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 선거법원은 11월24일(현지 시간) 치러진 우루과이 대선(개표율 99.97% 기준)에서 중도 좌파 ‘광역전선(FA)’의 야만두 오르시 후보가 49.84%를 득표해 45.87%의 중도 우파 국민당 소속 알바로 델가도 후보를 제치고 승리하여 5년 만에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오르시 당선인은 이날 승리 연설에서 “제게 투표하지 않은 유권자들 역시 소중한 민주주의 구성원”이라며 “모두를 포용해 누구도 뒤처지지 않는 통합된 사회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청빈한 지도자로 잘 알려진 같은 당의 호세 무히카(89)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을 여러 차례 드러냈던 오르시 당선인은 특히 “정치의 본질은 합의”라며 중도 우파 측 인사까지 내각에 중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오르시는 ‘모던 좌파’를 표방하며 기업 친화적 정책과 복지 확대를 동시에 추구할 것을 공약했다. 기업 투자를 제약하는 증세는 피하고 대신 투자 유치와 성장 촉진, 근로자 기술 향상에 집중하겠다고 약속했다.
오르시 당선인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알려진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 지지에 힘입어 대선에서 선두를 달렸다.
11명 후보가 경쟁한 지난달 27일 1차 투표에서 오르시 당선인은 43.9%, 델가도 후보는 26.7%를 득표해 결선에 진출했다.
암 투병 중인 무히카 전 대통령은 이날 지팡이를 짚고 투표소에 들어서며 "개인적으론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 내 가까운 미래는 공동묘지"라면서 "하지만 내 또래가 됐을 때 아주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될 젊은이들의 운명엔 관심 있다"며 투표를 호소했다.
프렌테 암플리오 연합은 2005년 수십년 이어진 보수 세력 집권을 깨고 15년간 집권했다. 하지만 2020년 높은 세금으로 인한 범죄 증가와 코카인 밀매 급증으로 유권자 마음을 잃고 권력을 내줬다.
투표 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재도 우루과이 국민들이 가장 크게 우려하는 이슈는 범죄와 마약 밀매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투표에 참여한 한 72세 유권자는 차기 정부가 "노인, 젊은이, 아이들이 안심하고 거리에 나갈 수 있는 안전을 보장해 주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한 60대 유권자는 누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든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 어려운 시기 더 많은 걸 요구할 순 없다"고 했다.
이전 좌파 정권에서 우루과이는 낙태와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고, 남미 국가 중 최초로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금지했다. 2013년엔 세계 최초로 개인 소비 목적의 대마초 사용을 허가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로 우루과이 권력 균형이 바뀔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오르시 당선인이 앞서 급진적이지 않은 변화를 약속한 만큼 경제 방향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지난달 총선으로 오르시 당선인의 소속당은 상원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지만, 하원 확보에는 실패했다.
- 중남미 국가에 부는 ‘핑크 타이드(좌파 정부 출범 흐름)’는 더욱 거세지는 양상이다.
2021년 페루를 시작으로 2022년 칠레·콜롬비아·브라질이 차례로 좌파 정부를 선택했다. 다만 우루과이의 정권 교체는 이웃 국가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아르헨티나·브라질·멕시코 등에서 나타난 극심한 좌우 대립과 달리 우루과이는 보수와 진보 연합 간 정책적 중복이 상당하고 정치적 긴장도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도 두 후보 모두 온건한 정책 기조를 보였다. ‘중남미에서 가장 안정된 민주주의 국가’라는 평가를 반영하듯 이번 선거에서 패배한 델가도 후보와 다른 진영의 루이스 라카예 포우 현 대통령도 즉시 오르시의 승리를 인정하고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새 정부는 내년 3월 1일 출범한다.
한편 우루과이는 브라질·아르헨티나와 국경을 맞댄 강소국이다. 휴전선 이남 한국보다 1.7배가량(17만 6000㎢) 큰 면적의 국토에 340만여 명이 살고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라틴아메리카 최고 수준이며 정부 청렴도나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 수준 등 지표 역시 남미에서 모범적인 수치를 보이고 있다.
정치는 전통적으로 보수 성향의 국민당(일명 ‘백당’)과 도시 중산층을 지지 기반으로 한 자유주의 정당인 콜로라도당(홍당)의 양당 체제였다. 그러나 2004년 중도 좌파 연합인 FA가 타바레 바스케스(1940~2020) 전 대통령을 내세워 최초로 집권하면서 오랜 양당 체제가 무너졌다. 이후 무히카 전 대통령과 바스케스 전 대통령을 통해 15년간 여당 자리를 지키다가 2019년 대선에서 패해 백당의 라카예 포우 현 대통령에게 정권을 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