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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處暑 8.22)

nyd만물유심조 2024. 8. 19. 11:38


처서는 24절기 중 열네 번째에 해당하며 태양의 황경이 150도에 있을 때이고, 머무를 ‘처(處)’에 여름 ‘서(暑)’로 더위가 가시고 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의미로, 더위가 그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처서는 더위의 절정을 겪은 후 서서히 기온이 내려가며 폭염 및 열대야가 사라지고, 푹푹 찌는 더위의 주 원흉인 습도가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여름의 상징인 매미 소리도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고 대신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가을이 온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올해는 서울이 지난 7월21일 이후 8월22일 현재 역대 가장 긴 32일째 연속 열대야를 기록하고 있어 있어 처서를 지나면 선선해지는 '처서의 마법'이 올해는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 열대야는 밤사이(오후 6시1분~다음날 오전 9시) 기온이 25도 이상 유지되는 현상이다. (서울은 결국 24일 최저 기온이 24.9도를 기록하며 34일 만에 연속 열대야 기록을 멈췄다)

예로부터 처서가 지나면 논두렁의 풀을 깎거나 산소를 찾아 벌초를 한다. 그것은 따가운 햇볕이 누그려져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기 때문으로 한가위를 앞두고 벌초하며 성묘하는 풍습이 여기에서 생겼다고 한다. 예전엔 부인들과 선비들이 여름 동안 장마에 젖은 옷이나 책을 음지에서 말리는 음건(陰乾)이나 햇볕에 말리는 포쇄(曝曬)를 했다고 한다.

처서는 농사철 중에 비교적 한가한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정 칠월 건들 팔월”이란 말도 한다. 어정거리면서 칠월을 보내고 건들거리면서 팔월을 보낸다는 말인데, 다른 때보다 그만큼 한가한 농사철이라는 것을 재미있게 표현한 말이다.

하지만 농사의 풍흉에 대한 관심이 크기 때문에 처서의 날씨에 대한 관심도 컸고, 이에 따른 농점(農占)도 다양했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에 있는 곡식도 줄어든다고 한다. 처서에 오는 비를 ‘처서비(處暑雨)’라고 하는데 처서에 비가 오면 그동안 잘 자라던 곡식도 흉작을 면치 못하게 된다고 한다. 맑은 바람과 왕성한 햇살을 받아야만 나락이 입을 벌려 꽃을 올리고 나불거려야 하는데, 비가 내리면 나락에 빗물이 들어가고 결국 제대로 자라지 못해 썩기 때문이다. 이는 처서 무렵의 날씨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삶의 지혜가 반영된 말들이다.

경남 통영에서는 ‘처서에 비가 오면 십리 천석을 감하고,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 백석을 감한다.’라고 한다. 그만큼 수확할 수 있는 곡식이 적어진다는 뜻이다. 전북 부안과 청산에서는 ‘처서날 비가 오면 큰 애기들이 울고 간다.’라고 한다. 예부터 부안과 청산은 대추농사로 유명한데 대추가 맺히기 시작하는 처서를 전후해 비가 내리면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처서비는 농사에 유익한 것이 못된다고 한다.

속담을 보면 아침저녁으로 신선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 계절이기에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 '처서가 지나면 풀도 울며 돌아간다'라고 한다. 또 무엇이 한꺼번에 성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 '처서에 장벼(이삭이 팰 정도로 다 자란 벼) 패듯'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처서 무렵의 벼가 얼마나 성장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속담이다. 또한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고도 하였다.

여담으로 조선 연산군 시대에는 처서(處暑)를 더위가 간다는 뜻을 가진 '조서'(徂暑)라고 불렀는데 이는 처서의 '처'(處)가 연산군의 정적으로 몰려 살해당한 환관인 김처선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종반정과 함께 연산군이 폐위되면서 조서도 처서라는 이름으로 환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