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로(寒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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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로(寒露)는 24절기 가운데 열일곱 번째 절기로 천문학적으로 보면 태양의 황경이 195도인 때이며, 날씨가 선선해짐에 따라 이슬이 찬 공기를 만나 서리로 변하고 '찬이슬'이 내린다는 시기이다. 10월7~8일경이다.
서리는 늦은 가을부터 그 다음해 이른 봄에 걸쳐 나타나는데, 바람이 없고, 맑은 날 밤에 복사냉각에 의해서 기온이 많이 내려갔을 때 발생하기 쉽다. ‘서리’란, 공기 중에 있는 수증기가 냉각되면서 지면 부근의 물체에 얼음형태로 붙어있는 것을 말하는데, 이슬이 맺히는 온도보다 기온이 더 낮아지면 기체인 수증기가 고체인 얼음으로 승화되면서 서리로 나타난다.
한로를 기점으로 낮밤간의 일교차가 커지며, 비가 온 다음날부터는 점차로 추워진다. 또 가을 단풍이 짙어지고 제비 같은 여름새와 기러기 같은 겨울새가 교체되는 시기이며 찬 이슬이 내리고 날씨가 쾌청해 곡식과 과일이 잘 무르익는 절기다. 추수 막바지의 농촌은 오곡백과를 수확하며 타작이 한창이다. 그런데 서리는 식물 잎의 세포조직을 얼게 하고 기능을 손상시켜 하룻밤 사이 피해를 주기 때문에 농가에서는 농작물 관리에 주의가 필요하다.
이 시기 산수유도 붉게 물들어 가는데 이날에는 높은 산에 올라가 머리에 수유를 꽂으면 잡귀를 쫓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는 수유열매가 붉은 자줏빛으로 붉은색이 벽사력(辟邪力)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편, 한로와 상강 무렵에 서민들은 시식으로 추어탕(鰍魚湯)을 즐겼는데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미꾸라지가 양기(陽氣)를 돋우는 데 좋다고 하였다. 가을에 누렇게 살찌는 가을 고기라 하여 미꾸라지를 추어라 한 듯하다. 제철 음식으로는 고구마와 대추, 새우, 게장, 홍합, 호박 등이 있다. 또 국화가 제철이기에 국화전, 국화주를 즐겼다. 제철 과일로는 사과와 배가 많이 나오는데 배는 기침과 가래를 가라앉히고 기관지 건강에 도움이 되어 많이 먹었다.
속담으로는 "곡식은 찬이슬에 영근다", "한로 상강에 겉보리 간다(파종한다)"라는 말이 있다. 예전엔 한로~상강 시절이 보리를 이모작 하기 좋은 철이라는 의미이다. 겨울 철새들은 찾아오고 반면 여름 철새들은 남쪽(강남)으로 감으로 "제비는 청명부터 한로까지다" "한로가 지나면 제비는 강남으로 가고, 기러기는 북에서 온다".라는 말이 있다.
선조들은 한로가 되면 특히 기러기의 방문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하는데 왜 그토록 기러기를 반갑게 여겼을까? 그것은 기러기가 계절의 전령이라 믿었고 서로간의 신의가 깊다고 믿어 '신조(信鳥)'라고 부르기도 했다. 또한 '안항(雁行)'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이웃의 형제들을 높여 부르는 말과 함께, 기러기가 의좋게 날아가는 모습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따라서 혼인 예식에도 기러기가 빠지지 않았다. 신랑이 대문으로 들어오기 전에 신부 집에서는 적당한 곳에 멍석을 깔고 병풍을 두른 곳에 작은 상을 놓는다. 이것을 전안상이라고 한다. 전안(奠雁)이란 기러기를 드리는 예식으로 전안례라고 한다. 신랑이 전안상에 공손하게 꿇고 앉으면, 기러기를 들고 온 신랑측 기럭아비가 신랑에게 나무로 만든 기러기인 목안(木雁)을 준다. 예전엔 원래 살아 있는 기러기를 사용했으나 이후 사정상 나무기러기를 사용했다. 신랑이 기러기를 신부의 집에 가져와 상에 놓고 두 번 절하면 신부의 어머니는 신부방으로 가져 간다. 기러기는 평생 부부관계를 유지하면서 장수하는 조류 중 하나다. 서로 다른 가풍에서 살던 남남이 신랑 신부로 만나 기러기처럼 평생 함께 행복하게 살기 바라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