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의 탄생과 정보통신시대 - 액체가 유리로 변하는 과정 현재도 논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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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8년 완공된 파리의 생 샤펠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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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해저광케이블 지도
로마의 역사학자 플리니가 쓴 ‘박물지(Nature History)’에 따르면 유리는 기원전 3000년경 페니키아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천연소다를 거래하던 페니키아 상인이 강가 모래톱에서 솥을 걸어놓고 식사 준비하던 중에 천연소다 덩어리가 불에 녹아 모래와 뒤섞이는 일이 벌어졌다. 뜨거운 소다와 모래가 섞이니 투명한 액체 상태의 물질로 변했고 이것이 굳어서 튜명한 유리가 됐다. 모래를 이루는 이산화규소(SiO2)와 천연소다 속 나트륨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유리가 된 것이다.
페니키아의 제조법이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 전해져 소다석회 유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이 제조 기술이 세계 각지로 전파됐다.
천연소다(natural soda, natürliche Soda)라는 것은 천연산의 탄산나트륨염으로 사막 지대의 함수호 또는 천연 함수천 중에 존재한다. 탄산나트륨 함량이 많은 함수호를 소다호라 부르고, 그 호수 바닥, 호수변에 퇴적해 있는 소다 결정을 트로나라고 부른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미라의 보존을 위해서 천연 소다나 식염을 이용하였다.
로마제국 전성기인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 로마가 유리 산업의 중심지가 되는데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유리 성형 기술이 발전했다. 특히 입으로 불러 원하는 모양을 만드는 블로잉 기법이 크게 발전했다.
우리나라에도 삼국시대에 본격적인 유리 문화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2000년 초 전북 익산 왕궁리와 미륵사지터에서 발견된 초록색과 보라색의 유리 구슬과 유리를 녹였던 도가니 등을 보면 7세기 무렵 우리도 독자적인 유리 제조 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영어 ‘글래스(glass)’의 어원은 투명하고 빛나는 물질을 지칭하는 라틴어 ‘글래숨(glaesum)’이고 우리가 쓰는 유리(琉璃)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인 ‘바이두랴(Vaidurya)’에서 나왔다. 바이두랴가 라틴어 ‘비트룸(Vitrum)’을 거쳐 한자 벽유리(壁琉璃)로 음역됐고 여기서 유리가 나온 것이다.
유리는 너무 귀한 물건이어서 보물이나 장신구로 주로 사용되었고 성당이나 모스크 같은 종교적 건물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쓰였다. 색유리를 통해 쏟아지는 다양한 색깔의 햇빛보다 신의 은총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유리의 뒷면을 주석 같은 금속으로 막으면 빛이 반사돼 거울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12세기 이후 유리 거울도 널리 사용됐다. 하지만 유리를 넓고 편편하게 만드는 기술이 발달되지 않아 크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1670년대 프랑스에서 유리를 녹여 금속 테이블에 붓고 롤러로 펴서 냉각시키는 기술을 개발하면서 대형 유리와 대형 거울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프랑스의 이 기술이 집대성된 곳이 베르사이유 궁전의 ‘거울의 방(Hall of mirrors)’이다. 루이14세 즉위 17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울의 방은 578개 거울로 장식된 17개면의 거울 벽면과 17개의 유리창으로 구성돼 있다.
유리를 넓고 편편하기 만들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유리는 건축 소재로도 널리 활용되기 시작했다. 1851년 영국은 만국박람회의 전시장으로 쓰일 건물을 세상에 선보이는데 건축가 조지프 팩스턴 경이 하이드파크 내에 철골과 유리로 길이 563m 폭 124m, 축구장 18개 크기의 거대한 온실 같은 건축물을 1년 만에 완성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것이 크리스탈 팰리스, 바로 수정궁이다. 그 이후 철골과 유리는 도시 건축의 핵심적인 소재가 됐다.
- 정보통신과 유리
유리 진공관이 전자공학의 시대를 연 것처럼 정보통신의 시대도 유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바로 유리로 만든 광섬유 덕분이다. 세계의 인터넷 네트워크는 유리로 만든 광케이블로 연결돼 있다.
이 이야기도 미국의 유리기업인 코닝 글래스 웍스에서 시작됐다. 1970년 코닝의 연구진들이 큰 손실 없이 빛을 전송할 수 있는 유리섬유를 개발하면서 광통신 시대를 열었다.
그 이론적 기반은 1960년대 중국계 물리학자인 찰스 카오에 의해 정립됐다. 카오는 광섬유 내 빛의 손실이 유리에 포함된 불순물에 의한 것임을 밝혀내고 손실이 적은 후보 물질로 석영 유리를 제시했다. 카오는 이런 공로로 ‘광통신의 아버지’로 불리며 2009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유리 광섬유는 광 신호를 전달하는 광통신의 핵심 소재이다. 컴퓨터와 같은 기기가 정보를 보내는 경우, 이 데이터는 전기 에너지의 형태로 출발하고 컴퓨터의 레이저가 신호를 광자, 즉 빛으로 변환시켜 광섬유 속 코어를 따라 파동을 통해 이동시킨다.
무선 통신과 클라우드 컴퓨팅이 통신의 세계를 확장하였지만, 음성, 동영상, 데이터 신호 대다수는 여전히 광섬유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된다.
광섬유 소재의 기술 발달로 지금은 1초에 100기가비트 이상 속도로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다. 한 가닥의 광섬유가 최대 1억 건의 고화질 동영상 스트리밍을 동시에 지원한다. 새로운 광섬유 혁신 덕분에 가정에서는 컴퓨터, 운영시스템, 게임 콘솔, 노트북 등을 고속으로 광통신 연결을 할 수 있다.
광섬유가 유리로 만들어져서 약할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인장 강도가 고장력 강철과 티타늄 보다 높다.
모바일이 대세가 되도 광케이블의 역할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났다. 무선통신도 광통신용 광케이블이 설치되어 있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세계의 디지털 데이터의 99%가 해저 광케이블로 유통되기 때문에 광케이블을 둘러싸고 패권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인류는 역사를 특정 소재로 구분해 왔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로의 역사 구분이 바로 그렇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지금은 ‘유리 시대’로 불러도 될 만큼 우리는 유리에 둘러싸여 있다. 유리로 된 집에 살고 유리로 된 차를 타고 유리로 지어진 회사로 출근한다. 유리로 된 안경을 쓰고 유리섬유를 전달되는 정보를 읽는다. 그뿐인가. 우리는 하루 종일 유리로 된 스마트폰 화면을 만지면서 생활한다.
한림대 반도체·디스플레이스쿨 고재현교수는 “오랜 역사 속에서도 왜 유리라는 물질이 만들어지는지 과학적인 관점에서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과학자들은 현재도 액체가 유리로 변하는 과정을 다양한 방법들로 조사하며 정교한 이론적 체계를 만들고 있으나 유리 상전이 과정의 본질에 대해서는 계속 논쟁 중”이라고 말했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필립 앤더슨도 “고체 상태 이론에서 가장 심오하고 가장 흥미로운 미해결 문제는 아마도 유리와 유리 상전이의 본성에 대한 이론일 것”이라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