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立冬)은 24절기 중 열아홉 번째 절기이며 이 날부터 겨울(冬)에 들어선다(立) 라는 뜻이다. 서양에서는 모든 성인 대축일(11월 1일), 즉 할로윈 다음 날인 양력 11월부터가 겨울이 시작하는 날이라고 본다.
입동이 겨울의 시작으로 여겨지지만 최고기온이 15도 안팎으로 오르기도 하는 등 온화한 편이고 겨울 추위를 딱히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상 기후를 제외하면 실제로 입동을 기점으로 평년 기온이 급락하는 시기인 것은 사실이다. 무수히 쌓인 낙엽 위에 서리가 내려 앉고 찬바람이 옷깃을 올려주는 시기이다.
입동 무렵이면 각 문중에서는 시향, 시제를 지내느라 바쁜 계절이며 농촌가정에서는 밭에서 무와 배추를 뽑아 김장을 하기 시작하는데 입동을 전후하여 5일 내외에 담근 김장이 맛이 좋다고 한다. 농가에서는 냉해를 줄이기 위해 수확한 무를 땅에 구덩이를 파고 저장하기도 한다. 추수하면서 들판에 놓아두었던 볏짚을 모아 겨우내 소의 먹이로 쓸 준비도 한다. 예전에는 겨울철에 풀이 말라 다른 먹이가 없었기 때문에 주로 볏짚을 썰어 쇠죽을 쑤어 소에게 먹였다. 입동 때는 김장 말고도 무말랭이나 시래기 말리기, 곶감 만들기, 땔감으로 장작 패기, 창문 바르기 등 집 안팎으로 겨울 채비로 바쁘다.
곶감용 감 따기는 상강부터 시작하여 늦어도 입동 소설까지는 마쳐야 한다. 너무 일찍 따면 감이 덜 익어서 말리면 '시설'이라는 하얀 분이 나지 않는다. 반대로 너무 늦게 따면 나무에서 물렀으므로 껍질을 벗겨 마르기도 전에 시커멓게 변한다. 또한, 우리 음식 재료에서 가을에 말려 저장하는 것으로는 애호박을 따 얇게 썰어 말린다. 하루 정도 꾸덕꾸덕 말랐을 때 실에 꿰어 말리면 좋은 저장식품이 된다. 가지도 세로로 썰어 말리고 표고도 잘 말려 갈무리한다. 토란 줄기를 뺄 수 없다. 손목 정도로 굵은 줄기도 볕이 좋으면 사나흘만에 마른다. 배추우거지며 무시래기도 말린다. 한편, 고사리나 참취 같은 봄나물을 말리려면 반드시 데쳐야 한다. 날것을 볕에 내다 놓으면 습도가 높아 마르면서 썩기 쉽다. 그래서 여름에는 열처리를 하여 볕에 널어 말리고 가을에는 기온이 낮고 공기가 건조하여 미생물이 쉽게 번식하지 않으므로 데치지 않고 채반에 널어 그대로 밖에 두어도 잘 마른다. 또 여러 가지 장아찌를 담고 어촌에서는 생선포를 말리며 젓갈을 담는다.
입동을 즈음하여 예전에는 농가에서 고사를 많이 지냈다.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쪄서 토광, 터줏간지, 씨나락섬이나 외양간에도 고사 지낸 후, 농사에 애쓴 소에게도 가져다주며, 이웃집과도 나누어 먹었다. 그렇게 하면서 한해의 노고와 집안의 무사하였음을 감사드리며 이웃과의 일체감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입동에는 치계미(雉鷄米)라고 하는 미풍양속도 있었다. 여러 지역의 향약(鄕約)에 전하는 바에 따르면, 계절별로 마을에서 자발적인 양로 잔치를 벌였는데, 특히 입동(立冬), 동지(冬至), 제석(除夕)날에 일정 연령 이상의 노인들을 모시고 음식을 준비하여 대접하는 것을 치계미라 하였다. 본래 치계미란 사또의 밥상에 올릴 반찬값으로 받는 뇌물을 뜻하였는데, 마치 마을의 노인들을 사또처럼 대접하려는 데서 기인한 풍속인 듯하다. 마을에서 아무리 살림이 없는 사람이라도 일년에 한 차례 이상은 치계미를 위해 출연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도랑탕 잔치로 대신했다. 입동 무렵 미꾸라지들이 겨울잠을 자기 위해 도랑에 숨는데 이때 도랑을 파면 누렇게 살이 찐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다. 이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여 노인들을 대접하는 것을 도랑탕 잔치라고 했다.
입동을 즈음하여 점치는 풍속도 여러 지역에 전해오는데 이를 ‘입동보기’라고 한다. 충청도 지역에서는 속담으로 “입동 전 가위보리”라는 말이 전해온다. 입춘 때 보리를 뽑아 뿌리가 세 개이면 보리 풍년이 든다고 점치는데, 입동 때는 뿌리 대신 잎을 보고 점친다. 입동 전에 보리의 잎이 가위처럼 두 개가 나야 그해 보리 풍년이 든다는 속신이 믿어지고 있다. 또 경남의 여러 지역에서는 입동에 갈가마귀가 날아온다고 하는데, 특히 경남 밀양 지역에서는 갈가마귀의 흰 뱃바닥이 보이면 이듬해 목화 농사가 잘 될 것이라고 점친다.
이러한 농사점과 더불어 입동에는 날씨점을 치기도 한다. 제주도 지역에서는 입동날 날씨가 따뜻하지 않으면 그해 겨울 바람이 심하게 분다고 하고, 전남 지역에서는 입동 때의 날씨를 보아 그해 겨울 추위를 가늠하기도 한다. 대개 전국적으로 입동에 날씨가 추우면 그해 겨울이 크게 추울 것이라고 믿는다.
속담으로는 “입동 전에 보리는 묻어라.”, “입동 전 송곳보리다”, “입동 전 가새보리 춘분 되어야 알아본다.” 등이 있다. “송곳보리”는 보리가 입동 전에 송곳 길이로 자라야 한다는 뜻이고, 가위보리는 보리 잎 두 개가 돋아난 때의 모양이 가위 모양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