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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나무는 장미과 벚나무속으로 매화라는 꽃을 피우고 매실이라는 열매를 맺는 낙엽활엽수다. 매화나무로 알 수도 있으나 정식명칭은 매실나무이다. 개화 시기는 남부지방은 1~3월, 중부지방은 3~4월이다.
매화의 원산지는 중국의 양자강 유역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원전 6세기 도광경(陶宏景, 456∼536)은 그의 저서 명의별록(名醫別錄)에 “실생의 매화가 하천과 계곡에서 자란다(梅實生漢中川谷)”라고 기록하였다. 우리나라에 매화가 알려진 오래된 문헌으로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고구려 대무신왕(大武神王, AD18∼27) 24년 8월에 “매화꽃이 피었다”라는 기록과, 일연(一然, 1206∼1289)의 삼국유사 제3권 아도기라(阿道基羅) 맨 끝에 “모랑의 집 매화나무에 꽃을 피웠네.”라는 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에는 약 1200년 전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는데 문화적 의미와 함축된 뜻은 각기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절개와 금욕의 상징으로서 선비정신을 나타내는 데 있어 으뜸 꽃이 되었다. 그런데 일본에서의 홍매는 성적인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한다. 매화 원산지인 중국에서는 중국의 꽃이라고 하면서 약용으로 그 매실이 일찍부터 이용되어 왔다. 그리하여 중국, 한국, 일본을 매화권 문화라고 하였다.
매화는 홍매화, 청매화, 백매화로 나누어진다. 전체적으로 붉은 빛을 띄고 있는 것이 홍매화, 꽃받침은 붉지만 꽃잎의 색이 하얀 것이 백매화, 흰 꽃잎에 꽃받침이 청색인 것이 청매화이다. 매화(梅花)의 한문 ‘매(梅)’는 나무 木자와 어머니 母가 합쳐진 모양이다. 이는 어머니 나무라는 의미를 뜻하는 것이다. 임신한 여성이 입덧할 때, 예로부터 신맛이 나는 매실을 많이 찾았다. 그 때문에 매실을 찾으면 출산의 고통을 감내할 마음의 채비를 한다고 하여 어머니가 되는 나무라는 뜻으로 매화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매화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정혼녀를 사랑한 청년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기도 한다.
매화의 꽃말은 ‘고결한 마음, 기품, 결백, 인내’이다. 이 꽃말 그대로 매화는 추운 겨울에도 곧게 피어나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 정신의 표상으로 삼았다. 또 '고난의 추위 속에서도 향을 팔지 않음의 꽃’으로서 우러름이 컸다.
우리 선조들이 가장 사랑했고 칭송했던 꽃 매화는 많은 별칭을 갖고 있는데 꽃이 너무 일찍 피어 '조매(早梅)'라고 부르고 추운 겨울에 핀다고 '한매(寒梅)' 또는 '동매(冬梅)'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유명한 설중매(雪中梅)는 눈속에도 핀다는 뜻이고, 봄 내음을 전한다고 해서 춘매(春梅)라고도 한다. 또 '탐매(探梅)', '심매(尋梅)'라는 말도 있는데 아직 바깥 날씨가 추운데 매화를 찾아다니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매화는 가난(貧)을 상징한다. 가난하지만 결코 초라하지 않는 기품 있는 지조와 절개를 동시에 상징한다. 사람의 영혼을 가장 맑게 해 주는 꽃이라고 말해 오기도 했다. 청렴결백한 청백리의 정신을 비유하는 꽃이기도 하다. 조선조 중기의 문신 상촌(象村) 신흠(申欽)이 지은 시에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는 구절이 있다. 아무리 불우한 환경 속에서 좌절을 맛보며 춥고 배고픈 시절을 보낸다 하여도 지조를 무너뜨리지 않고 군자의 덕과 선비의 올곧은 기품을 잃지 않는다는 뜻이다. 매화는 그리하여 매화를 한사(寒士)라고 비유해 말하기도 했다. 소나무, 대나무와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여 역경 속에서도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선비의 정신을 대변하는 말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여성들에게 순결과 정절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었기에 그 때에도 매화가 비유되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베개나 은장도 등의 장신구에도 매화문양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이는 겨울을 견디는 매화처럼 여인의 기다림, 희망, 사랑 등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 일본인이 수탈한 매화
일본인들의 매화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욕심 때문인지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다양하고 오래된 매화나무들을 수탈하여 반출했다는 기록이 많다. 일본 미야기현 마쓰시마에 용의 형상으로 옆으로 자라서 '와룡매(臥龍梅)'라는 별칭이 붙은 지역 명물 매화나무가 있다. 일본의 천연기념물로도 지정되어 있는 이 매화나무들은 임진왜란 중인 1593년 창덕궁 선정전 앞에서 훔쳐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후계목들을 반환형식으로 들여온 적이 있다. 1991년 재일교포 한 분의 노력으로 들여온 두 그루는 현재 수원농생명과학고 교정에, 1999년 미야기현 소재 사찰에서 온 두 그루는 서울 안중근의사기념관에 각각 심겨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값싸게 팔려갈 뻔한 전남 진도의 운림산방의 일지매(一枝梅)를 지킨 사연에서 매화 향기 같은 잔향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