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 3. 26(금) 21:22분 경 백령도 서남방 2.5Km 해상에서 경계 임무수행 중이던 해군 제2함대사 소속 천안함(PCC-772)이 북한 잠수정의 기습 어뢰공격으로 침몰하여, 승조원 104명 중 46명이 전사하고 58명이 구조된 국가 안보차원의 중대한 사태가 발생하였다.
- 사건전 동향
천안함 피격 5개월여 전인 2009년 11월 10일 오전 11시 27분. 북한의 상해급(150t) 경비정 ‘등산곶 383호’가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했다. 서해 2함대 사령부는 인근 꽃게어장을 순찰 중이던 참수리 고속정 4척을 긴급 발진시키고 경고방송을 했으나 북한 경비정은 무시하고 2.2㎞를 남하했다. 우리 고속정이 경고사격을 하자 북한 경비정은 돌연 37㎜와 25㎜ 포로 조준사격을 했다. 이에 우리 고속정은 20㎜ 벌컨포와 40㎜ 함포로 응사했고 2분 뒤 큰 손상을 입은 북한 경비정은 북쪽으로 퇴각했다. 당시 교전했던 참수리 325호는 제1차 연평해전 때 승리를 주도했던 함정으로, 이 해전은 ‘대청해전’으로 명명됐다.
군은 북한이 보복공격을 해 올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경계강화’를 지시했으나 특이활동이 발견되지 않자 2010년 2월 18일 경계강화가 해제됐다. 그 해 1월 북한군이 서해 NLL 인근의 해안포로 도발하자 상대적으로 북한 잠수함 공격에 대한 대비는 느슨해지게 된다.
- 사건 당일 상황
피격 사건 당일인 3월 26일. 2함대 사령부 정보실에는 합참으로부터 북한의 기지를 떠난 연어급 잠수정 여러 척의 위치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정보가 들어왔으나 군은 대잠 경계태세를 강화하지 않았다. 백서는 “예전에도 이 같은 일이 수시로 있었기 때문에 통상적인 활동으로 판단해 평시 경계태세를 유지했다”고 했다. 그러나 천안함은 이날 오후 9시 22분쯤 백령도 연화리 서남방 2.5㎞ 해상에서 피격됐다. 큰 폭발음과 함께 함체가 두 동강 났고 함미가 불과 5분 만에 침몰됐다. 함수도 함체 격실에 기름과 해수가 유입되면서 오른쪽으로 90도 기울었다.
피격 당시 승조원 104명 가운데 야간당직자 29명이 함교 등에서 근무 중이었고 함장과 기관장 등 비근무자는 간편복 차림으로 각자 업무를 보거나 휴식하고 있었다.
생존자들은 “좌측 후미에서 1~2초간 ‘꽝! 꽝!’ 폭발음이 나고 정전이 되면서 몸이 30㎝~1m가량 붕 떴다가 오른쪽으로 떨어졌다”고 진술했다. 오후 11시 13분쯤 승조원 중 58명이 구조됐으며 함미는 4개의 밀폐된 공간으로 나눠져 있었지만 가장 큰 공간(40%)인 디젤기관실이 폭발과 동시에 급격히 침수돼 해저로 가라앉았다. 반면 함수는 7개의 공간으로 나눠져 더 큰 부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 수습 결과
정부는 5일 뒤 82명으로 구성된 ‘민군 합동조사단’을 구성했다. 그해 5월 15일 쌍끌이 저인망어선이 해저 정밀탐색을 하다 어뢰 추진동력장치인 ‘추진모터’와 ‘프로펠러’ 등을 수거했다. 한국, 미국, 영국 전문가들은 92일간의 조사 끝에 어뢰가 천안함 가스터빈실 아래 좌현 3m에 근접해 폭발했고 충격파와 버블 효과에 의해 함체가 절단된 것으로 판단했다.
합조단은 그 근거로 손상된 함체가 아래에서 위쪽으로 분출하듯 꺾여 있는 모습을 제시했다. 특히 배의 왼쪽 부위의 손상과 외부 형상 변화가 컸으며 좌초할 때 생기는 배 아랫부분 찢김이나 프로펠러, 소나돔 손상은 없었다. 40㎜, 76㎜ 함포 포탄이 그대로 회수돼 탄약고 폭발이나 연료탱크 폭발 가능성도 없었다.
또 어뢰 폭발에 의한 수압 발생과 타격 형상이 명확해 ‘좌초설’, ‘피로파괴설’, ‘내부 폭발설’ 등 다른 가설은 힘을 잃게 됐다. 아울러 인양된 함체에서 HMX, RDX, TNT 등의 폭약 성분이 검출돼 고성능 폭약이 들어 있는 수정무기에 의해 피격돼 침몰했다는 점이 확인됐다.
북한이 사용한 무기는 고성능 폭약 250㎏을 넣은 길이 7.35m의 어뢰 ‘CHT-02D’였다. 쌍끌이 어선으로 수거한 어뢰 부품은 북한이 해외에 소개한 어뢰 설계도면과 일치했다.
그러자 북한은 직접 입장을 내 어뢰 부품에 쓰인 ‘1번’이라는 글자를 문제 삼았다. 북한은 “함선 공격에 250㎏ 정도의 폭약이 사용됐다면 어뢰 추진체의 온도는 적게는 325도, 높게는 1000도 이상으로 올라가 잉크가 완전히 타버린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우리 군수공업 부문에서는 어떤 부속품이나 기재를 만들 때 필요한 숫자를 펜으로 쓰지 않고 새기고 있다”고 발뺌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반박할 수 없는 증거에 북한도 할 말을 잃게 됐다. 즉, 북한이 같은 해 11월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쏜 122㎜ 방사포 로켓 파편에서도 펜으로 쓴 ‘①’이라는 숫자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또한 정찰위성들을 통해 북한 잠수함 기지들에서 천안함 피격 2∼3일 전 북한의 상어급 잠수함 1척과 연어급 잠수정 1척이 서해 북한 해군기지를 이탈한 뒤 천안함 침몰 2∼3일 뒤에 기지로 복귀한 것이 포착되어 결국 북한의 잠수함 어뢰공격임이 드러났다. 당시 중국 등 다른 주변국 잠수정들은 모두 자국의 잠수함 기지에 정박해 있거나 그 주변에서 활동하였지만 북한 잠수정들만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사실은 북한의 소행임을 입증하고도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