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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원래 어떤 어원을 가지고 있었을까?

nyd만물유심조 2018. 3. 6. 18:50

 

 

-가장 유력한 어원. 탄산의 모습을 형상화한 물속의 불 '수불'

세상의 어떤 술도 알코올 발효를 할 때 무조건 생성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탄산(CO2)이다. 수분과 당분이 있는 상태에서 효모가 들어가 당분을 먹고 알코올과 탄산을 배출한다. 마치 막걸리에서 탄산이 오르는 모습 그대로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업계에서는 ‘술이 끓는다’라고 표현했다. 탄산이 부글부글 올라오는 것이 마치 술이 끓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탄산이 나오는 모습을 형상화한 가장 유력한 어원이 있다. 한국어학회 회장을 역임한 천소영 교수가 언급한 내용으로 물속에 불이 있다는 의미인 ‘수불’이다.  수불이라는 단어는 수불>수을>수울>술로 변천되었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설이다. 참고로 물과 불이란 상극의 물질이 만나 술을 이룬다는, 소통과 화합의 의미로 이어진다. 동시에 끊임없이 바뀌고 있는 변화 무쌍한 모습에 발효라는 의미로도 이어진다.

 

-유라시아 대륙을 잇는 발효 음료를 뜻하는 단어 '술'

술에 대한 또 하나의 어원은 문화인류학적으로 해석한 육당 최남선 선생의 이야기이다. 술의 어원을 고대 인도의 표준 문장어인 범어의 수라(Sura), 헝가리 계열의 웅가르어의 스라(Sra), 투르크족의 언어인 타타르어의 스라(Sra)에서 술이란 단어가 왔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단어는 일본어에서 국물을 뜻하는 시루(汁)하고도 유사한 발음을 보이는데, 이 역시 같은 어원이라고 보고 있다. 즉,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발효음료의 통합단어라는 인류학적인 해석으로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북방지역의 여진어로 술은 누러라고 하는데, 이 단어가 한반도에 들어와 누룩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결국 뿌리는 하나였다고도 말할 수 있다.

 

-수작(酬酌)문화에서 온 술, 좋은 맛에서 왔다는 술

조선말기의 통속어원학자 정교가 쓴 동언고략 (東言考略)을 보면, 술은 순박하고 좋은 술맛 순(醇)에서 비롯되거나 손님을 대접하는 수(酬)에서 '술'로 변형된 것으로 보고 있다. 술술 넘어간다고 해서 술이라는 말도 전혀 주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동언고략 내용 자체가 워낙 신빙성이 떨어지는 내용이 많아 언어학적 가치는 떨어진다고 학계는 보고 있다.

 

-술과 유사한 발음은 고려 시대의 기록부터 보여

술이라는 발음으로만 본다면, 1103년 고려에 왔던 송나라 손목(孫穆)이 편찬한 계림유사(鷄林類事)라는 견문록을 보면 한국의 술을  ‘수’(酥 su∂)로 발음했다. 명나라 때의 조선어 교재였던 ‘조선관역어’ 에는 술을 수본(數本, su-pun)으로 표현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수불과 유사한 발음을 썼던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기록으로는 중국 당(唐)나라 두보(杜甫)의 시를 한글로 번역한 시집(詩集)인 두시언해(杜詩諺解)와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등에는 ‘수을’로 기록되어 있으며, 중종 때의 한자학습서 훈몽자회(訓蒙字會) 등에서는 술로 기록되어 있다.

 

-서양에서도 술 관련 어원은 끓는다는 뜻

개인적으로는 발효할 때의 모습을 그린 수불이 맞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이유는 인류가 생각한 술에 대한 어원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술을 빚는 효모는 영어로 이스트(Yeast). 이스트의 어원은 라틴어로 기스트(gyst)인데 이 역시 '끓는다'라는 뜻이다. 발효라는 뜻의 퍼멘테이션(Fermentation) 역시 어원이 피버(Fever)로 '끓는다'라는 의미가 있다. 서양과 우리가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술은 발효할 때 마치 불로 끓이는 듯 열이 나며 탄산이 올라온다. 술의 어원이 수불인 이유가 충분한 것이다.

 

-과음과 폭음의 불명예는 사라질까

앞서 설명한 데로 한국은 전 세계 소주(증류주) 섭취 1위 국가다. 늘 많이 마시고 빨리 취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술을 대하는 태도는 늘 단순했다. 상명하복에 끝까지 마셔야 하는 술. 덕분에 과음과 폭음이 끊이지 않던 모습이었다. 이렇게 술의 어원을 생각해보는 문화는 전혀 있지 않았다. 술을 다각도에서 다양하게 즐겨보는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다. 술의 어원도 생각해보며, 취하는 술에서 음미하는 술 문화로 말이다. 적어도 이렇게 다각화된다면 산업화 시대의 잔류물인 폭음 문화는 적어지지 않을까?

 

물과 불이라는 양극의 물체가 만나 조화롭게 이뤘다는 술의 의미. 이제는 과음과 폭음이 아닌, 술의 가진 어원처럼 화합과 소통의 매개체로 마셔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