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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디딤돌·걸림돌 판결 -민변·경향신문 선정

nyd만물유심조 2019. 12. 8. 22:21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평등과 연대로! 인권운동더하기’, 경향신문은 올해 최고의 디딤돌 판결로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과 한국도로공사가 외주용역업체 소속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선고한 대법원 판결을 공동 선정했다. 최악의 걸림돌 판결은 아동 성착취 동영상 사이트 운영자에 대해 아동 성착취 영상 제작에는 공모하지 않았다며 징역 1년6월을 선고한 항소심 판결이다.

 

민변 등 단체와 경향신문은 2018년 11월1일부터 올해 10월31일까지 각급 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선고된 판결과 결정을 대상으로 ‘2019년 디딤돌·걸림돌 판결’을 선정했다. 선정위원회를 열고 인권과 사법정의를 증진시켰거나 저해했다고 평가된 20개의 판결을 꼽았다.

 

★선정위원장은 조숙현 변호사(민변 부회장)가 맡았다. 위원으로는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 미루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 신수경 새사회연대 대표, 정한중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경배 순천향대 법학과 교수, 송상교 변호사(민변 사무총장), 최용근 변호사(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상근변호사), 하주희 변호사(민변 사무차장), 유설희 경향신문 기자가 참여했다.

 

☆ 디딤돌 판결

꼭 보장돼야 할 ‘여성 기본권’

“임신한 여성의 안위가 곧 태아의 안위”…헌재,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헌재는 지난 4월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도록 한 형법 제269조 1항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결정했다. 재판관 9명 중 7명(헌법 불합치 4명·단순위헌 3명)은 낙태 처벌 조항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판단했다. 

 

헌법 불합치 의견을 낸 유남석·서기석·이선애·이영진 재판관은 “임신한 여성의 안위가 곧 태아의 안위”라며 국회에 2020년 12월31일까지 해당 조항을 개정하라고 했다.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위원회는 “태아의 생명과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충돌하는 관계로 보는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여성의 임신 중단 결정권이 전인적 결정으로서 보장받아야 할 기본적 인권임을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수납원 직접고용’ 판결 높이 평가

장애인 복지 대상 확대도 의의

‘과거사 국가 위법’ 인정도 주목

 

대법원 2부는 지난 8월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267명이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공사가 요금수납원들을 직접고용할 의무가 있다고 본 원심을 확정했다. 한때 도로공사 직원이던 요금수납원들은 20여년 전 외주화 정책에 따라 용역업체 소속으로 신분이 전환됐다. 대법원은 요금수납원들이 공사의 필수적이고 상시적인 업무를 수행한 점, 공사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고 공사는 이를 지시·감독한 점 등을 들어 “요금수납원이 파견근로자로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선정위는 “파견근로자들을 불안전 고용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파견법의 취지에 충실한 해석”이라고 했다. 

 

대법원 3부는 지난 10월 투렛증후군을 앓은 ㄱ씨가 경기 양평군수를 상대로 낸 장애인 등록 신청 반려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ㄱ씨 승소인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단순한 행정입법의 미비가 있을 뿐이라고 보이는 경우에는 행정청은 그 장애가 시행령에 규정돼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인 등록 신청을 거부할 수 없다”고 했다. 선정위는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서 규정한 15가지 유형에 해당하지 않는 장애를 겪는 사람들도 장애인으로 등록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 장애인 복지 서비스 대상을 확대했다”고 평가했다. 

 

과거사 사건에서 국가 위법행위를 인정한 판결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대법원 3부는 지난해 11월 1979년 부마항쟁 당시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이유로 계엄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을 확정받은 김영일씨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이 내렸던 계엄 포고령이 위헌·위법한 것이어서 무효라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다. 

 

대법원전원합의체는 지난 3월 1948년 여순사건 당시 내란 등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사망한 고 이모씨 등 3명에 대한 재심청구사건에서 재심 개시를 결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선정위는 “실제 재판이 있었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자의적으로 진행된 당시 군사재판과 관련한 재심 개시 결정의 기준을 제시했다”고 했다. 

 

국가의 과도한 권한 행사에 제동을 건 판결들도 디딤돌 판결로 선정됐다. 인천지법은 7월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이슬람국가(IS)를 찬양하는 글을 올린 외국인에게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내렸다. 

 

선정위는 “가입선동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보아 진지한 인상을 줄 정도가 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며 “‘객관적 진지성’ 요건을 판단 기준으로 처음 제시했다”고 했다. 

 

서초구 구민 293명이 지방자치법에 따라 사랑의교회 도로 점용 허가 처분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낸 것에 대해 대법원이 지난 10월 원고 적격을 인정해 파기환송한 판결도 “주민소송이 활성화되는 데 디딤돌이 될 수 있는 판례”라는 평가를 받았다. 1·2심은 주민소송 대상이 아니라며 각하했다. 

