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예측과전망, 더 월드어헤드 -이코노미스트-

이코노미스트는 매년 11월부터 디지털판을 통해 '더 월드어헤드(The World Ahead)' 시리즈를 공개한다. 미래에 대한 예측과 전망에 관한 글이다. 올해 역시 '더 월드어헤드 2023'을 통해 100꼭지가 넘는 글로벌 테마를 선정해 공개했다. 이 중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톰 스탠디지가 꼽은 '픽(Tom's Top10)'을 중심으로 이코노미스트의 전망을 보자.
- 우크라이나 전쟁의 세 가지 시나리오
이코노미스트는 2023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관한 3가지 시나리오를 제공한다. 먼저 러시아가 승리를 낚아채는 시나리오다. 러시아군은 겨울 동안 전선을 안정시키고 새로운 병력을 꾸릴 수 있다. 유럽의 지원물자가 바닥나고 미국 하원 다수당이 된 공화당은 민주당과 달리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새로운 무기들을 차단할 수 있다.
그렇게 2023년 봄이 됐을 때 새롭게 꾸려진 러시아 부대는 공격을 개시하고 수개월간의 공세에 지친 우크라이나 군을 뒤로 후퇴시킨다. 우크라이나의 에너지와 수자원 인프라도 계속 파괴한다. 헤르손 북쪽의 산업도시인 크리비리크와 도네츠크의 슬로비얀스크와 크라마토르스크도 점령한다.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러시아의 휴전 제안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고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게 첫 번째 시나리오다.

이코노미스트가 제시하는 두 번째 시나리오는 교착상태다. 러시아는 지난 11월 헤르손에서 철수를 선언한 뒤 드니프로강 서안에 있던 3만여명의 병력을 안전하게 철수시켰다. 이코노미스트는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승리지만 궁극적으로는 러시아가 더 강력한 군사적 위치에 있게 됐다. 강은 러시아의 왼쪽 측면을 보호하기 때문이다"라고 본다.
푸틴은 시간 끌기에 나선다. 우크라이나 경제를 어렵게 만들고 민간 기반시설을 공격해 사기를 떨어뜨리며 우크라이나를 돕는 서방의 파트너들이 지칠 정도로 전쟁 연장을 꾀한다. 그동안 유럽은 가스 저장소를 채우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고 겨울에 정전이 발생할 수도 있다. 푸틴은 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을 탈환하고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하기를 기대하며 2024년 말까지 버티기를 목표로 할 수 있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고무적이지만 위험한 시나리오일 수 있다. 우크라이나가 장거리 HIMAR 로켓을 크름반도 사정권 안에 들여놓을 경우다. 우크라이나가 세베로도네츠크를 탈환한 뒤 빠르게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루한스크의 러시아군 방어선이 붕괴된다. 이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자포리자에 새로운 전선을 만들라고 명령하면서 5개 여단이 러시아군의 전선을 뚫은 뒤 크름반도로 가는 육교를 끊고 여름까지 마리우폴을 포위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점령한 크름반도의 항구와 기지 등을 겨냥해 HIMAR 로켓포를 남쪽으로 이동시키며 크름반도에 진입하겠다고 위협한다. 이러면 푸틴도 최후통첩을 한다. 핵무기 사용을 포기하거나 실행할 수도 있다"고 내다본다.
- 재출마를 원하는 바이든과 트럼프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는 다시 대선에 출마할 수밖에 없다고 느끼고 있다"고 본다. 출마하지 않을 경우 트럼프는 자신에게 불리하게 전개되는 형사·민사 소송에 불리해지고 열렬한 지지자들이 떠나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중간선거에서 트럼프의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간선거 결과는 다시 한번 트럼프가 패배자라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앞으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일단 (공화당 내) 트럼프의 잠재적 경선 상대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일부는 보다 온화한 글렌 영킨 버지니아 주지사에게 기대를 걸 수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은 트럼프 정부 부통령을 지낸 마이크 펜스에게 의지하게 된다.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를 제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경선 과정에서 반(反)트럼프 진영이 많을수록 좋다. 그들의 표가 흩어지기 때문이다.
민주당 쪽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나이, 낮은 지지율 때문에 불출마 압박을 받을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그레첸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 재러드 폴리스 콜로라도 주지사가 출마 선언을 하면 다른 민주당원들이 대거 여기에 합류할 것"이라고 봤다. 물론 바이든도 트럼프처럼 계속 경쟁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지난 미 대선처럼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두 고령의 후보들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일이 또 생길지 모른다.

