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서원 9곳,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표는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상황임.
한국의 조선시대 사립학교인 서원(書院) 9곳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정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7월6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총회에서 '한국의 서원'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의 서원'은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까지 조선시대 지방 지식인들에 의해 건립된 대표적인 사립 성리학 학교다. 한국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경북 영주)을 비롯해 도산서원(경북 안동), 병산서원(경북 안동), 옥산서원(경북 경주), 도동서원(대구 달성), 남계서원(경남 함양), 필암서원(전남 장성), 무성서원(전북 정읍), 돈암서원(충남 논산) 등 9곳이다.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에서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되고 있는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이자 성리학 개념이 여건에 맞게 바뀌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인정된다"고 평가했다.
유네스코가 ‘한국의 서원’을 평가하면서 꼽은 등재기준, 즉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는 크게 두가지다. 대상 유산인 9곳의 서원은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까지 조선시대 지방 지식인들이 세운 대표적인 사립 성리학 학교이다. 등재 기준 중 첫번째로 꼽히는 ‘OUV’는 대상 서원들이 성리학 가치에 부합되는 지식인을 양성했고, 지역의 대표 성리학자를 사표로 삼아 제향(제사를 지냄)했으며, 무엇보다 지역사회의 공론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이와 관련, “성리학자들은 서원에서 강학을 통해 성리학적 가치관으로 세계를 이해했고, 정기적인 제향으로 학파의 결집을 도모했으며 교류를 통해 성리학에 부합한 향촌 교화활동을 주도했다”고 평가했다.
두번째 ‘OUV’는 신청유산이 한국 서원 건축 유형의 탁월한 사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16세기 서원들이 처음 생길 때부터 정형화한 건축유형은 후대의 서원 건축에 모델이 되었다. 즉 백운동서원(소수서원)이 안향의 옛 집터에 건립됐듯 서원은 제향인물의 연고지역에 자리잡았고, 성리학자의 전인교육에 적합한 환경을 선택했다.
여기에 제향과 강학, 휴식 공간으로 나뉜다. 제향공간은 사당을 중심으로 하며, 선현들을 위한 제사가 베풀어진다. 강학공간은 학습의 전당인 강당과 동·서재(기숙사)를 포함한 구역이다. 휴식 공간은 잠시 책상을 떠나 머리를 식히고 심신을 고요히 유지하는 수신의 영역이다.
각 공간은 지형과 경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뚜렷한 건축전형을 완성했다. 입지를 고를 때부터 무척 신경썼다. 도산·병산·옥산서원 등의 경우 앞쪽에 맑고 깨끗한 계류와 긴 여울이 감싸고,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으며, 언제라도 누각에 오르거나 창문만 열어도 아름다운 산수를 감상할 수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서원의 입지 선정에 심신 수양의 환경을 첫손으로 꼽았음을 알 수 있다.
각 서원의 기본골격은 비슷했다. 사당과 강당, 동·소재와 내·외삼문, 전사청(제수를 준비하던 곳), 장서각(도서관) 등의 부속건물로 구성됐다. 강당이나 누각, 정자, 연못, 계류의 이름도 반드시 지었다. 그러나 허투루 짓지 않았다. 강당의 경우 성(誠), 중(中), 경(敬), 의(義), 인(仁), 예(禮), 덕(德), 도(道), 교(敎) 등 성리학의 핵심개념을 표방했고, 누각이나 정자는 연(蓮)이나 매(梅) 등 옛 성현이 사랑한 꽃이름이나 풍(風), 월(月), 산(山), 수(水)자 등이 포함된 이름이 많았다. 이것은 서원이 학문과 덕성의 터전인 동시에 본성을 보존하고 정서를 함양하는 장수(藏修)의 공간임을 일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원은 교육과 제향 외에도 장판각을 통해 책을 펴내고, 서적을 보관하는 도서관 역할을 했으며. 각 지방의 향약을 기준으로 미풍양속을 장려하고 윤리에 어긋나게 행동한 자를 교화하는 기능도 겸했다. 향풍(鄕風)이 문란한 자에게는 ‘훼가출향(毁家黜鄕)’의 벌칙을 가하기도 했다.
물론 한국의 서원이 남긴 폐해 역시 반드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역사이다. 그러나 서원철폐령의 된서리 속에서도 살아남은 한국의 서원은 누가 뭐라해도 조선을 지탱해온 성리학 교육기관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 중 16세기 중반~17세기까지 설립된 9개 서원은 성리학이 만개했던 조선 성리학 교육과 사회적 확산을 주도한 교육기관이자 유무형적이고 역사적인 독특성의 탁월한 증거이다. 성리학자들은 그들이 존경하는 지역의 인물을 제향함으로써 다음 세대에게 롤모델을 제시했고, 강학을 통해 학문을 계승했다. 그들은 교육에 필요한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교육시스템과 물리적 시설을 완성했다. 또한 사회교화와 정치활동 등 각종 활동의 근거지로 활용하면서 성리학이 전 사회적으로 확산되는데 기여했다.
유네스코 세계위는 “신청유산은 한국의 성리학 발전과 서원유형의 정립과정을 증명하는 가장 중요하고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서원 9개로 구성됐다”면서 “각각의 유산이 하나의 온전한 서원으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제향·강학·유식(휴식) 및 교류 공간과 주변경관이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유네스코는 또 16~17세기 건립된 신청유산들이 지금까지 원형을 거의 훼손하지 않고 보존·계승되었음을 인정했다. 특히 서원을 거쳐간 인물들이 남긴 전적이나 문집, 기문, 목판도 잘 보호·관리되고 있고, 제향의식도 창건당시의 모습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유네스코 세계위원회는 “세계유산이 반드시 갖춰야 할 요소인 완전성(integrity)과 진정성(authenticity)에 정확히 부합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등재 경과, 종합관리방안 마련 필요,
‘한국의 서원’은 2015년 제출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가 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이코모스·ICOMOS)의 반려의견으로 철회되고, 이번에 재수 끝에 등재가 결정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반려 당시의 지적사항인 ‘주변 경관’의 관리 및 보존방안은 등재결정 이후에도 가장 중요한 숙제로 부각될 전망이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이번에 서원, 그 자체 뿐만이 아니라 서원을 둘러싼 자연경관도 세계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밝혔다. 주변 경관의 보존없는 ‘한국의 서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가치를 상실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9곳의 서원과 관련된 지자체가 14곳에 달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도 등재 이후 9개 서원의 통합 보존 관리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한만큼 법적인 보호를 받는 기구의 출범도 고려해야 한다.