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로(白露)는 하얀 이슬(흰이슬)이란 뜻이다. 24절기의 열 다섯번째로 태양 황경이 165도가 될 때이다. 이때쯤이면 밤에 기온이 내려가고, 대기중의 수증기가 엉켜서 풀잎에 이슬이 맺혀 가을 기운이 완전히 나타난다.
이때가 되면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가운데 낮에는 초가을의 늦더위가 농사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벼 이삭이 익어 가는 양력 8월 중순에서 9월 말까지의 고온 청명한 날씨는 농사를 짓는 데 좋고, 일조량이 클수록 수확량도 많아지게 된다. 이때의 햇살과 더위야말로 농작물에 있어서는 보약과 다름없다. 그간 여름 장마에 의해 못 자란 벼는 이때의 더위로 인해 알이 충실해지고 과일은 단맛을 더하게 되어 한가위에는 맛있는 햅쌀과 햇과일을 먹을 수 있게 된다.
아직 늦더위가 남아 있지만 저 산모퉁이에는 가을 하늘이 이미 다가와 있으며 백로에는 기러기가 날아오고 제비는 강남으로 간다고 한다. 그리고 이 즈음에는 조상의 묘를 찾아 벌초를 한다.
벼는 늦어도 백로 전에 패어야 하는데 서리가 내리면 찬바람이 불어 벼의 수확량이 줄어들며 백로가 지나서 여문 나락은 결실하기 어렵다. 제주도 속담에 “백로전미발(白露前未發)”이라고 해서 이때까지 패지 못한 벼는 더 이상 크지 못한다고 전한다. 또한 백로 전에 서리가 오면 농작물이 시들고 말라버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충남에서는 늦게 벼를 심었다면 백로 이전에 이삭이 패어야 그 벼를 먹을 수 있고, 백로가 지나도록 이삭이 패지 않으면 그 나락은 먹을 수 없다고 믿는다. 경남에서는 백로 전에 패는 벼는 잘 익고 그 후에 패는 것은 쭉정이가 된다고 알고 있으며, 백로에 벼 이삭을 유심히 살펴서 그해 농사의 풍흉을 가늠하기도 한다. 농가에서는 백로 전후에 부는 바람을 유심히 관찰하여 풍흉을 점친다. 이때 바람이 불면 벼농사에 해가 많다고 여기며, 비록 나락이 여물지라도 색깔이 검게 된다고 한다.
백로는 대개 음력 8월 초순에 들지만 간혹 7월 말에 들기도 한다. 7월에 든 백로는 계절이 빨라 참외나 오이가 잘 된다고 한다. 경상도 섬 지방에서는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十里) 천석(千石)을 늘인다.’고 하면서 백로에 비가 오는 것을 풍년의 징조로 생각하였다. 그외 속담으로는 '갈바람에도 곡식이 혀를 빼물고 자란다.' '팔월백로에 패지 않는 벼는 먹어도 칠월백로에 패지 않는 벼는 먹지 못한다.'등이 있다. 벼가 여무는 데 이렇게 백로가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는 뜻으로 “백로 아침에 팬 벼는 먹고 저녁에 팬 벼는 못 먹는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이다.
백로에서 추석까지를 ‘포도순절(葡萄旬節)’이라 하여 그 해에 첫 포도를 따게 되면 사당에 먼저 고한 뒤 그 집 맏며느리가 한 송이를 통째로 먹는 풍습도 있었다. 이것은 이 시기에 포도의 수확량이 많기 때문에 다산을 상징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부모에게 배은망덕한 행위를 했을 때 ‘포도지정(葡萄之情)’을 잊었다고 개탄을 한다. ‘포도의 정’이란 어릴 때 어머니가 포도를 한 알, 한 알 입에 넣어 껍데기와 씨를 가려낸 다음 입으로 먹여주던 그 정을 일컫는다.
그외 제철 음식으로는 포도와 함께 배, 석류, 대하, 광어가 있다. 가을이 되면 몸에 지방질이 차면서 고소한 맛이 살아나는 전어, 구수하고 씹히는 맛이 독특한 청포묵, 녹두빈대떡 등이 대표적인 음식이다. '송이는 백로에서 났다가 한로가 되면 녹는다'라고 하여 소나무 밭에서 송이가 나는 시기임을 알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