- 인구 정체로 고통받는 중국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인구에 주목했다. 유엔은 2023년 4월 14일 인도의 인구가 중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어서다. 이날 인도의 인구는 14억2577만5850명이 될 것이라고 유엔은 본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경제는 인도보다 6배 정도 크지만 인도의 증가하는 인구는 중국 따라잡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인도는 지금부터 2050년까지 전 세계 노동인구(15~64세)의 6분의1 이상을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중국의 인구는 급격히 감소할 수 있다. 중국과 인도, 두 나라는 20세기에 인구 증가를 억제하려고 했는데 중국은 '더 나중에, 더 오래, 더 적게' 캠페인을 벌였다. 나중에 결혼하고, 자녀들 사이의 격차가 길어지고, 그 숫자도 적다. 영국의 인구학자 팀 다이슨은 "1980년에 도입된 '한 자녀 정책'보다 더 큰 효과를 가져왔다"고 정책을 평가한다.
반면 인도의 출산율 감소 시도는 중국보다 덜 성공적이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인도 인구의 중간연령은 28세다. 노동인구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인도는 이제 배당을 받을 기회가 왔다. 다만 인도의 번영은 젊은이들의 생산성에 달려 있는데 이건 중국만큼 높지 않다. 25세 이상의 중국인들은 같은 연령의 인도인들보다 평균적으로 1.5년 더 길게 교육을 받는다"고 지적한다.
- 유럽과 아시아의 부상? 동맹의 변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동맹과 파트너십 네트워크는 미국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다. 대부분의 동맹국을 무임승차자로 여겼던 트럼프 때와는 달라진 점이다." 이코노미스트는 2023년 미국이 동서 동맹국들 사이의 연결이 강해지길 원한다고 본다. 바이든 대통령은 현 상황을 민주주의와 독재 정권 사이에 벌어지는 경쟁의 일부로 보고 있어서다.
하지만 이런 조각들을 연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나토는 상호 방어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시아와 미국의 동맹은 공동의 계획과 훈련이 거의 없는 양자 방위 조약이다. 미국은 일본·한국과 3자 미사일 방어 훈련을, 일본·호주와의 해상 훈련을, 일본·호주·인도와는 다각적인 쿼드협력 등을 꾀한다.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국들을 서로 연결하는 몇 가지 줄기도 있다. 오커스(AUKUS)협정에 따라 미국과 영국은 호주에 핵잠수함을 지원하기로 했고, 인도·태평양 동맹국들은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에 동참했으며, 유럽 국가들은 태평양에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군함을 보냈다. 이스라엘, 인도, 아랍에미리트는 'I2U2'로 묶이고 이란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스라엘과 몇몇 아랍 국가들이 아브라함협정의 산물로 그룹을 이루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동맹에서 '대만'과 '인도'를 약점이라고 본다. 대만은 "침략의 위험이 가장 높지만 미국의 공식 동맹 네트워크에 잘 통합되지 않아서", 인도는 "러시아와 군사적 유대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하는 가장 큰 약점은 "미국의 우방국들이 더욱 긴밀하게 결속할 수 있는 무역 전략이 없다. 트럼프 때나 바이든 때나 보호무역주의는 여전히 강력하다"는 지점이다.
- 2023년 어디에서 분쟁이 생길까
이코노미스트가 전망하는 유력한 분쟁지역은 아시아에 몰려 있다. 일단 대만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대만 탈환은 중국 공산당의 신성한 목표다. 대만은 중국이 동아시아 전역과 서태평양에 전력을 투입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다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푸틴과 달리 무모하지 않다. 경제 제재를 중국이 견딜 수 있는지 입증할 시간도 필요하다. 이코미스트는 "2023년 중국은 대만 대신 분쟁 중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주변에서 위기를 유발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전망한다.
북한도 이코노미스트가 선택한 분쟁 지역 중 하나다. 2023년이 끝나기 전에 핵실험을 실행할 것이라고 본다. 이코노미스트는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중국과 러시아를 등에 업은 채 독재자 앞에서 세계의 선택지가 얼마나 적은지 알리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중국과 인도 사이에 벌어지는 히말라야의 국경 분쟁은 2023년 아시아의 잠재적 발화점이 될 수도 있다. 이미 2020년 양측에서 24명의 군인들이 죽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시진핑 주석은 대만에 집중하기를 원하지만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인도가 산에서 우세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양측이 국경에 지은 새로운 전략 군사 도로는 둘 사이 완충 지대를 침식할 위험이 있다"고 본다.
- 수소, 이번에는 다르다?
수소 시대가 이번에는 정말 도래할 수 있을까. 이코노미스트는 "수소는 이전에 헛된 기대를 준 적이 있다. 20년 전 유럽과 일본의 자동차 기업들은 연료전지 승용차의 꿈을 좇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낭비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수도 있다.
