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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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安樂死)로 흔히 번역되는 영단어 "euthanasia"는 그리스어로 직역하면 "아름다운 죽음"이란 뜻이다. 웰다잉(존엄사, 尊嚴死)은 존엄하게 죽는 방법에 대한 고민으로, 고통 없이 안락하게 죽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안락사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이외에 사망인의 자발 여부 중 반자발적 안락사(Involuntary euthanasia)가 존재한다. 쉽게 말해서 죽음에 동의할 능력이 있지만 동의하지 않은 경우로, 비자발적 안락사와 명백히 구분되는 개념이다.
2022년에는 뇌졸중 수술을 받은 프랑스의 국민배우 알랭 들롱이 향후 건강이 악화하면 스위스에서 안락사로 생을 마감하기로 결정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와 주목 받았다. 안락사는 한국에선 불법이지만 네덜란드, 스위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일부 국가에선 허용하고 있다. 스위스는 외국인에게도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유일한 국가다. 스위스 조력사망 단체에 가입한 한국인 수는 약 300명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네덜란드는 2002년 4월 세계 최초로 적극적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현재 불치병을 앓는 만 12세 이상에 대해 안락사를 허용했다. 12~16세 사이 어린이도 부모 동의를 받아 안락사가 가능했다. 하지만 12세 이상으로 규정된 안락사 연령 제한을 낮춰달라는 의료계 요청에 따라 지난해 안락사 허용 연령을 만 12세 미만 어린이로 확대하기로 했다.
네덜란드에서 안락사를 승인받기 위해선 환자가 본인의 의지로 신청해야 하고 견디기 어려운 지속적인 고통이 수반되고, 최소한 의사 2명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등 6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네덜란드 정부 집계에 따르면 2022년 시행된 안락사는 8700여 건이었으며, 12∼16세 사이 어린이 안락사 사례는 1건이다. 판아흐트 전 총리 부부처럼 동반 안락사는 안락사가 합법인 네덜란드에서도 흔치 않은 사례지만 최근 들어 증가하는 추세다. 네덜란드에서 처음 동반 안락사 사례가 보고된 2020년 26명(13쌍)이 동반자와 함께 생을 마감했다. 이듬해에는 32명(16쌍), 2022년에는 58명(29쌍)이 동반 안락사를 택했다.
네덜란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적극적 안락사를 합법한 나라로 6가지 조건은
1. 환자의 숙고와 자발적 요청이 있고,
2. 환자의 고통은 견딜 수 없으며 좋아질 가능성이 없고,
3. 환자의 현재 상황과 예후에 대하여 알고 있으며,
4. 다른 적절한 해결책이 없고,
5. 두 명 이상의 독립적인 의사와 상의하였고,
6. 위의 내용을 서면으로 제공한 경우 합법적으로 약물투여를 받을 수 있다. 현재 네덜란드 전체 사망의 약 5%가 안락사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안락사란 불치의 중병에 걸린 이유로 생명유지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에 대하여 직접 혹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고통없이 죽음을 이르게 만드는 행위를 말한다. 안락사는 크게 소극적 안락사와 적극적 안락사로 나눌 수 있다. 소극적 안락사란 더 이상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거나 하지 않는 것을 뜻하고 적극적 안락사란 현재 임박한 죽음이 없이 환자나 보호자의 요청에 따라 약물 등을 사용해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소극적 안락사에 비하여 적극적 안락사는 많은 도덕적 및 법적인 논쟁을 일으키기 때문에 허용하는 국가도 있고 그렇지 않은 국가도 있다. 하지만 이미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한 유럽 일부 나라들은 말기 암환자 등을 대상으로 안락사 제한 연령도 없애는 등 그 범위를 넓히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법률에서는 소극적 안락사는 허용되지만 조력자살을 포함한 적극적 안락사는 허용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보도에 따르면 2023년까지 10여명의 한국인들이 적극적 안락사가 허용된 스위스로 찾아가 생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문제는 적극적 안락사는 생명과 관련된 많은 논란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의 존엄성은 소중한 것으로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한다면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경시할 가능성과 함께 사회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적극적 안락사제도를 악용해서 살인을 안락사로 위장하거나 협박을 하는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으로 강요된 죽음이 될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질병은 고통과 함께 가족들에게 정서적이나 경제적으로 부담을 주는데 환자들은 가족들에게 이러한 부담을 준다는 죄책감으로 인하여 원치 않는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과 함께 죽음도 개인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것으로 어떻게 어떤 시간에 죽을지를 본인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특히 악성종양 등 완치되지 않는 만성질환으로 인하여 조절되지 않는 통증으로 고통받고 있거나, 뇌경색으로 사지의 움직임이 불가능하고 배변이나 급식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등 자율적인 삶이 불가능하거나, 혹은 노쇠화로 걷지도 못하는 일상생활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등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는 상황이 오면 누구나 스스로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교의 전통과 함께 우리나라도 이러한 논의를 금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최근 들어 적극적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최근 활발해지고 있다. 2019년 서울신문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80.7%가 적극적 안락사를 찬성한다고 하였다. 이 중에서 환자인 경우 적극적 안락사를 찬성하는 경우 58.7%이었다. 하지만 적극적 안락사를 직접 시행하는 의사나 이러한 행위를 법적으로 다루는 전공의와 사법연수원생의 경우 각각 21.9%, 39.8%만이 찬성하였다. 2021년 한 대학병원 교수팀이 일반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76.4%가 적극적 안락사에 찬성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