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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7일, 수에즈 운하가 완공된(1869년) 날.

nyd만물유심조 2020. 11. 17. 10:39

수에즈 운하는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운하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의 경계인 이집트의 시나이반도 서쪽에 건설되었다.
이집트왕조ㆍ프랑스정부 합작으로 1859년 역사적인 운하공사가 시작되어 10년간의 난공사 끝에 1869년 11월17일 수에즈(홍해)~포터 사이드(지중해)간 총길이 158Km의 운하가 개통되었다. 최초 운하 폭은 18m, 깊이는 수 m에 불과했다. 당시 이집트 인구 400만 중 연간 75만 명이 운하공사에 동원되어 전 국민의 1/5에 가까운 인력이 이 공사판에 투입된 셈이다.
운하 완공 후 단계적인 확장 및 준설공사가 계속되어 현재 운하의 중간 지점인 이스마알리아 부근에는 제2수에즈까지 생겨 선박통항시간이 대폭 줄었다. 2015년 추가적인 보강공사가 끝나 운하 폭은 300m 이상이 넘는다. 미해군 항공모함도 거뜬히 통과 가능하다.

-운하 건설의 역사.
최초로 운하를 건설하려 했던 시도는 이집트 파라오 왕조 제 12왕조의 세누스레트 3세(BC 19세기경)가 착공한 공사로 추정되며,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지중해와 홍해를 직접 연결하기 어려워 나일강의 지류와 대염호수(Great Bitter Lakes)를 통한 홍해와의 연결을 시도하였으나 완전한 연결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도 제 18왕조의 하셉수트 여왕(BC 15세기), 람세스 2세(BC 13세기) 시대에도 운하를 건설하려 했던 흔적과 기록이 남아있다.
헤로도토스의 저서 [역사]에 따르면 이집트 제26왕조의 네카우 2세(BC 8세기) 시절 나일강과 홍해를 연결하는 공사를 다시 시도하여 완공을 목전에 두었으나 이집트를 침공하는 적들에게 유리하게 사용될 것을 우려해 개통을 포기했으며, 이후 이집트를 정복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 시대에 이르러 완공하여 본격적으로 운용하였다고 한다. 이후 BC 2세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프톨레마이오스 2세가 대대적으로 정비하여 1000여년간 이집트와 아랍 지역을 잇는 중요한 교통로로 활용되다가 8세기 아바스조 칼리프 알 만수르가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운하를 폐쇄하면서 고대 운하의 명맥은 끊어져 버렸다. 
16세기 대항해시대에 이르러서는 베네치아의 상인들이 포르투갈, 에스파냐의 해운 무역에 대항하기 위하여, 17~18세기에는 프랑스가 영국, 네덜란드의 아시아 무역에 대항하기 위해 각각 수에즈에 운하를 건설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으나 토목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실현되지는 못했다. 오늘날의 운하는 19세기 오스만령 이집트의 대 총독인 메흐메트 알리 파샤가 프랑스와 손을 잡고 수에즈에 운하를 만드는 사업을 진행하였고, 개통 후 ‘만국 수에즈 해양운하회사’의 이름으로 99년간의 소유권을 가졌다가 이후 이집트로 권리를 이양하는 형태로 합의한 후 1869년 11월 17일 공사를 완료하여 성대한 개통식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