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대한제국의 선포

nyd만물유심조 2021. 10. 10. 19:39


대한제국(大韓帝國, Korean Empire)은 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존재했던 제국으로 조선을 계승한 국가이자 한반도의 마지막 군주국이다. 1897년 고종황제가 대한제국 수립 선포 이후 대한제국 정부는 여러 개혁을 시도했고, 자주적 국가가 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일본 제국에게 외교권이 박탈되었고, 이후 일본과 체결한 여러 조약으로 사실상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하였다. 1910년 8월 29일 한일 병합 조약으로, 대한제국은 일본 제국에 병합되었다. 이 이름에 사용된 대한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거쳐, 오늘날의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 국호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 대한제국(大韓帝國)의 대한은 삼한을 일컫는 다른 말로써 한반도 전역을 이르는 말이다. 현대인들은 삼한이 한반도 중남부의 마한, 진한, 변한이란 걸 알고 있지만 이 마진변한이 사라진 지는 이미 수백년이 지난 삼국시대 후반부 당시에는 의미가 변형되어 고구려, 백제, 신라 셋을 삼한이라고 불렀고 이것을 통일신라와 고려가 통일할 때 스스로 삼한일통이라 했기 때문에 '한'은 한민족의 영역 전체를 의미하는 별칭으로도 쓰이고 있었다. 아무튼 고종은 이 한을 정식 국호로 정한 것이다.
약칭으로는 '대한'과 '한국'이 사용되었는데, 현대의 대한민국과 약칭이 같다. 나라이름은 '대한'이고, '제국'과 '민국'은 각각 황제국과 공화국이라는 정체를 나타내는 말이기 때문이다. 조선과 정체가 달라졌을 뿐 국호는 같은 이름을 쓰기 때문에 구분을 위해서 대한제국을 구한(舊韓) 구 한국(舊韓國)이라 하기도 하며, 흔히 쓰이는 구한말(舊韓末)이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되었다. 반대로 대한제국을 기준으로 보아 대한민국을 신한국(新韓國)이라 하기도 했다.

대한제국은 자주적 근대화를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던 나라다. 1899년 이미 서울에 전차가 달리고 있었다. 당시 일본 도쿄에는 전차가 없었다. 1902년에야 일본에 전차가 생겼다. 1900년대 초 러일전쟁을 위해 서울에 온 일본군이 서울 시내를 달리는 전차를 보고 신기해하는 자료 사진까지 있다. 고종 황제는 차관 도입을 추진하고,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자력으로 근대국가의 모습을 갖추고 국제사회로 진출하고자 했던 인물이다. 광산 개발과 철도 부설, 지폐 발행을 위한 중앙은행 설립, 전기와 전신 사업 등에도 엄청 애를 썼다.
당시 고종을 직접 인터뷰했던 선교사들이 남긴 글에는 ‘고종 황제는 나라에서 지식이 가장 높은 인물이다. 신하들이 잘 모르는 게 있으면 군주를 찾아가 물어볼 정도였다. 고종 황제는 그 자리에서 즉답을 하거나 무슨 책을 찾아보라고 일러주었다’고 돼 있다. 

우리가 알던 고종과 다르다. 흔히 대한제국과 고종 황제는 그저 ‘무기력한 나라, 무능한 군주’로만 알고 있으나 그건 철저히 일제 식민사학의 관점이다. 우리도 모르게 거기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일본이 한일합방을 통해 옛 대한제국의 영역에 성립된 식민지를 '조선'이라 칭한 것은 대한제국의 존재를 지워버리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대한제국은 근대화를 자력으로 이미 진행 중이었는데 일제는 식민통치의 합리화를 위해 그걸 부인해야 했다. 조선이 괜찮은 나라였다면 식민지배가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망국책임론’이란 프레임을 씌웠다.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고종 정부의 무능함, 둘째는 유교 사상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는 것이다. 구시대 사상인 유교에 의해 다스려지는 나라는 야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주장을 씌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