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 일본, 전통의상의 美
-한국의 한복
대한민국의 한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색이 아니라 선이다. 여성 한복에는 수많은 곡선이 숨어 있다. 추녀의 처마처럼 하늘로 올린 섶코(옷섶 끝의 뾰족한 부분), 휘돌아 감은 실개천 같은 저고리 배래(한복의 소매 아래쪽으로 물고기의 배처럼 둥글고 볼록하게 나온 부분), 저고리 자락의 맨밑 가장자리로 감긴 듯한 도련, 또 움직일 때마다 다양한 모양을 그리는 옷고름과 치맛자락…. 이들 곡선이 한복의 멋을 만든다.
한복 곡선의 반전은 직선 형태의 동정
한복의 진정한 반전 모티브는 동정에 있다. 저고리 깃 위에 덧대는 동정은 한복에서 직선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소품이다. 직선 형태의 동정이 곡선 일변도의 단순함을 파괴한다. 동정은 직선의 본능에 충실하다. 동정 끝은 칼날같이 날카롭다. 또 옷을 입었을 때 동정 깃은 각진 V자 모양이 된다. 이게 여성 한복의 매력 포인트다. 완만한 곡선에 날카로운 직선을 가미함으로써 전혀 색다른 느낌을 준다. 뿐만 아니라 한복의 곡선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곡선의 미를 극대화하고 한복의 입체감을 확대재생산한다. 또한 곡선이 주는 풍만함을 적절히 차단함으로써 한국적인 절제미를 살린다.
한복에는 음양의 조화가 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음양의 이치에 맞는 옷이다. 치마는 작은 움직임이나 바람에도 수많은 선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저고리는 그렇지 않다. 아무리 몸을 크게 움직여도 저고리 선의 움직임은 크지 않다. 옷의 무게중심을 저고리가 잡아준다. 정적이면서 동적인 아름다움은 단지 외향적 미감에 그치지 않는다. 유교적 신념에 길들여져 억압된 채 살아가야 하는 여성의 이중적인 삶을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적인 저고리와 동적인 치마, 이 두 가지의 끝없는 대비가 주는 산물이 오늘날의 여성 한복이다. 이 과정에는 억압된 여성의 삶이 온전히 묻어 있다. 억압의 대상은 자유를 의미하는 치마였다. 살아 움직이는 치마는 구속됐다. 전통사회에서 규수들은 걸을 때 왼손으로 치마를 살짝 들도록 교육 받았다. 만일에 오른손을 사용해서 옷자락을 들기라도 하면 불경하게 여겼다. 또 치마는 오른쪽으로 여밀 수 없었다. 혹시 실수로 그렇게 했다면 몸이 헤픈 여인으로 취급 받았다.
물론 저고리에도 억압 요소는 존재한다. 하지만 자유분방하게 움직이는 옷고름에 제한된다. 옷고름을 지나치게 길게 매서는 안 됐다. 만일 무릎 가까이까지 늘어뜨리면 경망스럽다고 힐책당했다. 자유분방한 옷고름의 움직임을 정숙하지 않은 여인의 행동과 동일시했다.
반전 없는 드라마는 재미가 없다. 순종적 저고리에서는 반란이 인다.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인 영정조 시대 무렵부터 저고리가 짧아지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 저고리의 표준선은 허리였다. 하후상박 패션은 선풍적 인기를 얻었다. 이 같은 패션은 유일하게 남성과 어울림이 허용되는 기생이 주도했다. 기생패션이 사대부에 퍼져나갔다. 정도가 심해졌다. 20㎝ 미만의 저고리를 입는 여성도 생겨났다. 실학자 이덕무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서 이를 개탄했다. “소매에 팔을 넣기가 어렵고 팔을 한 번 구부리면 솔기가 터질 지경”이라고.
한복은 평면재단을 한다. 평면재단이란 천을 바닥에 놓고 옷본을 뜨는 것이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우리문화 박물지>에서 “양복은 걸어놓는 옷이고 한복은 ‘개켜놓는 옷’”이라고 말했다. 이는 역설적인 말이다. 한복은 사람이 입어야 비로소 입체감이 살아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평면적으로 도안된 한복에서 어떻게 사람이 입으면 옷의 매무새가 살아나는가?
