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는 12월9일 ‘2024년 과학계 10대 인물(네이처10)’을 발표했다.네이처는 2011년부터 매년 과학계에서 큰 성과를 냈거나 중요한 문제의식을 제기한 과학자 10명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올해 선정된 중국 연구자들은 우주와 의학 분야에서 각각 ‘세계 최초’의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2명이나 선정되었다.
앞서 2016년 네이처10에 선정된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와, 2021년에 선정된 존 점퍼 박사는 올해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이번 네이처10에 2명의 과학자가 선정된 중국의 ‘과학 굴기(崛起·우뚝 일어섬)’를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 ‘세계 최초’ 연구 성과 쏟아내는 中國
지난 6월 25일 중국 북부의 네이멍구 사막에 우주 캡슐이 착륙했다. 캡슐 안에는 중국의 달 탐사선 ‘창어 6호’가 세계 최초로 달 뒷면에서 채취한 토양 시료 2㎏이 들어 있었다. 앞서 미국과 러시아(당시 소련) 등이 10여 차례에 걸쳐 채취한 달 토양 시료는 모두 달 앞면의 것이었다.
이번에 네이처10에 선정된 중국 국가항천국(CNSA) 소속 리춘라이 박사는 창어 6호가 채취한 달 뒷면 토양을 세계 최초로 분석하는 임무를 총괄했다. 앞서 그는 ‘창어 5호’가 달 앞면 토양을 가져왔을 때도 분석을 담당했다.
리 박사 연구팀은 달 뒷면 토양 시료에 대한 예비 연구 결과를 지난 9월 발표했다. 달 앞면 토양에 비해 사장석과 휘석 함량이 많다는 내용 등이었다. 이어 지난달에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42억년 전부터 28억년 전까지 달 뒷면의 극지방에서 화산활동이 지속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미지의 영역이었던 달 뒷면 토양 분석을 통해 달의 기원과 화산활동에 관한 내용들을 처음으로 밝혀낸 것이다. 네이처는 “세계의 과학자들이 이 시료를 분석하고 싶어 하지만, 이를 연구할 수 있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달 뒷면 시료에 대한 국제 공동 연구를 허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네이처10에 이름을 올린 또 다른 중국 연구자는 쉬후지 중국 칭화대 의대 교수다. 쉬 교수는 자가면역질환에 관한 혁신적 치료법을 개발했다. 자가면역질환은 면역 세포들이 비정상적으로 변해 자기 몸에 있는 세포나 조직을 공격하는 질병이다. 기존에는 환자 본인의 면역 세포로 만든 세포 치료제만 상용화돼 치료 비용이 수억원에 달했는데, 쉬 교수 연구팀은 다른 사람의 세포로 면역 세포 치료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타인의 세포가 체내에 들어오면 거부 반응이 일어나는 부작용을 해결하고 환자 3명을 완치시킨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네이처는 “면역 세포 치료제의 대량생산 가능성을 연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은 네이처가 지난 6월 발표한 ‘2024 네이처 인덱스’에서 미국을 누르고 처음으로 1위에 올랐을 정도로 세계 최상위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
- 엠폭스 대응, 기후 AI 개발자도 선정
인공지능(AI)과 공중 보건 등에 기여한 연구자들도 선정됐다. 레미 람 구글 딥마인드 연구원은 AI 기상예보 모델 ‘젠캐스트(GenCast)’를 개발한 성과를 인정받았다. 콩고민주공화국의 플라시드 음발라 박사는 엠폭스(원숭이 두창)의 확산을 경고해 조속한 국제 대응을 가능케 했다. 독일 물리학자 에케하르트 페이크는 원자핵을 이용한 정밀 시계를 개발한 공로를, 웬디 프리드먼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우주의 팽창 속도를 나타내는 허블 상수의 정밀 측정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연구·개발 이외 영역에서 성과를 낸 이들도 높이 평가받았다. 스위스 정부가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지 않은 것은 인권침해라는 판결을 받아낸 코델리아 베어 변호사, 가짜 논문을 쏟아내는 ‘논문 공장’을 폭로한 안나 아발키나 연구원, 20여 년 만에 캐나다 연구자들의 급여 인상을 이끈 케이틀린 카라스 캐나다 토론토대 박사과정생, 방글라데시의 교육권과 인권 신장에 기여한 무하마드 유누스 등도 네이처10에 선정됐다.
한편 네이처는 내년에 주목할 인물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을 꼽았다. 트럼프 행정부가 환경보호청, 국립보건원 등 과학과 관련된 미국의 주요 기관들을 정비한다고 공언해 여파를 주목해야 한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