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혈액암은 전신을 흘러 다니는 혈액·림프계에 생긴 암이다. 다양한 혈액세포가 암세포로 변하는 모든 질환을 혈액암으로 통칭한다. 위암·폐암 같은 고형암은 주로 딱딱한 덩어리를 형성해 비교적 이해하기 쉽지만, 혈액암은 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는 게 고형암과 다르다. 혈관을 타고 혈액이 몸 전체를 순환하면서 암세포도 전신으로 퍼진다. 고형암과 달리 특정 종양 부위가 없어 수술할 수도 없다.
엄지은 한양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흔히 '코피가 자주 나고 멍이 쉽게 든다'며 외래 또는 응급실을 방문하는 환자들이 더러 있다"며 "이렇게 병원을 찾는 환자 상당수는 '혈액암이 아닌지' 걱정한다"고 말했다. 혈액 성분 중에 지혈 기능을 하는 것이 혈소판이므로, 혈소판 수치가 정상보다 줄어들어 있다면 코피가 자주 나거나, 한 번 나면 잘 멈추지 않거나, 몸에 멍이 쉽게 드는 증상이 생길 수 있다.
혈액암 환자는 혈액을 만드는 '공장'인 골수에 암이 생기면서 '생산품'(백혈구·적혈구·혈소판 등 혈구세포)의 수·모양·기능에 이상이 생긴다. 백혈구·적혈구·혈소판 중 어느 것에 문제가 생기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증상이 다르다. 면역을 담당하고 있는 백혈구에 이상이 생기면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폐렴·장염·봉와직염과 요로계 감염 등 여러 감염에 취약해진다. 적혈구가 부족해지면 빈혈이 생기면서 창백하고, 기운이 없고, 숨이 차고, 어지럼증 같은 증상이 생긴다. 혈소판이 부족해지면 코피가 나고 멍이 쉽게 든다. 심하면 뇌출혈·객혈·위장관출혈 등 심각한 출혈이 발생할 수도 있다.
혈액암엔 △림프종 △백혈병 △다발골수종이 속한다. 림프종은 림프조직 세포가 악성으로 바뀌어 과다증식하며 생기는 암으로, 전체 암 가운데 10번째로 많이 발생한다. 림프조직은 목·겨드랑이·종격동·복부·사타구니 등에 존재하는 림프절과 비장·흉선·편도 등 조직을 포함한다. 이런 림프조직은 전신에 걸쳐 분포하는데, 이 때문에 림프종은 다른 고형암과 달리 몸 어느 부위에서든 발생할 수 있다.
김대식 고려대 구로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림프종의 발병 원인은 현재까지 완벽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부는 유전질환, 자가면역질환, HIV 감염, 면역억제제 사용으로 인한 면역결핍, 특정 바이러스·세균 감염 등이 관련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림프종의 가장 흔한 증상은 림프절이 커지는 것이다. 감염·염증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림프절이 커질 수는 있지만, 나아지지 않고 계속 커지면 림프종의 신호일 수 있다.
림프종이 진행하거나 전신으로 퍼질 경우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 △발한 △체중 감소 등의 전신 증상이 동반된다. 하지만 림프절 비대는 감염·염증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발생할 수 있어 혼동하기 쉽고, 림프종 초기엔 특별한 증상이 없어 자가진단이 어렵다. 김대식 교수는 "림프절이 커진 상태가 호전되지 않고 지속되거나 설명되지 않는 발열, 체중 감소가 상당 기간 이어진다면 반드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림프종은 조직 형태에 따라 '호지킨 림프종'(Hodgkin lymphoma)과 '비호지킨 림프종'으로 나뉘는데, 국내 환자의 90% 이상은 비호지킨 림프종에 해당한다. 국가암정보센터(2020년 기준)에 따르면 인구 10만명당 비호지킨 림프종이 35.1명, 호지킨 림프종이 2.6명 발생한다. 호지킨 림프종은 주로 어린 나이에 발생한 후 수년에 걸쳐 오랫동안 서서히 자라고, 주로 림프계 내에 국한해 발생한다. 반면 비호지킨 림프종은 나이가 들수록 발생률이 증가한다. 또 주로 림프절을 침범하지만 피부·뇌·눈·비강·부비강·타액선·갑상선·유선·폐·종격동·흉막·위·소장·대장·간·고환·난소·뼈 등 온몸의 여러 장소에서 생길 수 있다.
림프종 치료는 일반적으로 면역화학요법을 표준으로 시행한다. 이는 전통적인 항암치료인 세포독성 항암제뿐만 아니라 암세포의 특정 인자를 공격하는 표적치료제를 함께 사용하는 방식이다. 국내 림프종 환자 대다수를 차지하는 'B세포 림프종'에선 세포 표면 단백질(CD20)을 표적으로 하는 '리툭시맙'이 가장 널리 사용된다. 최근엔 다양한 표적을 타깃 삼은 신약과 이중접합항체 등이 개발되고 있다.
경우에 따라 방사선 치료, 수술적 치료를 병행한다. 특히 조혈모세포 이식은 악성 림프종 환자에게 매우 중요한 치료법이다. 김 교수는 "조혈모세포 이식은 고용량 항암화학요법 등으로 암세포를 제거한 후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이식해 골수 기능을 회복하는 방식으로, 혈액내과에서 진행하는 핵심적인 치료법"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엔 환자의 면역세포를 이용해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만드는 'CAR-T 세포치료제'도 도입돼 치료 성적과 생존 기간이 향상됐다.
림프종 치료 과정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무서운 합병증은 바로 '감염'이다. 림프종 자체 또는 치료제 사용으로 인해 환자는 상당 기간 면역 저하 상태에 놓이며, 이 경우 감염 위험도가 높아진다. 이를 막기 위해 '예방적 항생제'나 '백혈구 촉진제' 등을 투여하지만, 여전히 일부 환자는 패혈증으로 진행해 사망한다.
안타깝게도 림프종의 확실한 예방법은 없다. 따라서 평소 자기 몸 상태를 살피며 의심 증상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 김 교수는 "목·겨드랑이 등에 멍울이 만져지거나 원인 모를 체중 감소, 발열이 이어진다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며 "림프종이 위·장 점막을 침범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정기적인 내시경 검사가 조기 발견에 도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엄지은 교수는 "이전에 다른 암 때문에 항암치료를 받은 적 있거나, 방사선치료, 특히 골반 쪽 방사선치료를 받은 적 있는 환자는 혈액암을 일으킬 위험이 커지므로 암 치료받은 경험이 있다면 정기 검진을 받길 바란다"고 권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