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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유래, 차례지내기, 제사주재자, 무연고 묘 처리, 근하신년 일본잔재

nyd만물유심조 2020. 1. 26. 20:13

 

 

 

 

☆ 설의 유래

설날은 한해가 시작되는 첫날 음력 1월1일이다. 설이라는 말은 '사린다', 사간다에서 온 말로 조심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또 섧다는 말로 슬프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설이란 그저 기쁜 날이라기 보다 한 해가 시작된다는 뜻에서 모든 일에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딛는 매우 뜻 깊은 명절로 여겨왔다. 그래서 설날을 신일(삼가는 날)이라고 해서 이날에는 바깥에 나가는 것을 삼가고 집안에서 지내면서 일년동안 아무 탈 없이 지낼 수 있게 해주기를 신에게 빌어왔다. 

 

☆설날아침 해야할 일.

영조대 영남 남인을 대표하는 권상일(權相一, 1679~1759)은 '청대일기(淸臺日記)’에 “정성이 있으면 (제사를 받을) 귀신이 있고, 정성이 없으면 (제사를 받을) 귀신이 없다.”라는 주자(朱子)의 말을 인용, 설날 아침에 제사를 지내면 세배 다니느라 세주(歲酒)를 마셔서 마음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정월 초하루 제사[正朝祭祀]인 경우에는 섣달 그믐에 지내고, 설날에는 아침 일찍 떡과 탕을 마련하여 차례를 지내는 것이 온당하다고 썼다.

 

과거 10~20년 전만해도 시골에서는 설날 아침엔 일찍 일어나서 새해 새 옷인 "설빔"을 입고 돌아가신 조상들에게 절을 드리는 "차례"를 지냈다. 그런다음 나이가 많은 어른들에게 부터 새해 인사인 "세배"를 한다. 세배를 할 때에는 서로의 행복을 빌고 축복해 주는 "덕담"을 주고 받는다. 이렇듯 새해 첫날인 설날은 하루 종일 복을 빌고 좋은 말을 많이 하며 동네 어른들에게 세배하고 음식과 다과와 술을 먹었다.

 

☆조상 제사와 제사주재자.

2005년 민법 개정으로 호주제가 폐지되고 호주승계제도 폐지되었다. 

다만 "분묘에 속한 1정보 이내의 금양임야와 600평 이내의 묘토인 농지, 족보와 제구의 소유권은 제사를 주재하는 자가 이를 승계한다"는 규정만 남아있다(민법 제1008조의3).

금양임야란 선조의 문묘를 수호하기 위해 벌목을 금지하고 나무를 기른 임야를 의미하고, 묘토인 농지는 분묘관리와 제사 비용을 충당하는데 그 수익을 사용하는 농지를 의미한다.

대법원은 "유체·유골은 민법상의 제사용 재산인 분묘와 함께 제사 주재자인 장남에게 승계돼야 한다"며 “적자 여부와는 상관없이 장남이기 때문에 제사주재자가 된다”고 판시했다. 

 

☆무연고묘 이장.

무연분묘를 이장하려면 장사법에서 정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장사법 제27조 제1항에 따르면 토지 소유자는 지방자치단체장 허가를 받아 자기 승낙 없이 설치된 묘지를 옮길 수 있다.

분묘를 옮기려면 분묘를 설치한 사람 또는 분묘에 묻힌 망자의 연고자를 찾아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적어도 3개월 동안 연고자를 찾는다는 내용의 표지목과 현수막을 설치해놓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연고자나 관리자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공고 절차로 넘겨진다. 즉,

장사법 시행규칙 제14조 제1항에 따르면 최소 3개월 동안 중앙일간신문을 1곳을 포함해 일간신문 2곳에 연고자를 찾는다는 내용의 공고를 올려야 한다. 공고는 해당 지자체 홈페이지에 낼 수도 있다. 단, 공고는 2회 이상 내야 하며 둘째 공고는 첫째 공고로부터 40일 이후에 내야 한다.

공고 후에도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분묘를 옮길 수 있다. 분묘에 묻힌 유해는 화장 후 10년 간 봉안됐다가 시설에 뿌려지거나 자연장된다.

 

☆근하신년에 대하여..

"근하신년"은 일본말에서 들여다 쓴 말이다. 물론 "근하"와 "신년" 이라는 말은 조선왕조 때도 쓰던 말이지만 4자로 된 "근하신년"의 뜻으로는 쓰지 않았다. 성종실록 11년(1480) 7월 28일자 기록에 보면, "상사(上使)가 명일이 주상의 탄신(誕辰)이라는 것을 듣고, 두목을 시켜 와서 금대구환(金帶句環) 등의 물건을 올리며 말하기를, '삼가 성수절(聖壽節)을 축하합니다. (上使聞明日乃上誕辰, 令頭目來進金帶句環等物曰: "謹賀聖壽節" )란 구절이 있는데 쉽게 풀자면 "중국사신이 임금의 생신을 삼가 축하한다"는 뜻으로 "근하"라는 낱말을 예전부터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 근하신년이란 말을 쓰게 된 것은 주로 "연하장(年賀狀)"에서 비롯된 것이니 그 역사는 그리 깊지 않다. 일본 위키사전을 보면 명치시기인 1871년 우편제도 성립 때부터 연하장이 생겨났고 국민들이 연말이 되면 연하장을 보내는 습관으로 정착된 것은 그로부터 16년 뒤인 1887년 무렵부터다라고 돼있다.

아직도 일본인만큼 많은 연하장을 주고받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우스개 소리로 "11월만 되면 방문을 걸어 닫고 연하장을 쓰냐?"고 묻는다고 하는데 일본 사회에서 필수 항목이 "연하장 교류"다. 주변의 일본인들 말로는 적으면 몇 십장서부터 많게는 수백 장씩 연하장을 쓴다고 한다. 그것도 손수 사인을 해서 보내는 정성이 필수다. 오죽하면 인구 1억 2천명에 연하장을 10억장씩 찍어낼까 싶다. 요즘은 조금 줄었다고 한다.

이렇게 일본인들이 연하장을 보내다 보니 거기에 적어야하는 문구가 필요하게 된 것이고 "근하신년"은 바로 거기서 나온 말이다.

 

우리나라가 쓴 기록으로는 일제강점기 동아일보 1925년 10월 7일자에 "謹賀新年 準備에 奔忙한 京城郵便局"이란 제목으로 '근하신년'이 쓰이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비참한 식민지시기에 조선에서 무슨 신나는 일이 있다고 "새해 연하장"을 돌렸을까 싶다. 우편국이 분망(奔忙)할 정도로 연하장이 쏟아져 들어 왔다면 그건 일본 앞잡이들이거나 조선 체류 중인 일본인들의 연하장이었을 것이다. 

이렇듯 소위 많이 배운 기자나 이른바 지식인들이 앞 다투어 "근하신년"을 쓰다 보니 그 말이 새해에 꼭 써야 품위가 나는 말인줄 알고 너도 나도 쓰게 된 것이 오늘날 한국사회의 "謹賀新年"이란 말이다. 허나 요즘 컴퓨터세대의 발전으로 변하고 있지만 새해부터는 일본인들이 만들어 쓰는 숱한 말들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쓰는 행태를 좀 고쳤으면 좋겠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