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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6만년전 원주민' 국민으로 인정할지 여부 국민투표

nyd만물유심조 2023. 8. 31. 19:55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8월30일(현지시간),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의 주도 애들레이드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0월 14일 호주 원주민을 대변하는 기구를 세우는 내용의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개헌안이 통과되면 원주민은 1788년 영국계 이주민들이 호주를 건국한 지 235년 만에 처음으로 국민의 지위를 갖게 된다.

6만 년 이상 호주 대륙에 살아온 원주민은 약 80만명으로 호주 전체 인구(2600만 명)의 3.2%를 차지한다. 그러나 원주민은 헌법상 국민에 속하지 않는다. 이는 원주민을 국민으로 인정하는 캐나다, 뉴질랜드와는 대조적이다.

영국이 호주 대륙을 식민지로 삼기 전부터 이 땅에 살았던 원주민들이 국민에서 배제된 건 가혹했던 원주민 말살 정책에 기인한다.

호주 헌법은 "영국이 주인 없는 땅에 국가를 세웠다"는 논리에 기반해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헌법에서 원주민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국민의 범주에 속하지 못했다.

여기에 1900년대 초반부터 70년간 '원주민 동화 정책' 혹은 '문명화' 명목으로 원주민 아이들이 강제로 백인 가정에 입양되기도 했다. 이들은 원주민 언어가 아닌 영어를 가르치는 등 서구식 교육으로 이들의 정체성을 말살하려 노력했다.

원주민 또한 이런 상황을 지켜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원주민들은 호주 정부에 맞서 투쟁에 나섰고, 1967년 원주민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개헌안에 유권자 90% 이상이 찬성하면서 참정권을 쟁취했다. 이에 따라 원주민 동화 정책 관련 법이 폐지됐고, 2008년 케빈 러드 당시 총리가 말살 정책에 대해 공식 사과하기도 했다.

원주민의 정치적 목소리를 대변할 헌법 기구가 없었던 탓에 원주민의 삶의 질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원주민의 평균 수명은 호주인보다 7~8년 짧을 뿐 아니라 자살률도 두 배나 높다. 특히, 원주민 거주 지역에서 폭행 등 범죄 발생이 빈번해지면서, 호주 사회가 이들을 국민으로 끌어안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2000년대 들어 커지기 시작했다.

이에 지난해 총선에서 정권을 되찾은 노동당은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개헌안은 헌법에서 애버리지널(호주 원주민)과 토레스 해협 주민들을 호주 최초의 주민으로 인정하고 이들을 대변할 헌법 기구 '보이스'를 설립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여당을 비롯한 개헌 지지자들은 '보이스'가 원주민의 건강과 교육, 고용 환경 등을 개선하고 국가를 통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야당을 비롯한 개헌 반대자들은 이런 움직임이 호주인들을 인종에 따라 분열시키고 원주민 단체에 과도한 권한을 넘겨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일부 원주민 권익 보호 단체도 '보이스'가 실질적으로 원주민 권익을 보호하지도 못하면서 생색내기에 그칠 수 있다며 반대하는 상황이다.

- 호주의 개헌과 국민투표
호주에서 헌법을 바꾸려면 국민투표에서 투표자 과반이 찬성하고 6개 주 중 4개 주에서 과반 찬성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개헌 반대 여론이 더 높은 상황이다. 호주 여론조사회사 리졸브가 지난 8월 9∼1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개헌 반대 비율은 54%로 찬성(46%)보다 높았다. 주별로도 빅토리아주와 태즈메이니아주만 찬성 비율이 높았고 나머지 4개 주는 반대가 더 높았다.

호주는 지금까지 44번 개헌을 시도했지만, 국민투표를 통과한 것은 총 8번에 불과하다. 가장 최근 개헌을 시도한 것은 1999년이다. 당시 호주 정부는 개헌을 통해 국가 체제를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전환하려 했으나, 투표 결과 부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