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이후 전 세계에서 46번의 친위 쿠데타 시도가 있었다. 현직 국가 지도자가 더 많은 권력을 장악하거나 불법 또는 위헌적으로 임기를 연장하려 시도하면 대개는 성공하나 몇 가지 예외도 있다. ⓒ Colpus Dataset
지난 10년 간 친위 쿠데타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는 친위 쿠데타가 없었으나 그 이후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에서 31건의 쿠데타가 발생했다.ⓒ Colpus Dataset
윤석열 대통령이 2024. 12월 3일 저녁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국회 주변에 등장한 무장한 계엄군에게 시민들이 항의하고 있는 모습과 탄핵 촉구 집회 모습.
국가를 전복시키는 행위를 흔히 쿠데타(Coup d'Etat)로 부른다. 프랑스어에서 온 이 말의 본뜻은 '국가를 향한 타격'을 의미한다. 정작 프랑스에서는 다른 용어가 더 많이 쓰이지만 이 말은 전 세계에서 널리 쓰이는 국가 전복을 의미하는 정치 용어가 됐다. 대개는 하위 권력이 초법적 수단을 통해 상위 권력을 찬탈하며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카네기 멜런 대학교에서 전 세계 쿠데타 사례를 연구해 온 존 친 교수는 친위 쿠데타를 일반적인 쿠데타와 달리 현직 행정부 수반이 사법부나 의회와 같은 다른 권력을 상대로 불법적 행위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연장 또는 확대하려는 시도로 정의한다. 그는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를 전형적인 친위쿠데타 사례로 규정했다.
그에 따르면 친위 쿠데타는 구체적으로 "군대를 동원해 의회를 폐쇄하려는 형태를 취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실패한 사례로 남겠지만 2021년 7월 튀니지의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은 의회와 사법부를 해산하고 자신의 권한을 확대해 3년이 지난 지금도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친 교수는 설명한다.
쿠데타는 일반적으로 비민주적 체제에서나 그런 체제의 인물에 의해 발생한다고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친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들에 의해서도 친위 쿠데타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1945년 이후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들에 의해 발생한 친위 쿠데타가 총 46건에 달한다고 밝히며, 가장 최근의 사례로 한국을 들었다.
한국의 12·3 쿠데타 미수 사건은 전형적 형태의 측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다고 한다. 친 교수에 따르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발생한 친위 쿠데타 시도의 절반 이상은 사법부나 입법부를 대상으로 하며, 약 40%는 민주적 선거를 약화시키거나 선거 승자의 취임을 방해하려는 명시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친위 쿠데타의 가장 흔한 방법은 어떤 것일까? 이번 12·3 쿠데타 미수 사건처럼 계엄령 선포일까? 흥미롭게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발생한 친위 쿠데타 시도 중 계엄령을 선포한 사례는 4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한다. 더 일방적인 방식은 야당 지도자들에 대한 공격이나 선거 개입이다.
12·3 쿠데타 미수 사건이 얼마나 철저히 준비된 내란이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윤석열은 계엄령 선포와 함께 국회를 무력화시키려 했으며, 야당 지도자들과 언론인에 대한 구금을 시도한 의혹을 받고 있고, 선거 결과에 개입하려는 정황까지 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모든 친위 쿠데타의 전형적 방법이 총망라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윤석열의 쿠데타는 왜 실패했을까? 존 친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쿠데타의 성공 여부는 당파적 동맹과 군사 엘리트를 포함한 다양한 세력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조율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는 대부분의 친위 쿠데타가 군과 정당 엘리트의 이탈로 내부 지지를 상실하면서 실패한다고 설명한다.
군이 이탈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친 교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친위 쿠데타가 발생할 경우, 이번 서울 사례처럼 대규모 시민이 거리로 나와 저항하면 군부가 긴장하며 이탈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한다. 민주주의 사회의 군대와 권위주의 사회의 군대는 바로 이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민주주의 사회의 군대는 국민을 보호하는 사명을 뼈에 새기며 총을 쥐는 반면, 권위주의 사회의 군대는 군주를 보호하는 사명으로 총을 든다. 이번 쿠데타 실패 후, 일부 보수 언론은 군 지휘관들의 눈물을 폄훼하는 논설을 싣고 있는데, 이들은 여전히 권위주의 시대에 머물러 있다. 그들에게 군대란 감정 없이 주군의 명령에 전진하는 목각인형일 뿐이다. 권위주의 망상에는 대통령만 빠져 있는 것이 아니다.
친 교수는 민주주의 국가일수록 쿠데타의 성패는 군의 지지보다는 '민주주의 자본'의 축적 여부에 좌우된다고 말한다. 민주주의 자본이란 오랜 민주주의 역사를 통해 형성된 시민적, 사회적 자산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군과 민주주의 자본은 상호 대립적인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친 교수가 판단하는 윤석열 쿠데타의 실패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은 수십 년간 군사독재를 겪었고, 그 시대를 향수하거나 동경하는 망상가들이 여전히 있다. 하지만 이후 수십 년 동안 민주적 통치를 이어오면서, 이제 다수의 한국 국민은 요람에서부터 민주주의를 보고 자란 이들이다.
그의 표현대로 한국은 이미 충분한 민주주의 자본을 축적한 나라다. 이 민주주의 자본은 한국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았을 때, 제대로 작동했다.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저항했고, 정당 지도자들은 윤석열 반대에 일치했다. 국회의원들은 만장일치로 계엄 무효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것이 과거 두 차례의 쿠데타(1961년 박정희, 1979년 전두환)와 한 차례의 친위 쿠데타(1972년 박정희)가 성공했던 반면, 2024년 12월 3일의 친위 쿠데타가 실패한 결정적인 차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건재하다. 그것도 단 한 사람의 피도 흘리지 않고 광기의 수괴를 몰아낼 만큼 강하다.
현실은 허구를 능가한다. 국뽕에 찬 한 소설가가 이 '스토리'를 써냈다면, 개연성 없는 진부한 소설이라며 비난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에서 벌어진 '히스토리'다. 현실은 허구가 구성할 수 없는 세계를 만든다. 민주주의의 세계는 이처럼 주어지는 세계가 아니라, 만들어 내는 세계다.
2024년 겨울, 민주주의 후발주자 한국은 서구세계로부터 배운 민주주의가 고장이 날 때 어떻게 수리를 하는지, 다시 서구세계에 가르쳐 주고 있다. 기자의 생각이 아니다. 취재차 만났던 한 외국 시민에게 기자가 부끄럽다는 말을 했을 때, 그가 돌려준 반응이었다.
"당신들은 지금 미국을 포함한 세계를 향해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을 때, 어떻게 고쳐 쓰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 2024.12.16자에 실린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를 발췌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