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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5만년 전 현생 인류의 확산 경로. 데이비드 라이크의 저서 <믹스처>(동녘사이언스)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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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연구팀은 유전학 및 고고학 분석 결과 황하 집단(초록색)과 아무르 집단(붉은색)이 7000년 전쯤 만나 한국인의 조상 집단을 만들었고, 이 집단이 한반도 남부와 일본의 조몬 집단(파란색)을 밀어냈다고 분석했다. 네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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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국립유전학연구소와 도쿄대학이 만든 본토 일본인, 류큐인, 아이누와 동아시아 민족들의 비슷한 정도.
한국인의 조상이라고 할 만한 집단은 언제 어디에서 형성됐을까? 이를 밝히려면 DNA 연구를 해야 하는데 한반도는 땅이 산성이라서 뼛속에 있는 DNA가 삭기 쉽기 때문에 이를 연구하기가 불리한 곳이다.
2021년 11월 네이처지에 실린 다국적 연구팀의 논문 (Triangulation supports agricultural spread of the Transeurasian languages)이 제기한 설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유전학자인 데이비드 라이크 하버드대 의대 교수가 쓴 '믹스처', 2020년부터 2021년까지 박종화 UNIST 교수연구팀의 연구 결과 2 건을 통해 알아보기로 한다.
지금부터 4만 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당시 동아시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사는 곳만 달랐다. 한국인과 일본인, 중국인 같은 개념도 아예 없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이들은 서로 다른 종족이 돼 갔다.
최근 여러 DNA와 고고학 분석에 따르면 지금의 한국인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건 5000~7000년 전이다. 한국인을 만든 두 종족은 황하를 중심으로 중국 동부 지방에 퍼져있던 ‘황하’ 집단, 몽골~중국 북부와 러시아 일부~한반도 중·북부에 퍼져있던 ‘아무르’ 집단이다. 단군신화에 단순 비유하면 한쪽은 단군의 아버지인 환웅, 한쪽은 웅녀가 되겠다.
구석기시대 때 두 종족은 서로 만날 일이 없었다. 각자 동네에서 먹고 살기도 바빴다. 하지만 농경이 시작되면서 식량 생산이 급증했고, 이에 따라 인구도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북쪽으로 뻗어나가던 황하 집단과 남쪽으로 확장하던 아무르 집단은 요동·요서 지방에서부터 한반도 남부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마주친다. 그리고 서로 피를 섞었다. 이렇게 새로운 집단이 태어났다.
편의를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이 집단을 ‘한국인의 조상들’이라고 하겠다. 이들은 요서·요동 지방과 한반도에 자리잡았고, 원주민들을 흡수하고 서로 결혼해 자식을 낳기를 반복했다. 처음에 각양각색이었던 여러 종족들은 이렇게 대를 거듭하며 서로 비슷해져 갔다. 그러면서 ‘한민족’이라는,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종족이 만들어졌다.
이때 한반도 남부와 일본에는 또 다른 종족이 살고 있었다. 기장 농사를 주로 짓던 ‘조몬’인이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인의 조상들에게 한반도의 주도권을 단숨에 빼앗겼다. 네안데르탈인이 현생 인류한테 밀려난 것처럼. 한국인의 조상들은 벼농사를 지어서 생산력이 훨씬 높았고 인구도 많았다.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결국 조몬인은 한반도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3000년 전부터는 한국인의 조상들이 일본 땅으로 대거 건너가기 시작했다. 여기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건 수백만 명인데, 일본 원주민인 조몬인 수는 불과 7만5000여명에 불과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현대 일본인은 한국인의 조상과 조몬인이 9:1 정도의 비율로 섞인 결과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요약하면 ①5000~7000년 전쯤 지금의 중국 황하지방 쪽에 살던 사람들(남방계)과 몽골~만주 지방에 퍼져 살던 사람들(북방계)이 광범위하게 만나 피를 섞었다. ②이들은 한반도를 차지했다. 서로 동화되며 점차 한민족을 만들어 나갔다. ③이 중 일본으로 넘어가 원주민(조몬인)과 섞인 사람들이 일본인의 조상이다. 같은 역사와 언어, 문화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한국인은 여전히 단일 민족이지만, 단일 혈통은 아니다. 이쯤 되면 애초에 단일 혈통이라는 게 뭔지도 애매해진다. 아프리카 일부 부족을 제외한 세계인 99%는 혼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