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30년, 동 서간 뚜렷한 인식차이 보여
독일의 공영 방송 '도이체벨레'는 11월7일(현지시간) 구동독과 구서독 주민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를 공개하며 통일의 유산을 바라보는 이들의 생각에 상당한 차이가 드러났다고 전했다. (베를린 장벽은 1989년 11월9일에 무너져, 올해로 꼭 30년이 됐다.)
이날 독일의 정치 여론조사기관 '도이칠란트 트렌드'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동독 주민의 60%와 서독 주민 56%가 '통일이 개인에게 이익이 됐다'고 답했다. 10년 전에 같은 질문에 대한 응답과 비교하면 동독의 경우 7%포인트가 감소한 반면 서독은 5%포인트 올랐다.
특히 동독 주민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80% 이상은 통일 이후 '이동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확보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교육제도와 유아기 보육 제도에 대해서는 통일 이후 더욱 나빠졌다는 대답이 압도적이었다.
'사회 응집력이 낮아졌다'는 질문에 동독 주민 76%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서독 주민은 46%만에 그렇다고 답했다.
-불만 쌓인 동독, 극우정당에 마음 돌려
10년 만에 동독 주민들의 '통일 만족감'이 7%포인트 가까이 떨어진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워싱턴포스트(WP)는 동서간의 경제 격차가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동독은 뒤쳐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통일 후 2년 동안 동독의 산업 생산량은 4분의 3 이상이 줄었다. 같은 기간 실직자는 300만 명에 달한다. 사람이 떠난 동독은 더욱 황폐해졌다. 30년이 지나며 그 격차는 줄었으나 불균형은 여전하다.
지난 9월 독일 정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동독 주민의 급여와 가처분소득 수준은 서독의 85% 수준이다.
실업률 격차도 계속되고 있다. 서독의 실업률이 4.8%에 불과한 반면 동독의 실업률은 6.9%까지 치솟는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의 평균 실업률이 6.3%인 것과 비교하면 서독의 실업률은 2%포인트가 낮고 동독 실업률은 평균을 상회한다. 이 분열은 최근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모습이다.
극우 성향의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 대한 동독 주민들의 지지는 상승세다. 지난 9월 동독 지역인 작센주와 브란덴부르크주, 그리고 10월 튀링겐주 지방선거에서 AfD는 제2정당으로 부상했다.
특히 동독 30대 미만 유권자들 사이에서 AfD는 견고한 지지층을 유지하고 있다. 서독의 30대 미만 유권자들이 환경을 중시하는 녹색당을 지지하는 것과 상당히 상반된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세대로 이어진 '2등 시민'의 삶
독일에는 '전환기(die Wende)의 아이들'이라는 말이 있다. 독일이 통일되던 시기에 태어난 이들이다. 독일의 학자들은 이들이 분열을 겪어보지 않고 성장한, 새로운 세대를 결성할 수 있으리라 예상했으나 현실은 달랐다.
장벽이 무너지기 3년 전인 1986년에 태어난 미하엘레 베버는 WP와의 인터뷰에서 내 머릿속에는 여전히 벽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동독에 살고 있는 그는 이곳에는 실망이 있다. 지난 30년 동안 바라던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정치연구재단인 오토베르너 재단의 라이너 파우스 연구원은 원로 정치인들은 늘 '동서독 통합은 더이상 젊은이들과 연관된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구동독의 젊은이들은 독일이 평등하지 않다고 인식한다. 장벽이 무너진 뒤에도 동독은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고 했다.
오토베르너 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2030을 상대로한 '동독이든 서독이든 출신에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서독 출신은 57%에 이르는 반면 동독 출신은 33%에 그친다.
파우스 연구원은 동독이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일수록 AfD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부연했다.
또 하나의 특이점은 동독 특유의 공동체 의식이다.
파우스 연구원은 동독 사람들 5명 중 1명은 자신은 '독일'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보다 '동독'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서독에는 이러한 지역 정체성이 없다고 했다.
-동독의 '피해의식' 자극하는 언론과 정치인
가상의 피해의식을 오히려 언론과 정치인들이 자극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발레리 쇼니안은 1990년에 태어났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공식적인 통일을 앞둔 시점이다. 동독에서 태어난 그는 자라면서 지역 정체성에 대해 특별한 고민을 한 적이 없다고 WP에 말했다.
쇼니안은 나와 내 또래의 많은 이들은 동독과 서독에 대해 깊게 생각한 세대가 아니다며 우리가 달라진 것은 2015년 난민 사태였다고 말했다.
그는 각종 뉴스에서 난민 유입에 반대하는 이슬람단체 '페기다(Pegida)'와 극우 정당 AfD의 부상에 집중했다. 순식간에 동독은 인종차별적이고 극우적인 공간이 됐다고 회상했다.
쇼니안은 언론과 소셜미디어에는 '동독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는 말이 나왔다고 했다. 이후 동서독의 갈등에 집중하기 시작한 쇼니안은 현재 관련된 연구를 하고 책을 쓰고 있다. 그는 지금 동독인들은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독일 공영라디오(DR)는 독일 언론이 문제를 제기하고 분석하는 데 있어 '동과 서' 이분법을 기계적으로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2016년 서독 바덴뷔르템베르크 선거에서 AfD가 15% 넘게 득표했을 때는 '서독의 극우화'를 논하지 않던 언론들이 동독에서의 AfD 부상은 집중적으로 분석에 나선다는 것이다.
DR은 이같은 언론의 행태가 동서독의 심리적 격차를 더욱 벌린다고 했다. 동독지역 출신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 동독의 피해의식을 자극하는 경향도 있다.
21살인 프리데리크 페일러는 정치인들의 자극적인 태도로 사람들은 동서양의 불평등에 대해 더 많이 말하게 됐다며 선거가 끝난 뒤 여론은 동독을 향해 어떻게 AfD에 투표를 할 수 있냐'고 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진짜 문제는 동독인들에게 '너는 정말 나쁜 사람들이다'고 손가락질이 시작된 것이라고 했다.
독일 훔볼트 대학의 사회학자 다니엘 쿠비악은 동독의 역사을 비롯한 모든 동독의 이야기를 공론장에서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990년은 먼 과거가 아니다. 권위주의 통치 하에서 성장한 이들의 극우 정당에 대한 호감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