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가장 치열하고 잔인했던 전투 10가지
기원전 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많은 전투 중에서 역사에 남을 만한 전투를 소개한다.
10. 테르모필레 전투(Battle of Thermopylae (480 BC)) : '300' 의 배경이 된 그 전투
- 배경 영화 : The 300 Spartans(1962), 300(2006)
이 전투는 페르시아가 두 번째로 그리스를 침공한 전투다. 우리가 영화 300에서 친숙한 그 전투다. 그리스 연합군 왕인 레오니다스 1세와 7,000여명의 병력이 페르시아 왕인 크세르크세스 1세가 이끄는 10만명의 병력에 대항해서 싸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고자 그리스 군은 길이 좁은 고갯길로 이동하여 적을 대항한다. 고갯길은 한번에 싸울 수 있는 수가 제한되어 있어 그리스군 매우 유리하였다. 하지만, 크세르크세스 1세는 내부 밀고자에 의해서 뒤쪽 통로를 알게 되고 레오니다스의 병력 천명과 스파르타 정예군 300명은 결국 전사하게 되면서 전투는 끝이 났다.
9. 투르-푸아티에 전투(Battle of Tours / Poitiers (732)) : 이슬람 유럽 정복의 전환점
- 배경 티비 시리즈 : The Dark Ages(2007)
이 전투는 프랑크 메로빙거 왕조의 카롤루스 마르텔이 프랑스 내 투르와 푸아티지역에서 우마이야 왕조의 이슬람군을 무찌른 전투다. 당시 이슬름 세력은 북 아프리카는 물론 서유럽까지 확장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프랑스 군대는 보르도에서 아브르 알 라흐만이 이쓰는 기병과 투창병 중심의 이슬람 군대에게 대패하고 약탈, 방화, 무참한 살육을 당하게 된다. 카를 마르텔이 이끄는 프랑스군은 무거운 대형도끼를 든 보병과 기타 도끼를 든 보병으로 푸아티에와 투르의 중간 지점에 매복하였다. 프랑크-게르만 족의 무거운 도끼에 갑옷, 방패가 가벼운 경기병대는 무참하게 당하고, 약탈한 보물마저 놔두고 도망치기에 바빴다. 이로써 이슬람의 서유럽 확장은 끝이 났다.
8. 구정 대공세(Tet Offensive (1968)) : 베트남 전쟁의 대반격
- 배경 티비 시리즈 : Vietnam (2011)
베트남 전쟁에서 전체 전쟁의 결과를 결정했던 중요한 전투였다. 베트남 인민군과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 1968년 1월 30일 대공세를 펼쳐서 미군과 남베트남 국군을 공격하였다. 초반 미군 주요 군시설도 점령당하였지만, 다시 미국과 남베트남 국군이 정비하고 반격에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베트남전 승리를 장담했던 미국에서는 반 베트남전 여론이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국제적 여론도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게 되었다. 군사 전문가들은 미국이 전술적으로 승리했지만, 전술적으로 패배한 전투라고 평가한다.
7. 게티즈버그전투(Battle of Gettysburg (1863)) : 남북전쟁 종지부를 끊게 한 그 전투
- 배경 영화 : Gettysburg(1993)
미국 남북전쟁 기간동안 최종 결과를 결정했던 주요 전투 입니다. R. 리 장군이 이끄는 남군과 조지 미드 장군이 이끄는 북군이 게티즈버그 인근에서 3일동안 치열하게 싸우게 된다. 남군은 3일동안 치열하게 북군을 공격하였지만, 북군의 수비에 더 이상 공격을 포기하고 4일만에 철수를 하게 됩니다. 결국 승리의 기운을 얻은 북군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게 된것이다.
6. 트라팔가르 해전(Battle of Trafalgar (1805)) : 영국해군의 위력을 전세계에 보여준 그 전투
- 티비 : Heavy Metal(2000 - 2006)
트라팔가르 해전은 1805년년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스페인 연함함대와 영국해군 사이의 치열한 전투다. 결과는 영국 해군의 대승이다. 영국해군 27적이 연합함대 33척을 공격하여 연함함대는 5척은 침몰, 17척은 포획당했고, 영국해군은 1척도 잃지 않고 승리를 하였다. 이로 인해서 영국의 더욱 강력한 해상권을 가지게 되었고, 나폴레옹은 영국 침공을 포기하고 대륙쪽으로 방향을 돌리게 된다.
