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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의 후궁은 175명이었다
nyd만물유심조
2021. 2. 17. 19:13
이를 전수조사한 결과 27명의 조선 국왕은 평균 6.4명의 후궁을 맞이했다.
가장 많이 둔 왕은 태종으로 19명을 두었고 그 뒤를 이어 광해군 14명, 성종 13명, 고종 12명, 연산군과 중종은 각각 11명의 후궁을 두었다.
반면 현종, 경종, 순종은 1명도 두지 않았는데, 모두 병약한 체질이라고 알려져 있다. 순조(1명), 단종·헌종(2명), 인종·효종(3명), 인조·영조·정조(4명)도 평균보다 적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조선 초기엔 7.5명, 중기엔 6.8명, 후기엔 3.5명으로 갈수록 후궁의 수가 감소했다.
후궁은 정식 절차를 통해 들어온 '간택 후궁'과 궁녀나 외부인(기생, 여종 등)이 승은(국왕과 동침)을 입고 후궁이 된 '비간택 후궁'으로 나뉜다. 간택 후궁은 왕비나 세자빈을 뽑을 때처럼 선발기구를 설치하고 금혼령을 내려서 정식으로 선발했다. 그래서 당대 유력 가문에서 나오는 경우도 많았다. 세종 때 후궁으로 선발된 명의궁주 최씨는 조부가 개국공신과 원종공신이고, 부친은 판돈령부사까지 올라 청백리로 꼽힌 고위 인사였다. 성종의 후궁 숙의남시는 유명한 재상 남지의 증손녀였다. 한편 조선 초기 국왕들은 왕권 확립을 위해 명망가와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었고, 후궁 제도를 이용했다.
후궁은 어떤 대우를 받았을까? 간택후궁은 정1품(빈)에서 종2품(숙의)까지, 비간택후궁은 정1품(빈)에서 종4품(숙원)까지 봉작(封爵)될 수 있었다. 이들은 왕자녀를 출산하면 궁궐 바깥의 ‘제택(第宅·살림집)’과 200결 이상의 전지(田地) 등을 받았다. 공신이나 정승급 대우다. 이 외에 정5품 상궁부터 정9품 주변궁까지의 궁녀가 있다. 이들은 후궁 후보자였고, 모두 일정한 월급을 받았다.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는 최말단 궁녀에서 시작해 정1품까지 오른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