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 카스트로, 쿠바 독재자 90세로 사망
쿠바 혁명의 주역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11월25일(현지시간) 사망했다.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장이 피델 카스트로 전 의장이 이날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피델 카스트로는 1959년 1월 1일 바티스타 독재정권 붕괴시킨 공산혁명을 이끈 지도자다.
카스트로 전 의장은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의 친미 행보에 저항하는 민족주의자였다. 1953년 몬카다 병영을 습격하다 체포됐다 나중에 풀려났다. 멕시코로 건너간 카스트로 전 의장은 쿠바 혁명 조직을 건설했고, 1956년 체 게베라 등과 함께 쿠바 혁명을 일으켰다.
1959년 바티스타 정권을 전복시킨 후 쿠바 총리가 된 카스트로는 1965년 쿠바 공산당 제1서기가 되어서 쿠바를 일당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만들었다. 1976년 그는 각료 회의 의장과 더불어 국가평의회 의장에 취임한다. 또 쿠바군의 최고위 군사직인 '코만단테 엔 헤페'(Comandante en Jefe, 최고 사령관)에 취임했다.
2008년 고령과 건강악화로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권력을 이양한 카스트로는 2011년 마지막 공식 직함인 쿠바 공산당 1서기직도 라울에게 넘겨줬다.
피델 까스뜨로 루쓰, 1926년 8월 13일 ~ 2016년 11월 25일)는 쿠바의 인권 변호사, 노동운동가, 군인이자 정치가, 공산주의 혁명가이다. 라틴아메리카의 혁명 지도자로서 1959년부터 1976년까지 쿠바의 총리를 지내고, 1976년부터는 국가평의회 의장을 지내다가 2008년 2월에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의장직을 승계하며 2선으로 물러났다.
처음에 카스트로는 쿠바에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과 이에 동조하는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에 대항하는 민족주의자였다. 1953년 그는 몬카다(Moncada) 병영을 습격하다 실패하여 체포되었으며 재판을 받고 투옥되었다가 나중에 풀려났다. 그는 멕시코로 가서 당시 쿠바 정권을 공격할 조직을 건설하여 훈련했고, 1956년 12월에 체 게바라 등을 이끌고 공격을 실행했다.
카스트로는 바티스타 정권을 전복시킨 쿠바 혁명으로 권력을 잡아 쿠바의 총리가 되었다. 1965년 쿠바 공산당 제1서기가 되어서 쿠바를 일당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만들었다. 1976년 그는 각료 회의 의장과 더불어 국가평의회 의장에 취임한다. 또 쿠바군의 최고위 군사직인 "코만단테 엔 헤페(Comandante en Jefe, 최고 사령관)"에 오른다.
카스트로는 장출혈로 수술을 받는 등 고령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어 2006년 국가평의회 제1부의장이었던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권력을 이양할 뜻을 밝혔으며, 2008년에는 의장직이나 최고 사령관직을 수락할 생각이 없음을 공식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08년 2월 쿠바 국회는 라울 카스트로를 신임 국가평의회 의장으로 선출했다. 2011년 4월 20일, 피델 카스트로는 마지막으로 갖고 있던 공식 직함이었던 공산당 제1서기직까지 라울 카스트로에게 물려주며 공식적으로 은퇴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집권한 지도자(52년 2개월 혹은 49년 5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쿠바 동쪽 끝 올긴(Holguin) 주의 한 소도시에서 출생. 1945년 말 아바나대학교(University of Havana) 법학과에 입학하였고, 졸업 후 변호사가 되었다. 대학 재학 때부터 정치활동을 하였으며, 1947년 도미니카공화국의 독재자 라파엘 트루히요(Rafael Trujillo) 정권을 타도하기 위한 침공에 합류하였다.
1948년에는 콜롬비아 보고타(Bogota)에서 발생한 도시폭동사건에 참여하였다. 1953년 당시 쿠바의 독재자 바티스타(Batista)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동지 156명과 함께 쿠바의 산티아고데쿠바(Santiago de Cuba)에 있는 몬카다(Moncada) 병영을 습격하였으나 실패하고 체포되어 15년형을 선고받았다. 1955년 5월 특사로 풀려나 아바나로 돌아오자마자 멕시코로 망명, 바티스타 정권 타도 계획을 세웠다. 1956년 86명의 동지들과 함께 원정에 나서 오리엔테(Oriente) 주 시에라마에스트라(Sierra Maestra)에 숨어들어 게릴라전을 전개하였다.
1959년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고 공산독재정권을 세워 총리가 되었다. 총리에 취임한 후 토지개혁을 실시하는 한편,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자본을 몰수하는 등 사회개혁을 단행하였으며, 그해 제1차 아바나선언을 발표하여 라틴아메리카 해방을 제창하였다. 1961년 1월 미국과 국교를 단절하였다.
1961년 4월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고 쿠바 해안을 침공한 반혁명군을 격퇴하였으며, 5월 쿠바혁명의 사회주의적 성격을 선언하고, 7월 쿠바사회주의혁명통일당을 결성, 제1서기에 취임하였다. 1962년 10월 소련의 중거리미사일의 쿠바 반입을 둘러싸고 핵전쟁 위기로까지 발전하였으나 미국이 카스트로 정부 전복을 기도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종결되었다. 이듬해 제2차 토지개혁을 실시하였다. 1965년 쿠바사회주의혁명통일당을 PCC(Communist Party of Cuba:쿠바공산당)로 개칭하고, 사회주의 건설에 박차를 가하였다.
당초에는 중국이나 소련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고 자주독립이라는 입장을 취하였으나, 1972년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유럽 공산권의 경제협력기구인 경제상호원조회의(COMECON)에 가입한 후 점차 친소적(親蘇的) 성향을 띠게 되었다. 1976년 신헌법을 제정하는 등 사회주의국가체제 정비에 힘썼다. 1976년 12월 국가평의회 의장에 취임하여 당·정부·군의 최고권력자가 되었다. 1980년대 후반 소련 등 동구권의 민주화 바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공산주의 정책을 추진해나갔다.
2006년 7월 장 출혈 수술을 받기 위해 친동생이자 공식 후계자인 라울 카스트로(Raul Castro) 국방장관에게 임시로 권력을 이양한 뒤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사망설이 돌기도 하였으나, 10월 말 국영 텔레비전에 모습을 보이면서 사망설을 일축하였다. 2008년 2월에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사임하고 권력을 라울 카스트로에게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