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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년전 12월1일 포니 생산

nyd만물유심조 2016. 12. 1. 10:40

 

 

故 정세영 당시 현대차 사장이 '포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위 사진) "고유모델을 만들지 않으면 우리는 죽는다" 고 고유모델 개발에 반대하던 임원들에게 정사장은 말했다.

 

1975년 12월1일 즉 41년전 첫 국산 고유모델 자동차 '포니'가 울산공장에서 생산이 시작됐다.

포니는 당시 자동차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을 세계적인 자동차 생산국으로 만든 초석이기도 하다. 현대자동차가 개발한 후륜구동 소형차인 포니는 영어로(PONY) 조랑말을 뜻한다. 최고 시속 140㎞, 배기량 1238cc로 출시 당시 판매가격은 약229만원이었다.

 

1975년 울산공장에서 50대 생산을 시작으로 1976년 1만726대, 1977년 2만5000여대, 1978년에는 5만대 등 당시 도로는 포니 물결로 넘쳐날 만큼 인기가 대단했다. 현대차는 기세를 이어 1982년 '포니2'를 내놓는 등 국내 대표 자동차 제조업체로서 입지를 다진다. 하지만 포니의 탄생 과정은 무모하고 험난했다. 오늘날에는 3년이면 새 모델을 개발할 만큼 국내 기술력이 발달했지만 당시 기술 수준으로는 고유모델의 개발과 생산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당시 현대차는 외국모델 단순조립을 통해 얻은 기술을 바탕으로 해외기술과 협력해 고유모델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포니 탄생의 중심에는 정세영 사장이 있었다. 그는 포니 개발부터 생산까지 진두지휘하며 '포니 정'이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정세영 사장은 이탈리아에 가면 자동차 개발업체가 많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1973년 봄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 조르제토 쥬지아로를 만나 신차 디자인·설계 용역 계약을 맺는다.

 

이어 영국 유명 엔지니어 조지 턴불 BLMC 부사장을 영입해 생산설비에 대한 자문을 맡기고 일본 미쓰비시와 엔진·트랜스미션·액셀 등의 기술제휴 협상을 성공시킨다. 그렇게 개발 시작한 지 1년6개월, 포니는 1974년 10월 55회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인다.

 

포니는 1976년 국내 판매 첫날부터 계약 건수 1000대를 돌파했고, 첫해에만 1만726대가 팔리며 국내 승용차 판매의 43.5%를 차지하는 큰 성과를 거뒀다.

 

현대자동차에게 '포니'는 첫 수출의 쾌거를 이룬 상징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현대차는 에콰도르에 포니 6대 수출을 시작으로 1976년 13개국에 1042대의 차를 수출했고 10주년인 1986년에는 66개국 30만2134대를 기록했다. 올해 10월까지 누적 수출 대수가 총 2363만2832대를 기록하는 등 현대차는 포니 수출을 발판 삼아 명실상부 세계적인 자동차기업으로 우뚝 섰다.

 

이처럼 포니는 한국 자동차산업이 외국자동차 회사의 기술 종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또한 1980년대 자동차시장 부흥 교두보를 마련했으며 한국자동차 수출시대를 열기도 했다.

 

포니는 지금도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포니는 1990년 1월을 마지막으로 단종 됐지만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6512대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