영정조시대부터 순종적 저고리의 반란
한복은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사각형과 삼각형을 평면으로 연결해 재단한다. 크고 작은 사각형 혹은 삼각형 헝겊 조각을 이어 옷을 만든다는 얘기다. 채금석 숙명여대 교수는 <문화와 한 디자인>에서 한복의 디자인 구조를 ‘사각형 구조’라고 규정하면서 “한복 바지의 작은사폭을 큰사폭에 이어 붙일 때, 작은사폭을 180도 비틀어 큰사폭에 잇는 과정에서 3차원으로 변경된다”고 말했다. 2차원 평면구조를 3차원적 입체구조로 바꾸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클라인병 원리다. 한복에 이 같은 수학적 원리가 들어있음을 찾아낸 사람은 김상일 전 한신대 교수다. 평면적 재단에는 곡선이 사용되지 않는다. 직선만으로 재단한다. 곡선미의 상징과도 같은 한복을 만드는 과정은 결코 ‘곡선적’이지 않다. 하지만 직선으로 곡선을 만든다. 그것은 직선도 곡선의 일부라는 직관, 평면도 곡면의 부분이라는 이해가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중국의 치파오
중국은 명절에도 여성 전통복인 치파오를 즐겨 입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파오는 중국의 상징으로 존재한다. 일본의 중국사학자 이시바시 다카오는 <대청제국>에서 “청나라 역사가 아주 가까이 있다”고 말했다. 오늘날 중국 문화 정체성이 청나라 때 가닥이 잡혔다는 의미다. 이시바시는 그 증거로 중국 여성 전통의복인 치파오를 첫 번째로 꼽는다.
치파오가 어떻게 중국 문화 코드로 정착된 것일까. 치파오의 한자 표기는 ‘旗袍’(기포)다. 만주족 사람을 치런(旗人)이라고 불렀다. 치파오란 만주족 남녀가 모두 입던 두루마기라는 의미다. 만주족이 입던 치파오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기병조직인 팔기제에 소속된 만주족의 부인이 입던 평상복(창푸파오·常服袍)만이 오늘날 치파오와 연관성을 갖고 있다. 원피스형 두루마기다. 소매는 좁고 깃이 서 있다. 허리에 옆트임이 있는 게 특징이다. 말타기와 활쏘기에 적합한 활동적인 옷이다.
치파오는 ‘젊은 옷’이다. 오늘날의 형태를 갖춘 것은 불과 100년이 채 지나지 않는 ‘젊은 옷’이다. 젊음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역시 허벅지까지 올라온 과감한 치파오의 옆트임이다. 샤오춘레이는 <욕망과 지혜의 문화사전, 몸>에서 “트임을 이용한 복식은 가장 높은 경지의 패션”이라면서 “그 대표적인 예가 치파오”라고 말했다.
오늘날의 치파오는 독창적이고 실험적이다. 물론 옆트임에 관한 얘기다. 복식사에서 서양 여성복도 앞트임이나 뒤트임은 있지만 원피스 스타일의 옆트임은 유례가 없다고 한다. 원피스 형태의 옆트임은 치파오의 고유 특성이라는 얘기다. 치파오의 태생이 본래 요염하고 관능적인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말타기, 활쏘기, 농사짓기에 편하게 하기 위해 트임을 둔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활동성이라는 기능에 충실한 옷이었을 뿐이다. 청대의 초기에는 남성도 치파오를 입었는데 평민남성의 경우 삼과 포 같은 두루마기와 함께 입었다. 바지도 입었다. 바지 위에 덧바지도 입었다. 여성도 마찬가지다. 아마 치파오를 홑겹으로 입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섹시한 느낌은 들지 않았을 것 같다. A라인 형태의 디자인이어서 하체부분이 펑퍼짐하다. 거기다가 발을 덮을 만큼 기장도 길었다.