일단 철강 같은 중공업에서 수소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화석연료를 대체하기 위해서다. 이코노미스트는 "탄소 배출에도 도움을 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격이 급등한 천연가스 의존도를 줄이면서 동시에 에너지 안보를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수소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지는 2023년에 명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통 경기 침체기가 오면 기업들은 지출을 줄이게 되고 투자자들은 위험을 회피하기 마련이다. 신기술에 대한 자금 지원도 줄어든다. 정부도 기후변화에 대처하기보다는 일단 에너지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화석연료 공급을 우선시할 수 있다.
하지만 2023년 수소를 추동하는 가장 큰 힘은 미국의 정부 지원금이다. 실제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그린수소 프로젝트에 대해 1㎏당 3달러의 보조금을 제공한다. 전문가들은 유럽과 달리 미국의 수소 정책은 명확하고 설득력이 있다고 말한다.

- 코로나19에 대한 복수, '보복관광'
'보복관광'은 억눌려 있던 수요가 폭발해서 생긴다. 이코노미스트는 "2022년 60% 증가한 해외 관광객은 2023년 30%가 더 증가해 16억명으로 늘어난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 수치는 2019년의 18억명에는 미치지 못한다. 대신 2023년 예상되는 관광 수입은 2019년 1조4000억달러와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인플레이션이 물가를 올려놨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 중국의 제로코로나 정책 등은 여행업의 회복을 훼방 놓고 있다. 원래 코로나19 유행 전 10명의 관광객 중 1명은 중국인이었다. 이들 중국인 여행객의 숫자는 2023년 5900만명으로 예상되지만 2019년 1억5500만명보다는 훨씬 줄어든 숫자이다.

- '메타버스' 실현가능성의 원년
2023년 빅테크 기업들이 강하게 밀어붙일 분야는 두 가지다. 이코노미스트는 "하나는 가상(VR) 및 증강현실(AR) 헤드셋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메타버스다. 2차원 텍스트와 이미지, 동영상을 기반으로 한 인터넷을 이제는 3차원의 몰입감 있는 게임으로 대체할 수 있는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이들은 본다"고 내다봤다.
시장조사업체인 IDC의 추산에 따르면 2021년 헤드셋은 약 1100만대가 팔렸는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모회사인 메타(Meta)가 전체 매출의 3분의2가량을 차지한다. 메타는 지난 10월 11일 최신 헤드셋인 메타퀘스트 프로를 출시했는데 가격이 1499달러(약 198만원)이다. 다만 2023년에는 이보다 더 저렴한 헤드셋이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메타가 잠식하고 있는 이 시장에 뛰어드는 경쟁자도 많다. 애플이 2023년 첫 AR·VR 헤드셋을 출시할 거라는 예상이 나온다. 소니는 2016년 플레이스테이션 VR 헤드셋을 출시해 이미 500만대 이상을 판매한 적이 있는데 2023년에 업그레이드 모델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메타의 야망은 헤드셋 생산을 넘어 VR 사용자가 거주할 수 있는 가상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2021년 '페이스북'에서 바뀐 '메타'라는 새 이름은 마크 저커버그 CEO가 발표한 메타버스의 아이디어를 반영한 것이다.
이후 270억달러 이상을 이 아이디어에 투자했고 사용자를 위한 가상공간을 만들었다. 하지만 애널리스트들은 메타의 주가가 폭락했기 때문에 이 아이디어에 회의적이다"라고 지적했다.
앞으로 뛰어들 경쟁사들도 비슷한 야망을 갖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엔비디아와 같은 빅테크 기업들부터 광고에서 은행까지 기존 산업들도 뛰어들었다. 그러나 가장 앞선 곳은 비디오게임으로 이미 수십 년 동안 가상세계를 판매해 온 경험이 있다.
- 협동도 이뤄진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22년 10월 윈도 운영 체제와 비즈니스에 초점을 맞춘 앱, 엑스박스 게임 콘솔용으로 작성된 게임 등을 메타의 가상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실리콘밸리의 대기업들은 대부분 이미 상호 운용 가능한 기술 표준을 준수하도록 하는 메타버스 표준 포럼(MSF)에 가입했고 한 곳에서 만든 아바타가 다른 기업의 가상세계에서도 문제없이 작동하도록 했다. .
이코노미스트는 "VR·AR 또는 메타버스가 정말 컴퓨팅의 미래인지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한다. 회의론자들은 이런 생각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반면 애플이 뜬금없이 스마트폰을 발명한 게 아니다. 블랙베리 폰 등 경쟁사들이 수년간 연구해온 공식을 완벽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 경제 불황이 온다
중앙은행의 역할을 이야기할 때 등장하는 게 '펀치볼'이다. 파티가 무르익을 때 와인에 과일을 넣은 '펀치'를 담아놓은 용기를 뜻하는데 보통 중앙은행의 역할은 이것을 치워버리는 것이라고 비유한다. 인플레이션 이전까지 중앙은행은 펀치볼을 치워버릴 기회가 없었다.