5. 카하마르카의 전투(Battle of Cajamarca (1532)) : 한명당 476명과 싸운 무서운 전투
- 배경 영화 : The Royal Hunt of the Sun(1969)
현재 페루가 있는 남아메리카 지역에서 1532년 역사상 최고 병력 비율의 전투가 있었다. 바로 168:80,000 의 비율이다. 168명 쪽은 아메리카를 정복하기 위해서 유럽에서 온 무장한 기마대 병력이었고, 80,000명은 이에 대항한 잉카황제 아티우알파의 청동기로 무장한 병력이었다. 전투력에서 비교가 안되는 이 전투는 스페인 병력들의 살아남기 위한 대량학살로 이어졌고 8,000여명의 잉카 인디언들이 죽고 황제 아티우알파까지 잡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4. 워털루 전투(Battle of Waterloo (1815)) :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과 유럽 연합군의 대결
- 배경 티비 시리즈 : Battleground : The art of War(2005-2006)
1815년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과, 영국 & 네덜란드 & 프로이센 연합군이 벨기에 남동부 워털루에서 싸운 전투다. 이 전투의 최후 승자는 연합군이 되었고, 패배한 나폴레옹은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 유배까지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프랑스 군이 프로이센군을 격파하여 16,000여명의 사상자까지 안기게 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 있던 루이 18세의 영국군은 연합군을 이끌고 프랑스 군을 반격하여 프랑스군은 4만영이 목숨을 잃게 되고 결국 크게 패배하게 된다.
3. 가우가멜라전투(Battle of Gaugamela (331 BC)) :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페르시아 정복기
- 배경 영화 : Alexander(2004)
가우가멜라전투는 BC 331년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가 이끄는 페르시아군과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끄는 헬리스 동맹군의 생존을 위한 마지막 전투였다. 처음에는 다리우스 3세가 금은보화, 프레시아 땅의 절반, 왕녀 등을 바치며 항복에 가까운 동명을 요청했지만, 전 페르시아 통치를 꿈꾸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제안을 거절한다. 다리우스 3세의 페르시아 군은 코끼리, 전차, 기병 등을 구성하여 헬라스 동명군에 맞서게 된다. 병력 수적으로는 페르시아군이 앞섰지만, 다리우스 3세를 직접 공략하는 알렉산드로스의 전략이 성공하여 페르시아군은 패배하였다.
2. 스탈린그라드전투(Battle of Stalingrad (1942-43)) : 무적 독일군대의 몰락
- 배경 영화 : Enemy at the Gates(2001)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러시아연방 스탈린그라드(지금의 볼고그라드)에서 독일 연합군과 소련군 사이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로, 기존까지 승승장구하던 독일 연합군에 큰 타격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원래 스탈린그라드는 소련의 주요 국경지역일 뿐만 아니라 석유공급지로 전략적 요충지였다. 독일의 강력한 기갑부대는 소련군을 수차례 공격했으나 완강한 저항에 쉽게 승리를 잡지 못하였다. 장기전이 될 수록 추위와 보급품 부족으로 독일군은 힘든 전투를 하게 된다. 결국 더욱 강력해진 소련군의 공격에 독일군 9만 1000여명은 항복하게 된다. 이 전투에서 22만여명의 전사자가 발생하였다.
1. 노르망디 상륙 작전(( Invasion of Normandy (1944)) : 무모했지만 가장 성공적이었던 전투
- 배경 영화 : Band of Brothers(2001)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상륙작전으로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전환점을 가져온 전투다. 1년 전부터 연합군은 상륙작전을 준비하면서 잘못된 상륙 시기와 상륙 지점을 독일군에 흘리면서 계속적인 혼선을 주었다. 독일군도 상륙작전에 대비여 히틀러가 직접 대서양 방벽을 따라 요새화하는 것을 지휘하였다. 상륙 당일 자정 직후 미군, 영국군, 캐나다군 공수부대 24,000 여명이 강습투하하였고, 연합군의 보병사단 및 기갑사단은 노르망디 해당에 상륙하게 됩니다. 지뢰, 나무말뚝, 금속 삼각대, 유자철선 등의 장애물롸 빗발치는 총알들을 뚫고 연합군은 요새를 점령하였다. 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은 유럽을 다시 찾는 계기가 되었고, 연합국들에서 병력을 추가로 지원 받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