치파오 어원은 만주족이 입던 두루마기
중국 복식문화에 획기적인 구조적 변화를 이끈 것은 서구문명의 유입이었다. 이것은 하나의 문화 충격이었다. 서태후는 “중국에는 모든 것이 있다. 지금 없다면 옛날에는 있었다”며 쇄국정책을 펴다가 외세에 무릎을 꿇고 만다. 서양문물의 유입은 중국 의복문화사에서도 획기적 사건이었다. 인간의 몸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시작된 것이다. 서양문물이 상륙하기 직전까지 여성이 허벅지 맨살을 보인다는 것은 중국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요즘이야 탱크톱에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다녀도 흉이 될 리 없지만 청조 말에는 허벅지는 고사하고 맨발을 보이는 것조차 큰 흉이었다. 여성의 경우는 지탄의 대상이 됐다. 발을 보인다는 것은 몸을 허락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신해혁명을 거치면서 치파오는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중국에 ‘같은 바지를 입는다’는 속담이 있다. 유행의 바람을 타면 걷잡을 수 없다는 의미다. 유행은 하나의 파동이다. 파동은 공명을 낸다. 끼리끼리 모일 때 공명은 더 크다.
중국 여성도 존 칼 플루겔의 말(“유행은 이해하는 게 아니라 복종하는 것이다”)처럼 유행에 복종했다. <중국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를 쓴 이재정씨는 “치파오 바람을 일으키는 데 한족 여학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서 “1920년대 이들이 남포로 만든 폭이 넓은 치파오를 입고 거리에 나가자 다른 학생들도 서로 다투어 따라했다”고 말했다. 치마 길이와 소매도 짧아졌다. 허리선을 강조한 치파오도 등장했다.
-일본의 기모노
일본의 전통의복 기모노에는 일본인의 미의식이 새겨져 있다.” 기모노에 대한 일본인의 생각이다. 기모노에는 일본인의 심미안이 드러나 있다. 삶을 이해하는 창이다. 서울에 체류하는 다카하시 유키는 “기모노는 밋밋해야 예쁘다”면서 “글래머러스하게 몸의 윤곽이 드러나면 밉다”고 말했다. 기모노가 몸의 선을 숨기고 있다는 얘기다. 몸매를 숨기기 위해 몸을 보정한다. 도드라진 가슴과 엉덩이는 구미히모(끈)로 조인다. 잘록한 허리 부분엔 천으로 볼륨을 넣는다. 그 위에 넓고 긴 소매와 T자형 직선형 겉옷인 기모노로 감싼다.
기모노는 긴 원피스 스타일이다. 발목까지 내려오도록 입는다. 또 옷 밑 가장자리를 접는다. 옷의 무게중심이 아래로 향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모든 장치는 직선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 그렇다보니 기모노의 모든 선은 땅과 수직으로 맞서 있다. 기모노를 ‘땅을 향하는 옷’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기모노를 입은 여성이 훨씬 단정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흐트러짐에 대한 무제한적 억제가 만든 인공적인 아름다움일지도 모른다.
기모노 밋밋한 선 살리는 ‘엣지 포인트’
간결함과 규칙성은 완고한 느낌을 준다. 간결성과 반복성이 갖는 남성적 성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모노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굴곡 없는 밋밋한 선이 기모노의 옷맵시를 살린다. ‘엣지 포인트’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슬쩍 젖혀진 어깨와 목 뒤로 드러나는 하얀 목덜미가 그것이다. 기모노의 앞깃을 올려 뒤로 젖혀서 목덜미를 나오게 입는 방식을 누키에몽이라고 한다. 누키에몽에 기모노의 에로틱함을 느낀다고 한다. 일본 철학자 구키 슈조는 누키에몽을 “기모노의 또 다른 세련미”라고 표현했다.
가치 있는 것에는 투자가 따른다. 이세탄 백화점이나 미츠코시 백화점에는 기모노 매장이 즐비하다. 백화점도 훌륭한 기모노 매장을 갖춰야 진정한 ‘명품 숍’으로 인정을 받는다. 정통 기모노는 비싸다. 웬만한 자동차보다 비싼 것도 흔하다. 기모노는 완전 수제품이다. 옷 천은 화폭이다. 유명 화가가 직접 그린 그림을 수놓거나 물들인다. 최고가의 교토 기모노 중에는 니시진오리(교토 니시진에서 만든 비단)로 만든 오비나 옷자락에 24K 금실로 수를 놓은 ‘우치카게’라는 것도 있다. 그래서 기모노를 ‘걸어다니는 예술품’이라고 명명하며 전통의복이기 때문에 비싼 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기모노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