이코노미스트는 "2021년 시작된 인플레이션은 중앙은행들이 빛을 발할 순간을 주었다. 2023년 대부분의 국가들에 심각한 고통이 있겠지만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다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식량과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2022년에 고통이 커졌다는 건 문제다. 이미 여러 국가들은 수십 년 동안 보지 못한 수준으로 물가가 상승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전염병 지원 정책과 느슨한 통화정책 등이 소비자 지출의 급증을 부채질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지출에다가 공급망 문제까지 겹쳤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석유·가스·곡물 가격이 오르자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인플레이션이 생기면서 중앙은행들은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얼마나 강하게 제동을 걸어야 할지에 대해 치열하게 논쟁을 벌였다.
비둘기파와 매파로 갈리기 마련인데 비둘기파는 인플레이션의 많은 부분이 공급 문제와 관련 있기 때문에 가벼운 통제를 조언했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소비자들이 소비를 열망하는 한 경제의 한 부분에서 가격 압력을 완화하면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쏟아내고 이 때문에 다른 부분의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2022년 초까지 후자의 견해가 중앙은행을 견인했다. 2021년 물가가 자연스레 진정되기를 기다려온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결국 2022년 3월 0.25%포인트, 5월 0.5%포인트, 6월과 9월, 10월, 11월에는 무려 0.75%포인트씩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특히 8월이 되자 파월은 금리 인상이 인플레이션을 낮출 것이라고 말했지만 "약간의 고통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중앙은행들도 여기에 동의했다. 이사벨 슈나벨 유럽중앙은행(ECB) 이사는 "40년 만에 처음으로 중앙은행들이 물가 안정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단호한지를 입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미 연준은 2023년 실업률이 상승할 거라고 예측했고 영란은행은 영국의 GDP(국내총생산)가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코노미스트는 "세계은행은 지난 반세기 동안 2022년과 같은 성장 제한 정책을 이행한 적이 없었다. 예외는 1982년인데 당시 전 세계 정책입안자들은 10년 동안 지속된 인플레이션 문제를 끝내기로 결정했다. 결국 그들은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세계적인 불황을 초래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고난의 시간이었지만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은 승리로 간주한다"고 지적한다.
- 아시아 주택시장의 불안정
이코노미스트의 '더 월드어헤드 2023'에서 한국이 등장하는 건 아시아의 주택시장 불안을 설명할 때다. 최근 아시아 주요국 도시들의 집값은 급등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중앙은행들의 자료를 빌려 "한국과 대만의 수도에서 평균 집값은 현재 국내 소득의 19배와 16배에 달한다"고 지적한다. 미국과 영국에서 가장 비싼 곳인 산호세와 그레이터런던의 수치는 12.6배와 8배다. 서구보다 더 높은 셈이다.
게다가 주택담보대출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계부채 역시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GDP 대비 홍콩 94%, 대만 97%, 한국 105%의 부채 수준은 미국 77%, 영국 85%를 능가한다.
이코노미스트는 동아시아의 주택 붐이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고 본다. 이 지역 중앙은행들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빠른 인상에 발맞추기 위해 금리를 인상했다. 그러자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한국의 9월 가계대출 평균 신규 금리는 5.2%로 전년 동기 3.2%보다 상승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일부 국가들은 재정적 위협에 대한 방어선 중 하나를 잃고 있다. 한국과 대만은 반도체, 전자제품, 공산품 수출로 경상수지 흑자를 자랑해왔다. 그러나 수입 에너지 가격의 급등은 그런 흑자를 없앴다. 경제학자들은 적자는 국가가 국제 자본의 흐름에 더 의존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한다.
이런 흐름이 불안정한 이유는 공황의 순간에 자본이 이탈할 경우 자산 가격을 폭락시킬 수 있어서다. 1997~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은 비정상적으로 큰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다만 이코노미스트는 "현재의 불균형은 비교적 완만하다"고 본다.
그러나 일본의 사례를 매체는 지적하고 있다. 자산 가격 하락이 성장의 노선을 벗어나게 하는, 걱정스러운 사례이기 때문이다. 1989~1990년 일본의 주식과 부동산 가격은 폭락하기 시작했고 수십 년간의 호황이 끝났다. 1980년대 후반 대출 호황기에 담보로 삼았던 토지와 건물의 가치 하락은 소비자와 기업의 긴축 사이클을 불러왔고 이 때문에 경제 성장은 거의 멈췄다.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의 이웃 국가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는 유사성을 우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