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종은 조선 제8대 왕(재위 1468∼1469)으로 재위 13개월 만에 죽었다. 재위 중 직전수조법(職田收租法)을 제정하여 둔전(屯田)의 민경(民耕)을 허락하였다.
출생-사망 1450 ~ 1469
재위기간 1468년~1469년
가족관계 왕비 장순왕후(章順王后), 안순왕후(安順王后), 아버지 세조(世祖), 어머니 정희왕후(貞熹王后),
휘(諱) 황(晄). 자 명조(明照:初字 平南). 시호 양도(襄悼). 1450년(세종 32년) 수양대군(세조)의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해양대군(海陽大君)에 봉해졌다가 첫째아들 의경세자(懿敬世子)가 사망하자 1457년(세조 3) 왕세자에 책봉되었고, 1468년에 즉위하였으나 재위 13개월 만에 사망했다. 첫번째 부인으로 한명회의 딸인 한씨를 맞이했으나 첫 원자를 출산하고 사망했으며, 얼마후 원자마저 사망하였다. 둘째부인으로 한명회와 인척인 한백륜(韓伯倫)의 딸을 둘째부인(안순왕후 安順王后)으로 맞이하였다.
재위 중 직전수조법(職田收租法)을 제정하여 둔전(屯田)의 민경(民耕)을 허락하였다. 또한 세조의 총애를 받았던 무관이자 병조판서였던 남이(南怡)를 겸사복장으로 강등시키며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를 단행했다. 하지만 남이와 강순(康純) 등이 연루된 역모사건이 일어나자 이들을 처형하였고 이를 남이의 옥사(獄事)라 불렀다. 그외 민수(閔粹)의 사옥(史獄) 등이 있다. 예종은 비록 어린 나이에 등극하였지만 법치주의에 입각한 강력한 왕권을 만들고자 매우 엄격한 통치를 지향했으며 선왕의 치적에 힘입은 훈구파 세력과 대립하여 개혁정책을 펼치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런 그의 의도는 신숙주(申叔舟), 한명회(韓明澮)를 중심으로 한 훈구파의 견제를 받았으며 더구나 모친인 정희왕후 마저 예종을 지지하지 않았다. 원손으로 제안대군을 두었으나 어린나이 때문에 예종을 이어 왕위에 오르지 못했고 의경세자의 아들 자을산군(성종)이 보위에 올랐다. 갑작스러운 예종의 죽음을 두고 훈구파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설이 제기되었다. 능은 경기 고양시 덕양구에 소재하는 창릉(昌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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