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寒食)


한식(寒食)은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로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이다. 일정 기간 불의 사용을 금하며 찬 음식을 먹는 날이다.
민간에서는 조상의 산소를 찾아 제사를 지내고 사초(莎草)하는 등 묘를 돌아보는 일을 한다. 청명과 한식은 하루 차이이거나 같은 날이어서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속담이 있다.
한식은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중국고사에 이 날은 비바람이 심하여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 습관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또 하나는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충신 개자추(介子推)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는 전설이 있다. 개자추는 진나라 문공(文公, 기원전 697년 ~ 기원전 628년, 재위 : 기원전 636년 ~ 기원전 628년 진나라의 제24대 공작이다)과 19년간 망명생활을 함께하며 충심으로 보좌했으며, 식량이 없어 문공이 굶주리자 자기 허벅지살을 도려내어 먹인 일도 있었다. 하지만 문공은 군주의 자리에 오른 뒤 일 탓에 그를 잊어버리고 등용하지 않아 실망한 개자추는 면산(緜山)에 은거했고 뒤늦게 잘못을 깨달은 문공이 불러도 나아가지 않았다. 문공은 개자추를 산에서 나오게 하기 위해서 불을 질렀지만, 끝끝내 그는 어머니와 산을 나오지 않았으며 불이 꺼진 후 나무를 끌어안고 숨진 채 발견되었다. 이를 개자추의 포목소사(抱木燒死)라 한다. 이에 진문공이 그를 애도하여 한해에 이날 하루는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을 먹겠다고 영을 내려 사람들이 찬밥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는 것이 한식의 유래로 널리 알려져있다.
우리나라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청명조(淸明條)의 기록에 따르면, 이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치며, 임금은 이 불을 정승과 판서를 비롯한 문무백관 그리고 360 고을의 수령에게 나누어준다. 이를 '사화(賜火)'라 한다. 수령들은 한식날에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누어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한식이라고 한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서는 불을 나누어주는 일을 한식조(寒食條)에 기록하고, 청명에 대하여서는 언급이 없다. 고려시대에는 한식이 대표적 명절의 하나로 중요시되어 관리에게 성묘를 허락하고 죄수의 금형(禁刑)을 실시하였다고 되어 있다.
한식이란 구화(舊火)의 소멸과 신화(新火) 점화까지의 과도기란 설명이 가장 설득이 있다. 그리고 한식이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인 것도 28수(宿)의 하나이며 불을 관장하는 심성(心星)이 출현하는 것이 이때이기 때문이라 한다. 여기서 28수(宿)란 달의 공전주기가 27.32일인 것을 고려해 적도대를 28개의 구역으로 나눈 것을 말한다. 이렇게 나눈 28수에는 각 수(宿)마다 대표하는 별인 거성(距星)이 있다. 거성은 각 수(宿) 구역의 서쪽에 위치한 가장 밝은 별로 28수의 위치를 쉽게 찾게 하는 기준점이 된다. 28수는 일곱 개씩 묶어 4개의 7사(舍)로 나뉘며 각각은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과 동ㆍ서ㆍ남ㆍ북에 배정하여 봄은 동쪽의 청룡(靑龍), 여름은 남쪽의 주작(朱雀), 가을은 서쪽의 백호(白虎), 겨울은 북쪽의 현무(玄武)로 구별된다. 28수 별자리에 관한 내용은 주로 세종 때의 천문학자인 이순지가 쓴 천문류초(天文類抄)에 의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