신들의 추대로 즉위하게 된다.

 

제17대 내물왕(356-402)

미추왕의 조카이며 김알지 8세손이라고 한다. 의성김씨 직계조상 중에 최초의 왕으로도 알려져 있다. 왕권을 강화하고 고대 국가 체제를 갖추었다고 전해진다. 한자가 처음 사용된걸로도 추정된다.

 

제18대 실성왕(402-417)

대추의 동생인 대서지와 이리부인 석씨의 소생이였다.내물왕 서거후 즉위하였으며 일본,고구려와 수호를 맺었다고 한다. 19대는 눌지왕이다. 내물 마립간의 아들이며 성은 김이다. 고구려에 볼모로 다녀온뒤 실성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다.

고구려 묵호자로 부터 불교가 전파되었다. 백제와 동맹을 맺고 고구려를 견제하였으며 왕위 부자 상속제를 확립하였다고 한다.

 

제20대 자비왕(458-479)

왜인의 월성침입을 격퇴하고 고구려의 백제침공에 나제동맹을 통해 백제를 도왔다고 한다.

 

제21대 소지왕(479-500)

성은 김이며 경주에 시장을 설치하고 각 지방에 우역을 두었다고 한다. 백제와 혼인 동맹을 맺었으며 고구려와 수차례 전쟁을 치뤘다고 전해진다.비처 마립간, 소지 마립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제22대 지증왕(500-514)

이름은 지도로,지대로,지철로 였으며 성은 김이다. 국호를 신라로 정하였으며 왕이라는 칭호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울릉도를 점령하여 국토를 개척하고 중국식으로 왕에게 시법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우경법을 시행하여 농사를 장려하고 순장법을 금하였다고 한다.

 

제23대 법흥왕(514-540)

이름은 원종이며 성은 김이다. 불고가 들어와 건원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으며 금관가야를 멸망시킨다. 이차돈이 순교한 시기다. 율령을 처음 반포 백과의 공복을 지정하는등 국가 체제 확립의 기틀을 마련한 시기다.

 

제24대 진흥왕(540-576)

삼맥종,심맥부 성은 김이다.한강 하류지역을 차지하여 삼국 통일 기반을 마련하였고 영토 확장및 변경에 순수비를 세웠다고 한다.화랑 제도 창시,국사 편찬,가야금 제작,연주등 문화창달에도 힘을썼다고 전해진다.

 

제25대 진지왕(576-579)

이름은 사륜,금륜 성은 김이다.백제의 잦은 침공을 방비하고자 내리서성을 구축하였으며 상대등 거칠부에게 국사를 맡겼다고 한다. 중국 진나라에 조공하여 화친을 맺었다고 한다. 실정으로 인해 폐위되었다고 한다.

 

제26대 진평왕(579-632)

이름은 백정이며 성은 김씨였다.수나라와 친교를 맺었으며 불교 진흥을 꾀하였다.

진지왕 폐위이후 진지왕의 형 동륜의 아들로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나라의 도움으로 고구려를 견제하였으며 당나라가 생긴 후에도 친교를 맺고 고구려를 견제하였다고 한다.

 

제27대 선덕여왕(632-647)

이름은 덕만 성은 김입니다. 진평왕이 아들없이 죽게되자 여성 최초의 신라 왕이 되었다.김춘추를 서신으로 보내 당나라의 원군을 청해 백제를 침공하였으며 당나라에 유학생을 보내 문화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제28대 진덕여왕(647-654)

이름은 승만이며 성은 김이다. 김유신을 기용하여 삼국 통일의 기초를 닦았다고 한다.

 

제29대 태종 무열왕(654-661)

이름은 춘추이며 성은 김 묘호는 태종이였다.진지왕의 첫 번째 손자이며 진골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신라의 왕이 되었다. 율령 정비,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켰다고 전해진다.

 

제30대 문무왕(661-681)

태종 무열왕의 맏아들.김유신과 함께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으며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어 삼국 통일을 이룩하였다.

 

제31대 신문왕(681-691)

이름은 명지,정명이며 성은 김씨였다.문무왕이 맏아들로 국학을 세워 학문을 장려하였으며 관제정비를 통하여 신라 황금시대를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제32대 효소왕(692-702)

이름은 이공,이홍이며 성은 김씨다. 설총에게 이두를 정리하게 하였으며 관제 정비 및 당나라, 일본과의 외교를 맺었으며 처음으로 의학 박사를 두었다고 한다.

 

제33대 성덕왕(702-737)

이름은 흥광이며 성은 김이다. 효소왕의 동생이며 본명은 융기이다. 당나라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힘썼으며 혜초가 서역에서 돌아온뒤 저술한 '왕오천축국전'을 지은 시기이다.

 

제34대 효성왕(737-742)

이름은 승경이며 성은 김입니다.성덕왕의 둘째 아들이며 파진찬 영종의 모반 평정,당나라 교섭을 통해 원만한 관계를 이루었다고 한다.

