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자동차, 휴대폰 파괴하는 'USB 킬러' 조심하자
요즘 우려되고 있는 3초에 PC 한 대를 죽일 수 있다고 하는 ‘USB 킬러’란 무엇인지 알아본다.
‘USB 킬러’의 겉모습은 휴대용 저장장치인 USB와 같다. 하지만 장치를 컴퓨터의 USB 포트에 꽂으면 순식간에 200V의 직류전압까지 충전한 다음 데이터 선을 통해 PC 내부로 방출하는 동작을 초당 8번에서 12번 반복한다. 순식간에 컴퓨터 USB에 번개가 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이 PC 파괴장치는 다크 퍼플(Dark Purple)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러시아의 보안 전문가가 개발해 2015년 10월부터 해외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인디고고’를 통해 판매됐다. 당초 이 장치는 ‘서지(Surge·이상전압)’를 보호하는 회로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테스트 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돼 미국과 유럽에서 FCC, CE 안전 인증까지 받았다.
하지만 이 장치가 네티즌에게 알려지면서 엉뚱하게도 ‘손쉽게 컴퓨터를 파괴할 수 있는 장치’로 주목받았다. 손가락만한 크기에 힘들이지 않고 남의 컴퓨터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구하기도 쉽다. 공식 사이트에서 49.95유로(한화 약 6만원)면 미성년자를 제외한 전세계 누구나 살 수 있다. 우리나라 미성년자들이 대부분 부모 카드로 물건을 구입하는 데 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에선 누구나 돈만 있으면 PC 파괴 장치를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전 세계 네티즌들이 큰 반응을 보이면서 지금은 기존 버전보다 1.5배 강하고, 3배 빠르고, 2배 내성이 강한 업그레이드 버전까지 출시됐다.
굳이 가지고 다니며 컴퓨터를 파괴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한 의도는 알 수 없으나 이들이 컴퓨터와 휴대폰을 언제든지 ‘몰래’ 죽이는데(Kill) 최적화된 장치를 만들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들이 가장 최근에 내놓은 ‘USB KILLER V3’ 버전은 구매 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에 따라 아무런 로고나 브랜딩 없이 일반 USB플래시 드라이브처럼 보이도록 하는 ‘Anonymous Edition(익명 버전)’ 모델도 판매되고 있다.
개발자측은 “USB 킬러로 ‘거의 대부분의 장치’를 파괴할 수 있다”고 소개한다. TV, 휴대폰, 심지어 자동차까지 USB 단자가 있는 기계의 대부분이 이 장치로 훼손될 수 있다는 얘기다.
유튜브 등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온 ‘USB 킬러’ 실험 영상들을 보면 장치를 컴퓨터에 꽂은 뒤 불과 1초에서 3초만에 PC가 완전히 고장나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USB 킬러를 차 내부 USB 잭에 연결하고 몇 분간 기다리자 자동차 대시 시스템이 먹통이 됐고 스테레오도 작동하지 않았다.
휴대폰도 위험하다. 스마트폰은 동작 전압이 2.5V 이하로 낮다. USB 킬러를 사용하면 100배 이상 되는 직류전류를 내부에 공급해 내부가 모두 타버려 치명적이다. USB 킬러 웹사이트에서는 아이폰5에서 7 시리즈에 연결해 파괴할 수 있는 어댑터와 여러 휴대폰에 두루 쓰이는 ‘마이크로 USB’ 어댑터까지 한번에 모아 ‘Pro Kit’이라는 이름으로 팔고 있다. 현재 20% 할인된 가격으로 세일까지 하며 홍보 중이다.
컴퓨터 하드웨어 분야 권위자인 연세대학교 정보통신공학부 김종현 교수는 “(USB 킬러는)그야말로 폭탄”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스마트폰 배터리를 완벽히 충전하는데도 30분 이상이 걸리는데 3초 만에 200V까지 전압을 높여버리는 기술은 매우 특수한 것”이라며 “테스트 용도로 개발됐는데도 엉뚱하고 악의적인 방향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USB 킬러가 일반 노트북이나 휴대폰이 아니라 자율주행자동차처럼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기기에까지 사용될 경우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서지 프로텍션 회로를 완벽하게 만들어두거나 중요한 부분의 컴퓨터 쪽으로는 USB 라인이 절대 접속되지 않도록 설계 단계에서 분리시켜 두는 등 대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USB 킬러로 경찰 수사 막을 수 있다?
‘USB 킬러’가 화제가 되면서 네티즌들은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집에 USB 킬러만 있으면 증거를 모두 없앨 수 있는 것 아니냐”, “범죄자가 경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 수시로 준비해두고 있다가 이용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USB 킬러만 있으면 컴퓨터에 저장된 모든 데이터까지 순식간에 삭제되는 걸까.
김종현 교수는 “내부 회로가 견디지 못하고 모두 타버리면 메인메모리(주기억장치)의 데이터는 지워지는 게 확실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보조저장장치인 하드디스크(HDD)는 전기적으로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관련이 없지만 디지털 데이터 선을 이용해서 저장하는 SSD의 경우엔 위험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리하면 SSD를 사용하는 PC의 경우 데이터가 지워질 수도, 운 좋게 살아남을 수도 있지만 HDD를 사용하는 PC의 경우에는 데이터가 영향을 받지 않아 다른 PC에 옮기면 데이터를 살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