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크라이나는 6월1일(이하 현지시간) 국경에서 4500km 떨어져 있는 러시아 내륙 시베리아 공군 기지 등을 무인기(드론)를 통해 원격 공격해 전략폭격기 등 군용기 40대 이상을 파괴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땅에서가 아닌, 러시아 본토 내에 잠입시킨 특수 요원들을 이용해서다. 110여 대의 1인칭 시점(FPV) 드론을 이용한 이번 공격으로 우크라이나를 공습해온 러시아의 폭격기 약 40여 대가 공격을 받아 이중 상당수가 파괴된 것으로 알려졌다.
핀란드에 가까운 무르만스크의 올레냐 기지, 몽골 인근 이르쿠츠크의 벨라야 기지, 모스크바 인근 랴잔과 이바노보 지역의 기지 2곳 등이 공격에 노출됐다. 벨라야 기지는 특히 전선에서 4300km 이상 떨어진 곳으로, 우크라이나가 공격한 러시아 본토 중 가장 깊숙한 곳이다. 우크라이나 드론은 러시아 내로 은밀히 반입돼 화물 컨테이너로 위장한 이동 발사대에 탑재됐다. 이후 트럭 짐칸에 실려 공군 기지 인근으로 옮겨졌고, 정해진 시간에 일제히 출격했다.
이번 작전엔 ‘거미집(Spider Web)’이란 이름이 붙었다. 우크라이나 국내 정보·방첩기관인 보안국(SBU)이 주도했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직접 지휘했다고 우크라이나 매체들은 전했다. 미국에는 사전 통보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작전에 참여한 요원들은 모두 무사히 철수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인 키이우인디펜던트는 “우크라이나가 이번에 사용한 드론은 한 대에 수백 달러(수십만원)에 불과하지만, 파괴된 러시아의 전략폭격기는 수십억 달러(수조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보안국(SBU) 당국자는 “러시아에 약 70억 달러(약 9조7000억원)어치의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판 트로이 목마’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번 비밀작전에 대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군 역사상 가장 장거리의 작전이자 역사책에 남을 만한 매우 훌륭한 성과”라고 자축했다. 그러면서 “총 117대의 드론과 이를 운용할 관제요원이 (이번 작전에) 투입됐다”며 “(러시아) 공군기지에 배치된 순항미사일 탑재 전략폭격기의 34%에 명중했다”고 했다. 특히 기지에는 Tu-160, Tu-95 등 다양한 전략폭격기와 정찰기가 배치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Tu-160은 초음속 폭격기로 핵미사일도 장착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가 6월1일 러시아를 타격한 드론 공격은 정교하게 짜여진 ‘비대칭 전술’의 결정판으로 분석된다. 우크라이나 일부 매체들은 이날 “러시아에 미리 침투해 있던 특수 요원들이 ‘제3국’을 통해 우크라이나 내에서 제작된 최신 드론을 러시아로 들여갔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2022년 2월 전쟁 발발 이후 서방과 직접 교역이 중단되자 튀르키예와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중국 등 제3국을 통해 서방 물품을 대거 수입하고 있다. 이들 루트 중 일부가 생필품 등으로 위장된 드론 부품 혹은 완제품의 밀수에 쓰였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들 드론은 이후 러시아내의 우크라이나 ‘작전 센터’로 보내졌다. SBU가 공개한 사진에 따르면 허름한 작업장으로 보이는 이곳에서선 최소 7개의 이동식 드론 발사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금속 컨테이너 모양으로, 열고 닫을 수 있는 뚜껑이 있고, 그 아래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선반에 수십대의 쿼드콥터(4개의 프로펠러가 달린 드론)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이들 이동식 드론 발사대는 트레일러 트럭에 실려 공격 목표 인근까지 옮겨졌고, 멀리 떨어진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직접 조종해 러시아 항공기들을 공격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위성자료와 유출된 영상을 분석해 “벨라야 공군 기지에서 불과 6km 떨어진 거리에서 드론들이 날아올랐다”고 전했다. 또 “다른 영상을 통해 무르만스크 지역의 올레냐 기지 인근에서 드론이 날아가는 장면도 확인됐다”고 전했다. 이 기지는 핵무기 탑재 가능 폭격기들이 상시 대기하는 러시아군의 전략적 거점 기지인데도 사실상 이번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우크라이나 정보기관 관계자는 “이번 공격에 사용된 드론은 우크라이나에서 개발된 신형 장비”라며 “GPS 교란을 당해도 스스로 날아 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이번 작년은 1년 6개월 9일 동안 준비된 것”이라고 밝혔다. 2023년 11월에 이미 입안된 작전이란 것이다. 당시는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러시아군의 반격이 거세질 무렵이었다. 영국 BBC는 “이번 드론 공격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가 보여준 가장 정교한 작전”이라고 평가했다. 이 매체는 “우크라이나의 작전은 대담하고 독창적이었다”며 “70억 달러의 피해가 발생했다는 주장은 검증 불가능하지만, 최소한 눈부신 선전 효과를 거둔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로이터는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번 작전과 관련해 미국 등 서방 국가와 사전 정보 공유를 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공격에 대해 별다른 제재 조치를 하지 않은 것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