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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하얼빈의거(이토 히로부미 사살) 107주년과 3인의 조력자

nyd만물유심조 2016. 10. 26. 18:00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07주년 기념식이 10월26일 서울 중구 소월로 안중근의사기념관, 경기도 부천시 안중근공원 등에서 열렸다.

 

안 의사의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 '영웅'의 주요 장면 공연으로 시작된 부천시의 행사는 대안학교인 링컨하우스부천스쿨 학생들의 공연, 기념사, 헌시 낭송 순으로 이어졌다.

 

1879년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난 안 의사는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세워 민족계몽운동에 힘쓰다가 일제의강점이 본격화하자 의병운동에 투신했다.

 

1909년 동지들과 함께 손가락을 자르고 일사보국(一死報國)을 맹세한 안 의사는 같은 해 10월 26일 만주 하얼빈(哈爾濱)역에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했다.

 

뤼순 감옥에 투옥돼 일제의 심문과 재판을 받는 중에도 의연한 태도를 굽히지 않던 안 의사는 사형을 선고받고 1910년 3월 26일 순국했다.

 

부천시는 20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哈爾濱)시로부터 안 의사 동상을 기증받아 이 공원을 조성, 매년 안 의사 의거를 기념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우덕순·유동하·조도선은 숨은 영웅…함께 기억해야

 

107년 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할 때 그를 도운 3명의 조력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한국 홍보 전문가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안 의사 의거의 조력자들을 조명하는 카드뉴스를 제작해 SNS에 공개했다.

 

12장의 카드뉴스에는 의거가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우덕순·유동하·조도선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상세히 알려주는 설명을 사진 자료와 함께 담았다.

 

우덕순은 애국계몽 활동을 하다 항일의병전쟁에 참여해 안중근을 만났고, 함께 단지동맹(斷指同盟)을 결성한 인물로 안 의사 의거에 자진해 합류했다.

 

러시아어에 능통했던 유동하는 안중근과 우덕순이 하얼빈에 이를 때까지 통역과 정보 활동, 연락책 역할을 맡았다. 조도선은 하얼빈에서 통역으로 활약했다.

 

일행은 10월 24일 유동하를 하얼빈에 남겨두고 바로 전 역인 차이자거우(蔡家溝)로 떠난다. 철로가 교차해 열차가 정차하는 전략적 요충지였기에 이곳에서 거사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안중근은 다시 하얼빈으로 돌아온다.

 

1차로 우덕순과 조도선이 차이자거우역에서 의거를 결행하고 실패하면 2차로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할 계획이었다.

우덕순과 조도선은 러시아군의 저지로 열차에 접근하지 못해 실패한다. 10월 26일 9시경 기차는 하얼빈역으로 들어오고, 그곳에 있던 안중근이 거사에 성공한다.

우덕순·유동하·조도선의 조력이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