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길어지는 여름철 표준시를 1시간 앞당기는 서머타임은 뉴질랜드 곤충학자인 조지 버논 허드슨이 1895년 처음 고안했다는 게 정설이다. 우체국에서 일하던 허드슨은 퇴근 후 곤충 연구시간을 늘리려는 생각에서 서머타임제를 뉴질랜드 왕립협회에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미군정의 권유로 1948년 정부수립 때부터 1960년까지 운영하다가 중단했다. 그러나 실제 서머타임은 조선 시대 공직사회에 적용되었다. 즉, 조선 통일 법전인 경국대전은 여름에 관리들의 출퇴근 시간을 조정한다고 규정한다. 경국대전이 1471년 발효됐다는 점에서 서머타임은 세계 첫 시행 국가인 독일보다 조선이 무려 445년이나 일찍 시작한 셈이다.
경국대전 규정으로는 여름철 묘시(오전 5~7시)에 출근하고 유시(오후 5~7시)에 퇴근한다. 진시(오전 7~9시)에 출근하고 신시(오후 3~5시)에 퇴근하는 겨울철보다 하루 근무시간이 무려 4시간 늘어난다. 교통사정이 불편했던 당시에 관청까지 출근하려면 새벽 3~4시께 일어나 출근 준비를 서둘러야만 했다. 날이 밝기도 전에 세면과 아침 식사를 끝내고서 의관을 갖춰 집을 나선 것이다.
왕이 매달 6차례 주재하는 조회가 열릴 때는 계절과 무관하게 새벽 3~5시까지 입궐해야 한다. 겨울철 이 시간대는 한밤중이어서 궁궐 회의장으로 들어가려면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말이나 당나귀를 이용한 고위 관리들은 그나마 덜 불편했으나 하위층은 걸어 다녀야 했다. 관리들은 소속 관청에 도착하자마자 출근부(공좌부)에 서명해야 한다.
무단결근이 3번이면 노비를 처벌하고 10번이면 관리 집 대문에 해당 사실을 적은 종이를 붙이고 20번이면 파면했다. 퇴근은 평소 오후 4~5시에 가능했으나 곧바로 귀가하는 일은 드물었다.
관청이나 자택 등에서 회식하거나 강에 배를 띄워놓고 술잔을 돌리기도 했다. 점심때 정부청사에서 수많은 사람이 문밖으로 우르르 몰려나가거나 구내식당에서 긴 줄을 형성하는 진풍경은 조선 시대에는 없었다. 아침과 저녁만 먹고 점심은 걸렀기 때문이다. 당시 음식 문화는 하루 두 끼가 주류였다.
비상 상황에서는 칼퇴근이 어렵다. 중국 사신 방문이나 왕위 계승, 기근, 역병, 왜구 침입 등 중대사가 생기면 심야까지 일하거나 밤을 꼬박 새워야 했다.
관리들에게 가장 힘든 일은 숙직이었다. 자주 돌아오는 데다 근무 중에 졸거나 자리를 이탈하면 중징계를 받기 때문이다. 궁궐 귀중품이나 옷가지 등을 도둑맞으면 숙직자는 처벌과 함께 파면을 각오해야 한다. 세종대왕이 총애하는 관리도 숙직을 한번 빠트렸다가 파직됐다.
여름철 근무 여건이 매우 나쁜데도 관리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농번기인 여름에 일반 백성도 노동시간이 대폭 늘어나므로 불만을 토로할 처지가 못 됐다. 관리들의 휴식 시간은 지금보다 짧았다. 공휴일은 매월 1일, 8일, 15일, 23일 등이다. 주 6일 근무제가 1894년 갑오개혁 때 도입됐기 때문에 이때는 일요일 개념이 없었다.
24절기에도 관리들은 쉬었다. 명절 연휴도 있었다. 설날 7일, 대보름 3일, 단오 3일, 연등회 3일 등이다. 추석 휴가는 하루에 그쳤다. 왕, 왕비, 대비 생일이나 사망 때도 쉬었다. 공식 휴가는 연간 총 89일로 지금보다 20일가량 적었다. 하계휴가는 없었으나 7일짜리 특별휴가제는 있었다. 3년에 1회 부모를 뵙거나 5년에 1회 조상 묘를 살피러 갈 때, 과거 급제로 관직에 임명되거나 결혼할 때는 1주일간 휴가를 즐겼다.
우리가 서머타임제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행하고도 56년째 중단한 것은 한국의 특수성 때문이다. 우리는 세계 협정시(GMT)에 9시간 더한 일본 표준시를 함께 사용하므로 모든 일이 실제 시각보다 30분 일찍 시작된다. 여기에 여름철 출근 시간을 1시간 더 앞당긴다면 신체 부담이 너무 커진다는 게 서머타임을 없앤 주된 이유다.
유럽에서는 서머타임제(일광절약시간제)가 5월 26일 시작해 10월 29일까지 운영된다. 호주와 브라질은 10월 첫 일요일에 시작해 다음 해 4월 첫 일요일에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