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 기념일. 7.14
2019.7.14 기념행사 광경
7월 14일은 ‘프랑스 혁명 기념일’이다. 보통 영어권에서는 바스티유 데이(Bastille Day)라고 불린다. 프랑스 혁명 기념일을 ‘바스티유 데이’, ‘바스티유의 날’이라고 부르는 것은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혁명의 발단이 된 바스티유 감옥 습격의 1주년을 기념, 이듬해 1790년에 실시한 건국기념일을 기원으로 매년 7월 14일로 지정됐다.
-프랑스 혁명의 원인과 배경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1789년 당시 프랑스는 사회적 혼란이 커지면서 시민들의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특히 이미 루이 14세 때부터 이어진 왕실의 부패와 사치가 루이 16세에 이르러 극에 달한 상태였다. 게다가 이웃 나라 영국과의 경쟁 때문에 미국의 독립전쟁에 무보수로 참전했다가 생긴 엄청난 나랏빚을 세금으로 메우려고 해 평민층의 불만이 커진 상황이었다.
또 계급 갈등도 문제였다. 절대왕정 시기부터 성장해 온 부르주아 세력은 주로 상인과 의사, 법률가, 세무사 등 전문직으로 활동하면서 기존의 특권 세력인 귀족 못지않은 재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신분상 이들은 여전히 평민으로서 사회적 차별을 받았기 때문에 점점 불만이 쌓여갈 수밖에 없었다. 농촌에서도 과거 봉건영주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악용해 무거운 부역과 공납을 부과하면서 농민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커져만 갔다.
이런 분노가 마침내 혁명을 이끌어 냈고, 인권 선언을 통해 봉건제 폐지와 평등 사회 추구, 시민의 뜻에 의해 국가를 운영한다는 민주주의의 기틀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전제군주인 루이 16세와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를 처형함으로써 구체제의 종말을 알렸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움직임이 유럽의 주변 국가와 다른 대륙에까지 퍼져 나가면서 세계에 자유와 평등의 새로운 사상이 싹트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렇게 7월 14일은 프랑스의 혁명을 의미하는 날임과 동시에 프랑스를 상징하는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을 기리는 날이 되었다.
-바스티유 감옥
바스티유 감옥은 원래 영국의 침략으로부터 파리 외곽을 방어하기 위한 요새로 14세기 중반에 처음 건설되었다. 그러다 이후 파리 북쪽에 새로운 요새와 관문이 생기면서 15세기 초에 감옥으로 용도가 바뀌게 되었다. 루이 16세 통치 시기에 이르러서는 정치범들을 재판 없이 가두는 등 악명이 높은 곳이었다. 당시 루이 16세는 국경을 지키는 수비대를 파리 근교에 주둔시켜 위협을 가함으로써 시민들의 불만을 억누르려고 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1789년 7월 14일, 수많은 무기와 탄약을 저장하고 있던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함으로써 혁명의 불꽃이 일어났다. 당시 치열한 전투 속에 시민군 100여 명이 희생되었으며, 이 희생은 민주주의를 위한 최초의 희생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렇게 혁명의 시작을 알렸던 바스티유 감옥은 지금은 철거되고 없으며 대신 그 자리에 공원이 조성되어 프랑스 혁명을 기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