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미국 전쟁 발발일. 1846.4.25
2번사진설명:멕시코 제1공화국과 제2공화국의 행정구역. 붉은 구역은 텍사스 공화국이 영유권을 주장한 지역이다.
1846년 4월 25일 ~ 1848년 2월 2일
장소:텍사스,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멕시코 시티
결과:미국의 대승,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과 멕시코 할양의 체결.
병력:미국78,718명,멕시코3만 2000명,
피해 규모, 미국1,733명 전사, 4,152명 부상.
멕시코11,550명 전사, 민간인 800명 사망.
멕시코-미국 전쟁(Mexican-American War)은 1846년과 1848년 사이 멕시코와 미국 사이에 발생한 군사 분쟁이다. 맥락에 따라서 멕시코 전쟁, 그리고 당시 미국 대통령인 제임스 포크에서 따서 포크의 전쟁로 불리기도 한다.
이 전쟁은 1836년 텍사스 혁명으로 텍사스 공화국이 성립되었지만, 멕시코는 이 땅을 자국의 영토로 여겨 1845년 텍사스 합병으로 텍사스가 미국의 주가 되자 일어났다.
전쟁배경을 보면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멕시코는 내전으로 번질 수도 있는 수 많은 갈등을 겪고 있었다. 1836년 텍사스 혁명으로 발발된 텍사스 공화국의 독립 문제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으로 비교적 단합을 하였다. 멕시코는 미국이 텍사스를 병합하면 전쟁이 시작될 수도 있다고 위협을 했다. 반면, 제임스 포크 대통령의 ‘명백한 운명’에 대한 정신은 서부 확장에 대한 미국의 이익에 집중되어 있었다.
멕시코의 군사력과 외교 역량은 독립 이후 쇠퇴되어 있었고, 국가의 북부 절반을 코만치 족, 아파치 족, 나바호 족 등의 인디언 부족에게 취약점을 노출했다. 이들 인디언들 중 특히 코만치족은 멕시코의 이러한 취약점을 공략하여 수 백마일에 이르는 대규모의 습격을 단행하여 가축을 약탈하였고, 이것들을 텍사스와 미국에 공급하였다.
인디언의 습격은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낳았고, 북부 멕시코를 황폐화시켰다. 1846년 미합중국 군대가 멕시코 북부에 진입했을 때 그들은 실의에 빠진 사람들만 볼 수 있었다. 그리하여 미국인들에게 저항하는 민병대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 인디언들의 적대적인 활동으로 인해 멕시코 내부와 알타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 사이의 교역과 소통은 어렵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멕시코 미국 전쟁이 발발할 시기에 뉴멕시코는 산타페 가도를 통한 미국과의 무역에 의존적일 수 밖에 없었다.
텍사스 공화국이 1845년 텍사스 합병을 통해 미국의 28번째 주인 텍사스 주가 되자 종주국이라고 생각한 멕시코는 이 합병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이듬해 1846년 발발한 전쟁이 멕시코-미국 전쟁이다.
멕시코와 미국은 각각 텍사스에 대한 종주권을 주장하였다. 텍사스는 멕시코와 싸워 독립을 쟁취한 지 오래지 않았으며 멕시코는 텍사스를 반란 지방으로 인식해 독립을 인정치 않고 있었다. 전쟁의 근본 이유는 미국의 서진 확장 경향과 최근 멕시코 독립 전쟁을 통해 독립한 멕시코의 정치적 불안정이었다. 미국은 멕시코와 협상을 하는 것이 어려운 시점이었으며 멕시코는 북부 지방을 관리하는 것이 어려운 시기였다. 텍사스는 전쟁을 지지했다. 미국 내부에서 휘그당이 거세게 전쟁에 반대했다. 멕시코에서 전쟁은 방어 전략상 필요 수준으로 여겨졌다.
전쟁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멕시코가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를 미국에 팔아넘기게 된 것이었다. 미국 정계는 새로 획득한 주에서 노예 제도와 관련하여 격렬한 논쟁을 벌여 ‘1850년의 타협’을 보았다. 멕시코에서는 정치적 혼란기가 계속되어 전쟁은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또한 이 전쟁은 유럽의 1848년의 혁명과 거의 때를 같이하고 있어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