 

서울동부지법 민사21부가 성소수자 혐오 반대 퍼포먼스를 했다는 이유로 장신대 학생들에게 내려진 징계에 대해 효력 정지 가처분 결정을 내리고, 민사13부가 징계가 무효라고 판결한 것도 포함됐다. 학생들의 성소수자에 대한 지지와 응원의 목소리를 종교적 이유로 억압한 학교에 제동을 걸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법원 1부가 지난 3월 전업·비전업을 구분해 시간강사 강의료를 차등지급한 것이 위법하다며 원심을 파기한 판결을 두고 선정위는 “불합리한 강의료 지급 관행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평가했다. 

 

☆ 걸림돌 판결

아동성착취 규범력 저하시켜

아동불법촬영 동영상 사이트 운영자에 징역 1년6월…외국에 비해 관대

 

최악의 걸림돌 판결은 국제 공조수사로 검거된 아동성착취 동영상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W2V) 운영자 손모씨에 대해 징역 1년6월을 선고한 항소심 판결이다. W2V는 전체 회원 수 128만여명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다크웹으로 약 17만건의 아동성착취 영상물을 담았다. 손씨는 이용권을 비트코인으로 판매해 4억원가량의 범죄수익을 벌어들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1부(재판장 이성복 부장판사)는 지난 5월 청소년 성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손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사이트에 접속한 회원들이 직접 업로드한 음란물이 다수 존재하는 점, 범죄 수익 대부분이 몰수보전 또는 추징보전처분을 통해 환수될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은 유리한 정상”이라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W2V 사건이 알려진 뒤 형벌이 지나치게 가볍다는 논란이 일었다. 미국과 유럽에선 아동불법촬영물을 단 1회라도 다운로드하면 실형을 선고하기 때문이다.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위원회는 “피고인의 사이트 운영 방식으로 인해 반인륜적인 아동성착취 동영상이 양산되는 결과를 초래했음에도 제작자와의 공모 관계를 부정한 점, 피해 아동·청소년의 건강한 성장과 성범죄로부터의 보호라는 보호법인과 무관한 범죄수익의 환수 등을 양형요소로 고려했다”며 “성착취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입법된 법률 규정의 규범력을 사법부 스스로 저하시킨 것”이라고 했다. 

 

---성폭행에 ‘최협의설’ 문제점 노출

노동자의 권리 좁은 해석도 빈번

양심의 다양성 고려 안 한 판결도

 

10세 아동에게 술을 먹인 뒤 성폭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은 보습학원 원장 ㄱ씨가 항소심에서 징역 3년으로 감형받은 사건도 걸림돌 판결로 선정됐다. 서울고법 형사9부(재판장 한규현 부장판사)는 지난 6월 강간죄를 유죄로 인정한 1심과 달리 ‘폭행·협박’이라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미성년자의제강간죄’를 적용했다. 선정위는 “법 감정상 납득이 어려운 수준으로 가해자에게 관대한 양형을 선고했다”며 “최협의(最狹義)설’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판결”이라고 했다. 최협의설은 강간죄에서 폭행·협박의 정도를 최대한 좁게 해석하는 것을 가리킨다.

 

걸림돌 판결에는 노동자 권리를 좁게 해석한 판결들이 다수 포함됐다. 광주고법은 6월 서비스기관 소속 아이돌보미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1심을 뒤집었다. 선정위는 “재판부는 근로 제공이 이용자의 집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사용 종속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며 “다양화된 근로형태를 감안해 ‘상당한 지휘·감독 여부로 근로자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변화된 법리에 반하는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8월 복지포인트는 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도 포함됐다. 선정위는 “임금성·통상임금이 인정됐던 복지포인트의 지급방식이 변경됐다는 이유만으로 임금성을 부정하고 통상임금에서 제외했다”고 했다. 

 

쟁의행위에 따른 자동차 공장 가동 중단 시간 동안 사용자가 지출한 고정비용을 손해로 인정해 노동자에게 배상하라고 한 대법원 판결, 현대자동차 중소협력업체들의 납품 중단을 공갈죄로 기소해 처벌한 원심을 확정한 대법원 판결도 걸림돌 판결에 포함됐다.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8월 세월호 참사 보고시간 조작 사건에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에게 무죄 등을 선고한 1심 판결,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9월 비종교적 신념에 따라 양심적 병역 거부를 한 시민단체 활동가에게 유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도 선정됐다. 선정위는 “양심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았다. 지난해 헌재 결정,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취지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중앙지법이 10월 카카오에 영장 원본을 제시하지 않고 팩스로 전달하는 등 위법하게 카카오톡 단체대화방 압수수색을 한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에서 국가 책임을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기업 책임을 부인한 1심 판결, 서울중앙지법이 9월 긴급조치 관련 국가배상청구를 두고 “보상금 지급에 동의한 경우 재판상 화해가 성립한다고 본 민주화운동보상법 조항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에 반해 각하한 1심 판결도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