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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

nyd만물유심조 2022. 10. 9. 15:55


1983년, 전두환 대통령은 공식 수행원 22명, 비공식 수행원 등과 함께 미얀마, 인도, 스리랑카, 괌 등 4개국과 호주, 뉴질랜드 등 2개국에서 진행되는 17박 18일 일정의 공식 해외 순방길에 나섰다. 당시 미얀마는 순방 이틀 째인 10월 9일의 공식 일정으로, 오전 10시 30분에 미얀마의 독립 영웅 아웅 산 장군의 묘소를 참배하는 것이었다.

10월9일 서석준 부총리를 비롯한 수행 공무원들과 경호원들은 행사 준비 및 예행 연습을 하고 있었고 같은 시각인 오전 10시경 숙소에서 전두환은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출발했다. 예행연습을 마치고 대통령을 맞이할 채비를 마친 서석준 부총리를 비롯한 수행원들은 오전 10시 26분경 대통령 측근으로부터 "차량 정체로 인해 대통령이 약 30여 분뒤에 지연도착"한다는 연락을 받고 한번 더 애국가의 예행 연습을 한다.

원래 일정에 따르면 10월 9일 오전 10시 15분에 미얀마 외무장관이 전두환 대통령 숙소인 영빈관에 도착해서 대통령을 잠시 접견한 후 10시 20분에 묘소로 함께 출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영빈관으로 향하던 외무장관의 승용차가 운행 도중에 길바닥에서 고장났다.

문제는 당시 미얀마는 대한민국의 1960년대 수준의 교통 인프라를 가진 나라여서 길바닥에 지나가는 택시가 드물었다는 것이다. 운전기사는 주변을 사방팔방 뛰어다녀 간신히 대체차량으로 택시 1대를 끌고 와 다시 출발하게 되었다. 이 때가 이미 도착 예정 시각이었던 10시 15분이고 당연히 지각은 불가피했다.

같은 시각 10시 15분, 영빈관에 있던 전두환은 도착해 있을 외무장관과 함께 차량을 타고 묘소로 출발하려 1층 로비에 내려갔으나 외무장관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 국빈인 국가 원수가 로비에서 외무장관을 기다리는 격이 되어서는 모양새가 이상할 것도 같고 또 그럴 경우 외무장관이 더 미안해할 것 같아 대통령은 그냥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올라와서 "이왕 기다리는 김에 영빈관의 영접 요원들에게 격려라도 하자"며 영접 요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4분 뒤인 10시 19분에 미얀마 외무장관이 도착하였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은 격려 인사를 중간에 멈추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다며 격려인사를 끝까지 했고 미얀마 외무장관과 함께 묘소로 출발한 시각은 예정 시각보다 4분 늦은 10시 24분이었다. 오전 일정이 대한민국 수행원들끼리 진행하는 묘소 참배다 보니 스케줄이 조금 늦어도 외교적 결례가 될 일은 아닌지라 굳이 서두르지 않은 것이었는데 이 스케줄 지연이 전두환을 살린 것이다.

그런데 미리 대기해 있던 폭탄 테러 용의자 중 1명인 북한 신기철은 전두환이 오전 10시 30분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첩보를 통해 파악한 상태였고 예행연습중에 나온 음악을 듣고 전두환이 도착했다고 오인하여 오전 10시 28분에 미리 설치해 두었던 폭탄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이 때 사실은 당시 이계철 미얀마 주재 한국 대사가 입장했는데 공교롭게도 이계철 대사 역시 대머리인 탓에 신기철은 이계철 대사를 전두환으로 착각했으며 이 폭발로 예행 연습중이던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 장관을 포함하여 17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이기백 합동참모의장을 비롯한 수십명이 부상을 당하고 만다.
그러니까 미도착한 사람을 제외하면 15명 중에서 가장 구석에 있던 2명만 살아남고 모조리 다 죽었다.

위 주장과는 달리 약간 상황이 달랐다는 주장도 있는데 통상적으로 대통령 비서실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한다. 그런데 그 날은 참배할 묘지의 행사장이 좁다는 이유로 장세동 경호실장의 요청에 의해 함병춘 비서실장이 먼저 현장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함병춘 실장도 대머리였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이계철 미얀마 대사 또는 함병춘 실장을 전두환으로 잘못 봤든지 아니면 관례처럼 비서실장이 도착하니 전두환도 당연히 도착했다고 생각되어 폭탄테러를 감행했다고 한다.( <대통령 비서실장론> 함성득, 151쪽), 이계철 대사와 함병춘 실장 둘 다 순직했다.

어찌 됐건 아웅산 묘소의 나팔수들은 전두환의 도착이 지연되자 행사 진행 전 시범 삼아 연주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아웅산 묘소 참배 현장을 직접 볼 수 없었던 북한 공작원들은 애초에 폭탄의 폭파 시점을 전두환의 묘소 참배를 알리는 진혼 나팔 소리에 맞추기로 했기 때문에 결국 진혼곡 연주가 나오자마자 곧바로 테러를 진행한 것이다.

전두환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을 서둘렀고 미얀마는 미얀마의 국민 영웅 아웅산의 묘소에 테러가 발생한 것을 듣고 분노하여 테러가 발생한 즉시 테러를 일으킨 북한과 국교를 단절함과 동시에 국가승인도 취소하였으며 전 세계 60여개국도 북한과의 외교를 단절 혹은 축소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 사망자 명단
대한민국(17명): 서석준(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이범석(외무부장관), 김동휘(상공부장관), 서상철(동력자원부장관), 함병춘(대통령비서실장), 이계철(주 미얀마 특명전권대사), 김재익(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하동선(해외협력위원회 기획단장), 이기욱(재무부차관), 강인희(농림수산부차관), 김용한(과학기술처차관), 심상우(국회의원, 민주정의당 총재 비서실장), 민병석(대통령 주치의), 이재관(대통령비서실 공보비서관), 이중현(동아일보 사진기자), 정태진, 한경희(대통령경호실 경호관)

미얀마(7명): 4명(+3명, 테러리스트 검거작전 중 순직자)

북한(1명): 공작원은 총 3명이었는데 신기철 상위는 체포과정에서 사살되었고 2명은 체포되었다. 자국 국가원수 및 우방국 국가원수에 대한 암살을 시도할 경우 사형에 처해지는 미얀마의 형법에 의거해 김진수 소좌는 1984년 사형이 집행되었고 강민철 상위는 수사에 협조한 점을 참작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5년간 미얀마 인세인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2008년 5월 18일에 중증 간질환으로 옥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