 

제35대 경덕왕(742-765)

이름은 헌영이며 성은 김이다.효성왕의 동생이며 당나라의 문물을 흡수하여 제도, 관직을 당나라 식으로 고쳤으며 국내 지명또한 한자식으로 고쳤다고 한다. 국학 진흥및 불교 증흥에 힘썼으며 통일 신라 문화의 황금시대를 이룬 시기라고 한다.

 

제36대 혜공왕(765-780)

이름은 건운이며 김씨다. 어린 나이에 왕위를 계승하였고 재위기간에 천재지변으로 인해 민심이 흉흉하였슴에도 사치와 방탕을 일삼으며 국사를 등한시하다가 이찬 김지정의 난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한다.

 

제37대 선덕왕(780-785)

이름은 양상이며 성은 김씨. 내물왕의 10세손이다. 이찬 김지정의 난을 진압한뒤 혜공왕을 살해하고 왕이 된다.

 

제38대 원성왕(785-798)

이름은 경신이며 성은 김씨다.내물왕 12세손이며 상대등에 오른뒤 선덕왕이 후사 없이 서거하자 김경신을 몰아내고 왕으로 추대되었다고 한다.

 

제39대 소성왕(798-800)

이른음 준옹이며 성은 김씨다.재위 2년만에 죽는다.그의 죽음으로 인해 신라 왕위 쟁탈전이 벌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제40대 애장왕(788-809)

이름은 중희 성은 김씨다.태종 무열왕,문무왕의 묘당을 세웠으며 해인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제41대 헌덕왕(809-826)

이름은 언승이며 성은 김이다.조카였던 애장왕을 살해한후 즉위하였으며 친당 정책을 폈다.

 

제42대 흥덕왕(826-836)

이름은 수종이며 성은 김씨다.원성왕의 손자.헌덕왕의 동생이였다.청해진을 만들었으며 장보고를 대사로 삼고 해적의 침입을 막게 한다.복색 제도를 개정하였으며 백성의 사치를 금하였다고 전해진다.

 

제43대 회강암(836-838)

이름은 제륭이며 성은 김이다.

 

제44대 민애왕(838-839)

이름은 명이고 성은 김입니다.시중으로 있을시 흥덕왕이 승하하게 되자 김제륭을 희강왕으로 내세운뒤 스스로를 상대등이 되어 정권을 잡은뒤 3년후 왕을 시해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그 다음해에 신무왕에게 살해를 당하게 된다.

 

제45대 신무왕(839 - 839)

이름은 우징이며 성은 김이다. 민애왕을 시해하고 왕위에 오르게 되나 수개월 후 병사하게 된다.

 

제46대 문성왕(839-857)

이름은 경응 성은 김이다. 신무왕의 태자이며 장보고의 반란으로인하여 피살된다.

 

제47대 헌안왕(857-861)

이름은 의정,우정이며 성은 김이다.제방을 쌓고 농사를 장려하였으며 후사가 없이 서거하여 왕족 응렴을 사위삼고 왕위를 물려준다.

 

제48대 경문왕(861-875)

이름은 응렴,의렴이며 성은 김씨다.신라 쇠퇴기에 즉위하였으며 중앙 귀족 모반 및 지방 반란 진압에 힘썼으며 황룡사 탑을 지었다.

 

제49대 헌강왕(875-886)

이름은 정이며 성은 김씨다. 재위기간중 처용무가 유행하는등 사치와 환락으로 인해 쇠퇴기를 맞게 되는 시기였다고 한다.

 

제50대 정강왕(886-887)

경문왕의 둘째 아들이며 이름은 황 성은 김씨였다. 진성여왕의 오빠이며 이찬 김요 반란을 평정하였다.

 

제51대 진성여왕(887-897)

오빠였던 정강왕이 재위 2년 만에 죽게되자 왕위에 오르게 된다.재위기간중 나라가 혼란에 빠져 후삼국으로 다시 나뉘게 된다.

 

제52대 효공왕(897-912)

이름은 요이며 성은 김이다.궁예와 견훤으로부터 많은 영토를 빼앗기고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 후삼국 정립을 막지 못하였다.

 

제53대 신덕왕(912-917)

이름은 경휘이며 성은 박씨였다.아달라의 원손이며 본명은 수종이였다.

 

제54대 경명왕(917-924)

이름은 승영이며 성은 박이다. 국운 회복에 힘썼으나 실패한다.

 

제55대 경애왕(924-927)

이름은 위응이며 성은 박이다.신라의 국세 쇠퇴때 즉위하였으며 견훤과 궁예의 압박을 받게된다. 포석정에서 견훤의 습격을 받고 자살한다.

 

제56대 경순왕(927-935)

이름은 부이며 성은 김씨이다.신라의 마지막왕으로 알려져 있으며 왕건에 항복하고 왕건의 딸인 낙랑공주와 결혼한다.경주 사심관에서 여생을 보내다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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